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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Sep 20. 2023

탕후루 한입 하실래요?

길거리를 지배하고 있는 탕후루에 대하여 

  속초에서 먹은 탕후루 첫 입


  바사삭 수준이 아니었다. 으드득 소리와 함께 내 입에서 부서졌다. 투명한 설탕 코팅이 먼저 혀에서 녹았고 그 후에 그것보다 더 차가운 딸기가 스며들었다. 설탕의 인위적인 단맛과 딸기의 뭉근하면서도 은은한 단맛은 생각보다 잘 어울렸고 밋밋한 딸기의 식감에 바삭한 설탕코팅은 재미를 더했다.

  

  스무 살 무렵, 속초로 갔던 동아리 MT에서 나는 탕후루를 처음 먹었다. 우리는 시장을 구경하면서 길거리 음식을 주섬주섬 사 먹었는데 탕후루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나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이 탕후루라는 음식을 처음 접했고 궁금함을 못 이겨 사 먹었던 것이다. 참 매혹적이었다. 만화에서 나오는 과일처럼 매끈하고 윤기가 흘렀다. 시장 천장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에 반사되어 먹음직스러웠다. 


 사실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날은 호되게 추운 겨울이었고 코가 시렸다. 설탕코팅은 사실 얼어 있었고 무지하게 딱딱했다. 우리를 매혹시킨 코팅은 거의 강철이었다. 기분 좋은 설탕의 저항감이라기보다는 꽝꽝 언 얼음을 깨먹는 수준이었다. 달콤하고 향기롭고 바삭거리는 식감이 재미있었지만 너무 딱딱했던 탓일까. 아니면 그다음에 먹은 오징어순대가 너무 맛있었던 탓일까. 나에게 탕후루는 그냥저냥 시장의 여러 먹거리 중 하나로 남았다. 그로부터 4년여 뒤, 그 탕후루가 길거리 간식의 최고봉이 되는 것은 꿈에도 모른 체 말이다. 



  설탕 과일 꼬치 


  탕후루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중국에서 넘어온 간식이다. 탕후루의 기원과 원형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고 현지에서 먹는 탕후루의 종류는 아득히 많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탕후루라 하면 과일을 꼬치에 꽂아 설탕으로 코팅한 것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딸기이며 그 외에도 귤, 청포도, 파인애플, 키위 등등 단맛이 강하고 과실이 단단하지 않은 과일로는 전부 만들 수 있다.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다. 원래도 단맛이 부족한 과일에 설탕을 뿌려서 먹기도 했을 만큼 과일과 설탕은 조합이 좋다. 과일은 오직 단맛만 있는 설탕에 과실이 가지는 향을 더해주고, 설탕은 과일에서 맛보기 힘든 바삭하고 격동적인 식감을 선사해 주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그리고 보기에도 좋다. 마치 만화에 나오는 과일처럼 반질반질하고 윤기가 흐르는 탕후루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필사적으로 유혹한다. 


  여름휴가를 가서 오랜만에 다시 탕후루를 먹었는데 맛있었다. 무더운 여름이었음에도 시원하고 달콤한 설탕 과일은 나를 상쾌하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맛과 비주얼만으로 탕후루가 떠올랐다기에는 의문점이 많다. 이렇게 많이, 그리고 갑자기 탕후루는 왜 모두의 손에 들려졌을까. 번화가에서 탕후루는 필수다. 오죽하면 탕후루에서 나오는 쓰레기로 많은 번화가가 시름하고 있을까. 단순히 맛 때문이 아니다. 나는 다른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처음 눈에 들어온 디저트 


  내가 스무 살 시절 엠티에서 먹었듯, 탕후루는 몇 년 전에도 이미 팔리고 있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때에는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소소한 유행을 끌기도 했다. 전국구적인 인지도는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탕후루의 존재쯤은 인식했던 것이다. 그래서 탕후루는 초신성처럼 새롭게 등장한 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길거리 음식'계의 라이징스타는 확실하다.   


