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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Sep 08. 2023

부엌 앞에 서지 않는 우리

사라져 가는 내식(內食)에  대하여 

  부엌은 안 중요하니까요


  최근에 다시 집을 구할 일이 생겨서 부동산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중개인들은 방 문을 열고 집의 장점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채광이 좋다, 넓게 잘 빠졌다, 옵션이 다 있다 등등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하나같이 "뭐, 남학생이니까 주방은 상관없을 거잖아요." 협소한 주방을 설명하면서 단 한 명의 중개인도 빠지지 않고 내게 그 말을 했다. 아닌데요, 저 중요한데요.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너무나 많았다. 


  사실 중개인들의 말은 맞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의 말마따나 내 또래에게, 더군다나 남학생에게 부엌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공간이 맞다. 당장 내 주변에 혼자 사는 친구들 중에 요리를 하는 사람은 손에 꼽으며 그마저도 남자는 없다. 일반적으로 남학생 세입자에게 부엌은 그리 중요치 않은 공간이 맞다. 


  물론 나는 요리를 취미로 하고 관련 업종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주방이 상당히 중요하지만 요즘 부동산 시장, 특히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원룸과 투룸에서 주방은 중요도가 떨어지는 공간이다. '요즘 애들이 누가 요리를 해 먹어'라는 말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해왔던 말이지만 이제야 피부로 와닿는다. 정말로 1인 가구에게 집밥, 그러니까 내식(內食)이 사라지는 것일까. 말미에는 우리의 손맛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집밥을 못(안) 먹는 이유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 이유? 간단하다. 요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번거로워도 너무 번거롭다. 아무리 간단하고 단순한 음식이라 할지라도 요리를 해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음식이 된다. 최소한의 조리도구, 최소한의 조미료와 양념, 필요한 식자재와 그것을 요리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 모두 필요하다. 빠르고, 간편하고, 효율을 추구하는 시대에 남아있는 가장 비효율적인 일이다. 밀키트가 잘 팔리는 데는 이유가 다 있다. 


  그리고 굳이 요리를 하지 않더라도 먹을 것이 넘쳐난다. 외식과 중식의 발달이 거의 완성체 단계에 오면서 집 안팎에서 전문가의 손길이 묻어나는 맛있는 음식을 손쉽게 먹을 수 있다. 과거처럼 외식과 중식 메뉴가 한정적인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음식을 먹어볼 수 있기에 내식이 없이도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바쁘다. 시간이 없다. 수업, 출근, 취업 준비 등등 20~30대를 옥죄는 의무들이 어깨에 하나씩 쌓여가면서 요리는 후순위로 밀렸다. 요리라는 번거로운 작업을 통해 음식을 입에 넣는 것보다 음식을 사 먹고 그 시간에 조금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편이 나았다.  


 

  그게 나쁜 건가?


  하지만 이 현상이 나쁜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쉽게 답할 수 없다. 가뜩이나 심각한 사회문제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는 시점에서 고작 20~30대 청년들이 요리를 하지 않는 것이 무슨 문제일까. 요리를 하지 않는다고 먹지 않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요리에 쓰이는 재화는 고스란히 외식업계로 흘러들어 업계를 키워나가는 원동력이 될 텐데 말이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그래서 외식업계에 발을 붙이고 싶은 나에게는 사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 아닐까. 내식에서 중식, 외식의 비중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외식 업계 전체의 파이는 더더욱 커질 테니까. 지금의 20~30대가 기성세대가 되는 시점에는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지겠지.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한 것은 사실이다. 


  시대를 거듭할수록 외식 업계가 품고 있는 맛의 평균치는 나날이 상승했다. 과열되는 경쟁 속에서 맛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었고 덕분에 상향평준화가 이뤄졌다. 눈을 돌리면 맛집이 즐비했고 우리가 향유하는 외식문화만 해도 수십, 수백 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부족함 없는 외식을 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내식을 그리워한다. 소위 말하는 집밥. 집밥은 언제나 혀 깊은 곳에서 우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다.  



