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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Aug 30. 2023

백화점 식품관이 할 수 있는 일

  멋대로 정하는 백화점의 상징 


  백화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과연 뭘까? 수많은 인파? 층층이 쌓인 건물과 에스컬레이터? 화려한 명품관? 나는 백화점 하면 지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식품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간 기억보다 아무래도 먹으러 간 기억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내게 백화점은 거대한 먹자골목이었다. 


  먹자골목이란 표현은 물론 과장되긴 했다. 백화점은 여러 물건을 파는 곳이고 음식은 그 물건들 중 하나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백화점 식품관은 생각보다 중요하고 필수적인 공간이다. 최근에 생겨난 백화점들이 F&B에 힘을 주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백화점 식품관은 식문화의 축소판이다'. 한 책에서 읽은 구절이다. 백화점 식품관은 단순히 음식만을 진열해 놓은 곳이 아니다. 식사를 위한 요리와 각종 디저트, 거대한 식료품점까지 가격, 종류, 국적을 불문한 다양한 식품이 모여있는 곳. 트렌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하는 곳. 1초라도 더 발걸음을 붙잡고 방문객을 유혹해야 하는 곳. 백화점 식품관이란 바로 그런 곳이다. 



  하나의 문화공간 


  국내 백화점 브랜드의 사내 유튜브 채널을 보다 우연히 보게 된 것이 있다. 신입사원 인터뷰 중에 채용 면접 중 받은 질문에 관한 것이었는데 우리 백화점의 가장 큰 경쟁자가 누구냐는 물음이었다. 인터뷰 대상자는 청와대라고 답했다 한다. 당시는 한창 청와대는 개방 행사로 인해 인파가 몰릴 때였기에 문화공간인 백화점이 방문객을 빼앗긴다는 논지였다.


  백화점이 단순한 유통업이 아니라는 소리다. 백화점 방문객 모두가 백화점에서 파는 물건을 사러 오는 것이 아니라 놀이 장소, 약속 장소, 공연 관람 장소, 이벤트 장소, 킬링 타임용 장소 등 제각각의 이유를 품고 백화점의 문을 연다. 


  백화점 안에 영화관부터, 각종 전시회장, 이벤트 공간과 이목을 집중시키는 조형물이 존재하는 이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문객을 불러 모으고 그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다. 백화점에 창문, 시계가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최대한 체류시간을 늘려 백화점 안에서의 소비를 장려하는 것. 그리고 음식은 모든 것의 출발점이자 그것들을 묶어주는 하나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가장 저렴한 사치품 


  요즘이야 명품을 제외한 백화점의 재화들이 우리의 소득 수준 대비 엄청나게 비싼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간다는 것은, 꼭 명품이 아니더라도 제법 사치를 부리는 것에 속했다. 중요한 일이 있거나 큰 맘을 먹고 가는 곳이었다. 또한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명품 소비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백화점에서의 소비는 출혈이 큰 법이다.   


  백화점 식품관은 그런 의미에서 적절한 완충제 역할을 해준다. 백화점 식품관이 존재하면서 음식을 사 먹고, 밥을 한 끼 먹는다는 소비의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다. 그저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밥을 한 끼 먹는다는 소비의 목표를 제공해 주면서 백화점 방문에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다. 


  왜냐, 음식은 백화점에서 저렴한 사치품에 속하면서 쉽게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 방문에 의미를 부여해 줌과 동시에 일종의 백화점 체험과도 비슷하다. 지금이야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됐지만 우리의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백화점에서 밥 한 끼 먹는 것은 꽤 특별한 이벤트에 속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처음 한반도에 상륙한 경성의 백화점들은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할 곳이었다. 그나마 여유로웠던 사람들은 백화점을 구경하고 밥 한 끼 먹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이미 백화점 음식은 백화점 소비에 있어서 마지노선 역할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음식은 백화점 안에서 부담 없이 소비할 수 있는 재화 중 하나다.     



  맛있는 백화점 


  음식은 고객들을 불러 모으고 체류시간을 늘려주는 이른바 미끼의 역할을 해주는데 미끼가 맛없으면 고기들은 모이지 않는 법이다. 백화점 음식들은 예로부터 믿고 먹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백화점이 음식의 맛에 대한 보증을 서준 것이다. 우리 백화점에서 팔만큼 수준 있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또한 한식뿐만 아니라 중식, 양식, 일식 등등 각국의 음식들을 판매하고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유행을 타는 음식뿐만 아니라 시대를 막론하고 인기가 있는 음식들까지, 생각보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곳이 백화점 식품관이다. 그리고 그런 맛에 백화점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이 더해지면서 독특한 포지셔닝에 성공했다.


  하지만 치솟는 물가와 굉장한 속도로 바뀌는 외식트렌드로 인해 백화점 식품관은 과거에 비해 그 명성을 잃었다. 적당한 격식과 맛, 가격은 장점이었지만 가성비와 프리미엄 소비로 양극화된 외식 시장에서 그 중간에 위치했던 백화점은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백화점보다 맛있고 분위기 있는 식당, 훨씬 저렴한 값에 훌륭한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당이 많이도 생겼다. 


  그리고 백화점이 난립하면서 백화점이라는 공간이 희소성을 잃은 것도 한몫했다. 식품관은 백화점을 찾는 방문객에게는 찾아갈 이유가 있는 곳이지만 식품관을 찾기 위해 백화점을 가는 사람은 줄어갔다. 반쪽짜리 미끼가 되어버린 것이다.  



  음식이 부르는 백화점  


  백화점에서 먹는 한 끼 식사의 의미는 퇴색되었지만 백화점 F&B 부문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전통적인 백화점 식품관이 가지는 분위기에서 멀어져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20~30대들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들이 속속 등장했다. 미끼의 역할을 하기 위해 다시금 발돋움을 했다.  


  그리고 그 전략을 가장 충실히, 그리고 완벽히 선보인 곳이 여의도의 더현대서울이다. 다소 고풍스럽고 정형화된 백화점 식품관의 이미지를 타파했다. 불필요한 것은 모두 걷어내고 유행을 철저히 파고들었다. 한식보다는 일식, 양식, 중식에 초점을 맞췄고 커피와 베이커리 등 급격히 성장 중인 디저트 매장들도 입점시켰다. 그래서 더현대서울 식품관을 방문하면 마치 성수나 연남, 경리단길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식품관이라기보다는 트렌드한 길거리를 보는 것 같다.  


  사치품을 소비하는 연령층이 과거에 비해 대폭 낮아지면서 20~30대를 공략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또한 '음식'이라는 키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단순히 먹기 위해 백화점을 방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기존의 백화점 식품관이 가진 장점에 트렌드를 섞으면서 도출된 결과다. 


  백화점 식품관은 화려한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분주히 노력 중이다. 백화점 식품은 단순히 음식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그 어느 때보다 식(食)에 대한 관심이 많은 지금, 백화점의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성공 사례들도 툭툭 튀어나오고 있기 때문에 더 다채롭고 맛있는 백화점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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