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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Sep 13. 2023

노포에 가려고 합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포에 대하여 

  포천 하면 순댓국이지 


  포천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음식은 단연 포천 이동갈비다. 하지만 나는 순댓국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기억이 흐릿하게 번져있는 어린 시절부터 다니던 순댓국집이 포천에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유독 그 집의 순댓국을 좋아했는데 차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음에도 우리 집은 종종 그곳에서 순댓국을 포장해서 먹었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순댓국집엘 들어갔던 순간만은 왜인지 또렷하게 기억난다. 


  허름한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면 낮은 층고의 식당이 나온다. 덕분에 더욱 아담해 보이고 언제가 후끈했다. 벽은 노랗게 빛이 바랬고 가게에는 순댓국 냄새가 박혀있었다. 가게 안에는 세월을 타지 않은 것이 하나 없었고 손님들마저도 세월이 묻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분위기와 상반되는 깔끔한 국물은 우리를 그곳의 단골로 만들기에 손색이 없었다. 


  결국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가게는 스러졌다. 올라간 임대료? 요리사의 노화? 이유는 모르겠다. 그 집 순댓국은 추억 속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사실 그곳보다 맛있는, 그리고 더 유명한 순댓국 집을 갔었다. 그럼에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노포란 그런 곳이다. 오래된 세월과 그 세월이 빚어낸 음식. 진득하게 묻어있는 추억이 절대 대체될 수 없는 풍미를 뽑아내는 곳. 


  요즘 다시 노포가 유행하고 있다. 허름하고, 지저분하고, 오래된 맛이라 여겨 주류 외식 문화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던 노포는 이제 현재의 외식문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새롭고 세련된 것만을 추구하던 우리는 왜 노포에 가는 것일까? 



  단순히 오래된 가게


  노포를 직역하면 연로한 가게다. 연식이 오래되었고 대대손손 이어져온 가게다. 자식의 자식의 자식이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오면서 단골들마저도 대대로 이어져온, 그 일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식당이다. 노포는 단순히 오래되었다기보다는 시간이 쌓아준 이야기와 세월이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계승되어 지금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쳐야 한다. 단골이 아닌 노포를 처음 찾아가는 손님에게는 적어도 숫자보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어져온 맛이 중요하다. 

  세월이라는 요소가 필수적인 만큼 대부분의 노포는 구도심에 몰려있다. 서울로 예를 들면 강북, 그중에서도 종로와 광화문, 을지로 일대에 바글바글하다. 혹은 오랫동안 유동인구가 많았던 시장 주변도 마찬가지다. 내 고향도 역시 읍내 시장 주변에 노포들이 즐비하다. 


  노포들은 변함이 없었다. 우직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레트로가 유행하고 구도심의 거리들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그곳의 터줏대감이었던 노포들은 자연스럽게 주목받았다. 소위 말하는 '감성'과 잘 맞물렸고 원래부터 단골들에게 사랑받았던 노포들은 새로 유입된 이들의 관심과 입맛을 한 몸에 받았다.    



  복고, 다시 옛날로


  복고라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해 온 키워드였다. 사람은 본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늘 그리워하는 존재다. 그리하여 과거를 추억하고 그것을 재현하려 애쓴다. 노포 역시 현세대에 발발한 복고 운동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 복고는 조금 독특하고 특이했다.    


  보통 복고는 기성세대들이 자신의 젊은 날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복고는 겪어보지 못한 오래 전의 과거를 선망하는 것이다. 하동관과 을지면옥, 을지로의 만선호프까지 지금의 젊은 세대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미 명망 있는, 단골들 사이에서는 대단한 식당이었다. 그 자리에 늘 존재해 왔던 그런 식당을 새파랗게 어린 우리가 소비하게 되었다. 


  복고는 익숙함으로의 회귀 정도가 되겠지만 지금 세대의 복고, 흔히 말하는 레트로와 그것의 변형인 뉴트로는 익숙함이 아닌 낯선 것의 경험이다. 빛바랜 간판과 허름한 내부, 과거에서 튀어나온 듯한 가게의 분위기는 충분히 낯설었다. 그런 낯섦은 차별화된 경험이 되었고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다.


