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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프라이어가 잘 될줄 알았나

외식과 나의 이야기

by 식작가

나는 자신한다, 나보다 에어프라이어를 빨리 접한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내가 에어프라이를 처음본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었다. 학교 축제를 준비하면서 우리반은 냉동 콜팝치킨을 튀겨팔기로 했다. 하지만 고작 하루짜리 축제를 위해 기름을 들이붓고 땀을 흘리고 싶어하는 학생은 없었다. 물론 안전에 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당시 담임이었던 젊은 기술 가정 선생님은 시골 학생들에게 최신 기술을 소개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가습기처럼 생긴 요상한 물건을 실습실에 들고오더니 기름 한방울 넣지 않고 튀김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담임은 냉동 콜팝치킨을 한웅큼 기계에 넣고 타이머를 맞췄다. 꽤나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더니 경쾌한 알림음 소리 너머로 뜨끈뜨끈한 콜팝 치킨이 나왔다. 그리하여 우리반은 손에 기름 한방울 묻히지 않고 콜팝을 튀겨 팔 수 있었다.




신기했다. 기름 없이 튀김이 되다니.
참 편리한 세상이구나.


10년전, 에어프라이어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딱 그정도였다. 축제가 끝나고 에어프라이어는 실습실 창고행을 면하지 못했다. 에어프라이어는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뿐만 아니라 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엄마의 구매욕을 당기지 못했다. 도대체 이걸 누가 살까. 전자레인지가 있는데 누가 살까. 튀김을 매일 해먹을 것도 아니고 어느 모지리가 크고 시끄러운 소형가전을 주방에 둘까. 나는 그때 생각했다. 그 옛날, 한철 유행했던 토스트기나 커피메이커처럼 불꽃같은 삶을 살다 다용도실에 처박힐 운명이겠구나. 아니면 그보다 더욱 안타까운 운명을 맞이하겠구나.




몰랐지, 에어프라이어가 잘 될줄 알았나


그 후로 10년이 지나고 나는 자취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크고 시끄러운 소형가전을 살까 말까 100번은 고민하는 모지리가 되어있었다. 스무살 무렵부터 SNS에 사용후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냉동 식품을 튀겨 먹는 것을 시작으로 각종 신박한 레시피가 돌았다. 통삼겹을 넣는건 예삿일이었고 과자나 비빔밥을 넣기도 했다. 식품 기업들은 그 파급력을 인지했는지 냉동식품 포장지에 에어프라이어 전용 레시피를 기재했다. 심지어 에어프라이어 전용 제품들도 시장에 나왔다.


지난 10년 동안 자취생들은 진화했다. 1인 가구의 주연령층이 확대되면서 구매력이 상승했고 페이스북과 싸이월드를 하던 그들은 인스타그램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온갖 일상을 공유했고 그 일상에는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하여 먹은 음식'도 당연히 포함되었다. 그들에게 영향력이라는 것이 생긴 것이다. 그 영향력은 에어프라이어를 주방으로 끌어들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20년, 외식시장을 뒤집어 놓은 코로나는 기어이 여기서도 등장한다


코로나가 터진 후로는 집에 체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내식(內食)이 권장되면서 그 인기는 그칠줄을 몰랐다. 초기의 에어프라이어에서 더욱 발전된 2, 3세대의 에어프라이어도 나왔다. 여전히 자취생의 절친은 전자레인지지만 에어프라이어는 분명 그 아성을 위협했다. 1인 가구로부터 번진 에어프라이어는 이제 일반가정에도 하나, 둘 스며들기 시작했다. 10년전 내 첫 에어프라이어 사용 리뷰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엄마는 이제 구매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목은 확실히 끌었다, 이제는 꾸준함을 증명할 차례

에어프라이어는 가만히 있었다. 자취생들이 그를 왕좌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의 인기는 SNS와 마케팅의 허상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맛있는걸 편리하게 먹고 그걸 공유하고자 하는 시대니까. 이제 그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음식을 데우는 전자레인지에 만족하지 못한 자취생들은 바삭함을 원했고 에어프라이어는 그 요구에 성실히 응했다. 이미 자취생 위시리스트에 당당히 자리한 에어프라이어, 베스트셀러는 이미 달성했다. 과연 스테디셀러에 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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