  거의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우리가 길거리 음식을 사 먹을 길거리 자체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마침내 우리 일상은 회복되었다. 국내외 관광이 활발해졌고 상권들도 다시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사람들은 다시 하나, 둘 무리를 지어 문 밖으로 나섰다. 친구, 연인, 가족 단위의 외출과 만남은 잦아졌다. 그리고 올해 봄을 지나 여름까지 팬데믹 이후 첫 번째 성수기가 도래했다. 


  억눌렸던 자유를 되찾은 것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작용했던 것일까. 사람들은 밖으로 쏟아져 나왔고 때마침 탕후루가 길거리 음식으로 팔리고 있었다.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할 만한 달콤함.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사 먹을 수 있는 편리함. 설탕 코팅이 입혀진 과일의 깔끔함. 게다가 생과일이 통으로 보이는 길거리 음식은 흔치 않기에 길거리를 찾는 많은 이들은 지갑을 열었다. 친구를 위해, 연인을 위해, 가족을 위해, 혹은 나 자신을 위해. 


  탕후루 자체의 장점도 충분하지만 시기를 아주 잘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3년 만에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 적절하게 눈에 띄었다. 올해 처음으로 소비자 눈에 띈 신기하고, 매력적인 디저트인 셈이다. 심지어 그 올해는 3년 만에 마스크로부터 해방된 해이기도 했다. 또한 적절한 시기에 프랜차이즈까지 등장하면서 전국으로 확산되는 속도는 더욱 빨랐다.       


 

  급변하는 디저트 유행 


  탕후루의 성공은 시기도 시기지만 한국 외식 시장의 특징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이상하리만치 유행을 잘 타고, 또 그 유행은 1~2년을 주기로 휙휙 바뀐다. 주로 디저트 분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벌집 아이스크림, 대왕 카스테라, 생과일주스, 마카롱, 크로플 등등 짧은 인상을 남기고 사그라든 디저트들이 한 트럭이다. 한국인이 유행에 민감하고, 인스타와 같은 SNS 때문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저자본으로 쉽게 창업할 수 있다는 것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쉽게 말해 프랜차이즈화 시키기 좋다. 유행했던 디저트들은 주로 테이크 아웃 매장이었으며 매뉴얼화하기 쉬운 디저트들이었다. 안 그래도 창업 진입장벽이 낮은 '요식업' 중에서도 가장 낮은 축에 속했기에 너도나도 도전할 수 있었다.    


  한국의 디저트 문화가 오래되지 않은 것도 이유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에도 자랑스러운 후식 문화가 있지만 지금처럼 모든 사람들이 화려하고, 달콤하고, 자극적인 서구식의 디저트를 아무렇지 않게 즐기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따라서 입맛이 아직 완벽히 정착되지 않았고 급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자주 그 모습을 바꿀 수 있었다. 좋게 말하면 수용력이 좋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유행만 좇는 것이다.      



  식후 뒤에 당당히 붙은 탕후루  


  조금 더 파괴적이고, 조금 더 위협적이다. 지금까지 유행했던 디저트들과는 사뭇 다르긴 하다. 훨씬 더 빨리 유행하고 있고, 더 넓게 퍼지고 있다. 번화가에는 형형색색의 탕후루를 손에 든 보행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거리의 구석에는 탕후루 꼬치들이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꽂혀있다.


  탕후루의 수명이 언제까지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심지어는  '식후탕'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외식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사회현상의 수준까지 올라갔다. 지금까지 식후라는 칭호가 붙은 것은 기호식품의 정점에 위치한 담배와 커피 밖에 없었다.


  또한 인기가 떨어질 때쯤에는 수많은 K-디저트화가 된 것처럼 더 크고, 더 비대하고, 더 풍성한 구성의 탕후루가 등장하여 다시금 탕후루의 판매를 견인할 수 있는 노릇이다. 일단 한국에 상륙한 이상 무궁무진한 변신이 예상된다. 식후탕이라는 말마따나 식사 후에 치르는 루틴으로 자리 잡은 만큼 한동안은 탕후루의 열기는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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