  이것들은 보통 '힙하다'라는 마성의 단어로 정의되었는데 남들은 하지 않는 나만의 무엇가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남들이 깔끔한 식당에서 파스타를 먹을 동안 허름한 식당에서 평양냉면을 먹는 것, 이것만큼 자신을 차별화시키고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좋은 수단이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지금 20~30대가 형성한 일종의 '감성'이 되었다.    



  복고고 나발이고 일단 맛


  한 곳에서 오랜 시간 장사를 했다는 것은 가게만의 비장의 무기가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노포들의 비장의 한 발은 대부분 '맛'이다. 그 가게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이거나 평범한 듯 비슷하지만 흉내 낼 수 없는 맛이 숨겨져 있다. 힙한 것도 좋고 감성도 좋다. 하지만 나는 맛이 더 좋다. 복고고 나발이고 식당에 가는 이유는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기 위함이다. 노포들은 대게 맛있다.  


  세월이 세월인지라 대부분의 노포는 한식이다. 평양냉면과 순댓국, 파전과 삼계탕처럼 변형되지 않은 정통 한식인 경우가 많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조리 방법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맛을 창조해 냈다. 자신들만의 맛 영역을 구축한 느낌이랄까. 또한 강하고, 진하며 콤콤한 맛을 가지고 있다. 자칫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세월로 그것을 희석하여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 몇 십 년 동안이나 장사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뭔가모르게 끄덕이게 된다. 그리고 그마저도 개성 있는 맛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생각보다 선입견이 없다. 요즘 아이들에게 인스턴트만 먹고 자라서 진짜 맛을 잘 모르고 편식만 한다고 타박하기에는 그 어떤 세대보다 미식을 즐기고 있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다양한 식문화를 접하면서 나름의 선입견과 거부감도 줄어든 것 같다. 잘 접하지 않았던, 오래된 노포의 한식들도 마찬가지다. 경험 삼아서, 호기심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맛있는 음식에 한 번 놀라고, 주변을 둘러싼 감성에 두 번 놀란다.  



  노포는 언제까지 노포일까 


  젊은 소비자들이 노포에 가서 다시 탄탄한 고객층들이 되고 노포가 꾸준히 그 자리에 존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역시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포는 노포의 방식대로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해왔을 뿐이고, 20~30대 소비자는 호기심에 노포를 방문했다. 각자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진행된 만남에는 필히 서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존재한다.  


  식당에 가서 위생적이고 깔끔한 업장과 정중한 서비스를 기대한 우리에게 노포는 기대치에 못 미칠 수 있다. 오랜 기간 장사를 하면서 쌓인 세월의 흔적이 누군가에게는 정겨운 풍경이자 감성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지저분함으로 보일 수 있다. 단골들에게마저도 무뚝뚝하게 대하는 종업원과 사장님의 접객 방식은 누군가에게는 개성 넘쳐 보일 수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불쾌한 불친절로 다가온다. 젊은 세대가 노포에 방문하면서 이 간극은 어느 곳에서나 튀어나왔다.  


  서로에게 적응할 필요는 있다. 노포라고 해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점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노포라고 해도 도태될 수 있다. 노포라고 외식업의 기본적인 규칙과 예의를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또한 노포를 이제 막 소비하기 시작한 소비자들도 이해가 필요하다. 기존에 익숙했던 외식업체들에 비해 다소 투박할지라도 그것을 하나의 매력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물론 정당한 비판과 요구는 우리의 권리가 맞다. 


  역사적으로 외식업이 발달하기 힘들었던 한반도의 사회와 가슴 아픈 근현대사로 인해 아주 오래된 노포도 100년이 채 되지 못했다. 일본부터 유럽까지 몇 백 년을 이어내려오는 노포를 가진 나라를 보면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잘 키워나간다면 먼 훗날 우리 역시 몆백 년의 역사를 가진 노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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