  집밥은 도태되는 것일까


  외식이란 결국 대중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사업이다. 길을 걷는 아무개들을 붙잡고 먹였을 때, 대부분이 맛있다고 할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 그 아무개들의 입맛이 곧 대중들의 입맛이고 그 대중들이 모여 성별, 세대, 지역, 크게는 국가의 입맛을 형성한다. 모두가 좋아하고, 모두가 싫어하지 않을 맛. 그 맛을 내는 것이 외식에서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맛은 점점 더 비슷한 궤를 이루고,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집밥을 서서히 잃어가는 우리는 더욱더 비슷한 음식만을 먹기 시작한다. 


  물론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여전히 많은 외식 메뉴가 존재하고 가게마다 세세한 비법이 다르다고. 그 세세한 비법이 사업의 성패를 가른다고. 하지만 그 세세한 비법 역시 결국 대중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저마다 가정에서 보유했던 집밥의 조리법과 손맛은 오직 한 가구의 구성원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상상도 하지 못할 개성이 존재했고 강렬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개성과 존재감은 때때로 우리가 지금 먹는 외식 메뉴를 도출해내기도 했다. 


   무수히 많은 그리고, 다른 집밥을 먹고 자랐음에도 같은 종류의 음식을 먹고 자랐기에 같은 입맛과 식문화권을 형성했다. 그리고 같은 종류의 음식임에도 개성 있는 조리법, 거기서 파생된 다양한 맛을 먹고 자라 같음에도 다채로운 입맛을 지녔다. 그리고 그런 다채로움 속에서 집밥의 조리법이 외식 시장에 등장하여 개성이 곧 대중성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조리법은 다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개조되고 수정되고, 우리의 입맛에 저장되곤 했다. 다시 입맛이 형성되고 집밥과 외식의 순환이 이어지고... 이러한 반복이 계속되었다고 생각한다.


  내식, 그러니까 집밥 역시 하나의 문화다. 그리고 향유되지 않는 문화는 잊히고 사라진다. 그것은 그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강제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하는 무수한 선택들이 빚어낸 결과다. 어렵고 비효율적인 집밥 대신 간편하고 효율적이며 맛도 좋은 중식과 외식을 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진짜 집밥이 그렇게 자연스레 쇠퇴할 문화라는 생각을 하면 서글프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좋게 말해 대중성, 나쁘게 말해 획일화의 길로 걸어가는 것은 아닐까.              

 


  집밥 흉내내기 


  우리는 외식을 하면서 종종 "꼭 집밥 같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건 칭찬이다. 담백하고 부드럽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푸근한 듯한 인상을 주는 음식에 내리는 칭찬이다. 확실히 우린 집밥을 그리워하며 산다. 스무 살이 넘어 혼자 밥을 해 먹을 때면 나는 가끔 집밥을 재현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손맛 가득한 집밥은 쉽사리 재현되지 않았고 그냥 내 스타일의 요리가 탄생한다. 

    

  요리는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그 실력이 증가하여 어린 시절 먹던 음식을 마구 재현해 내는 것이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힘을 쏟아야 내가 내고자 하는 맛에 근접할 수 있다. 제아무리 집밥 같은 가정식 식당, 내식을 표방하는 외식이 있다지만 '진짜' 나만 아는, 우리 가족만 아는 집밥을 파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롯이 우리 집 집밥을 먹는 나만 할 수 있다.   


  사 먹는 것? 좋다. 사실 나도 잘 사 먹는다. 1인가구가 집에서 혼자 해 먹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말마따나 외식 서비스가 너무 잘 발달했다. 맛있는 것 천지, 신기한 것 천지다. 산업은 점점 더 비대해지고 있고 한국은 외식 국가로 변하는 중이다. 외식업을 좋아하여 이것저것 관심이 많은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며 또 이 산업에서 일하길 희망하기에 더욱 아이러니하지만 별안간 멈춰 생각해 본다. 이대로 가면 내 집밥은 무엇이며, 또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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