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전라북도 정읍에 있는 한 국책연구소에 출장 예정이다. 이 연구소는 특정 물질의 안전성에 대해 평가를 해주는 기관이다. 내가 해외에서 수입하는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꽤 많은 비용을 들여 이곳에 평가를 의뢰했다. 오늘은 중간 상황에 대해 확인을 하고 협의할 사항이 있다. 한 건을 의뢰하는데 약 삼천만 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 평가를 받기 위해 기다린 기간이 꽤나 길다. 거의 반년을 기다렸다.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평소라면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익산역에서 내려 렌터카를 타거나 택시로 이동을 했을 텐데 오늘은 왠지 직접 운전하여 가고 싶다. 오늘은 이곳 한 곳만 다녀오면 일정이 끝나니 시간도 충분하다. 예정보다 일찍 출발하여 중간중간 쉬면서 여유롭게 이동할 생각이다.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든 날씨에 다소 들뜬 기분이 한몫했던 것일까? 두 달 전에 터널에서 엄청 강한 그 놈을 만난 이후 앞으로 운전하길 포기하려고 했던 내가 이렇게 먼 길을 운전하여 이동하려고 하다니 그만큼 운전에 대해서는 많이 익숙해졌다. 다만 부지불식간에 그 놈이 올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갖고 있다.
‘그래. 천천히 운전하면서 이번 추석 연휴가 끝나고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면 어떻게 설득을 할지 생각이나 하면서 가자!’
약 네 시간 남짓 걸려 연구소에 도착했다. 다행히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왔다. 담당 연구원이 있는 3층의 한 사무실에 들어가자 반갑게 반겨준다. 오늘을 합치면 세 번째 만나는 연구원이다. 20대 후반으로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일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진지함은 나보다 훨씬 커 보이는 사람이다. 우리는 조그만 원탁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본격적인 일 얘기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명치 아래쪽에서부터 형용할 수 없는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상대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만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말에 전혀 집중을 못하겠다. 심지어 상대가 소리는 내지 않고 입모양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상하리만큼 상대의 눈을 쳐다볼 수 없다. 명치 아래쪽에서 시작한 갑갑함이 가슴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너무 답답해지기 시작하고 그대로 의자에서 넘어져 바닥에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와중에 내가 이대로 미팅 중에 쓰러지면 상대는 얼마나 난감할지 생각해 본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이다. ‘어,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며 눈을 감고 싶어 진다. 그렇다. 그 놈이 또 온 것이다.
미팅을 시작하고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았다. 미칠 것 같은 답답함과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한 기분, 여기에 당장이라도 쓰러져 허공에 대고 손과 발을 허우적거리며 난동을 부려야 끝날 것 같은 상태가 됐다. 힐끗힐끗 나를 쳐다보던 상대도 내가 어딘가 불편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게 대화 중에 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죄송한데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다급히 말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상대도 당황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이라면 ‘말씀 중에 죄송한데,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라고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가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양해를 구하는 그 짧은 시간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무례하다. 그렇게 나는 상대가 한창 이야기를 하는 중에 아무런 말도 없이 벌떡 일어나서 그 자리를 피해 사무실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고 세면대 앞에 서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사라지고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안정됐다고 좋을 리 없다. 이젠 일대 일 미팅도 제대로 못하는 나를 생각하니 짜증 섞인 눈물이 나려고 한다. 꾹 눌러 참는다. 그렇게 거울이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초라하기 그지없다. 순간, 이렇게 초라하고 무기력하고 볼품없는 내가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욕심이 너무 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한 편, 만약에 이런 나에게 그녀까지 옆에 없다면 나는 더욱더 아무것도 아닌 무기력 하고 자존감이 낮은 그저 그런 인간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반드시 이번 일을 극복하리라 마음을 다잡아 본다. 세면대 물을 강하게 틀고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물이 다소 차갑게 느껴진다. 한결 나아졌다.
최근에 그 놈이 찾아오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아무래도 그녀와 헤어져 혼자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확실히 그 놈이 자주 찾아온다. 그럴수록 더욱 그녀 부모님을 설득해 당당히 그녀와의 만남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미팅 장소에 돌아왔다. 상대에게는 어제 과음으로 인해 속이 좋지 않았는데 대화 중에 갑자기 신호가 와서 화장실에 다녀왔다고 적당히 둘러댔고 양해를 구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미팅을 마쳤고 나는 서둘러 서울로 돌아갔다. 해가 진 상황에서의 운전은 싫기 때문이다. 수백 번 이런 증상을 겪으면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그 놈이 왔을 때의 두려움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다만 그 놈이 가고 난 이후의 상실감, 무기력감 등 자존감이 갑자기 낮아져 우울해지는 상황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최근 몇 개월 동안은 그나마 그녀가 옆에 있어서 이런 경험을 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지만 오랜만에 또 겪으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기분이다. 어찌 됐든 지금의 나에게 그녀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이번 주는 추석 연휴가 있다. 30대 중반이 되고 나서는 추석이나 설날 연휴에 거의 한국에 있지 않았다. 대부분 가까운 해외로 나가 시간을 보내고 연휴 마지막 날에 귀국하여 출근을 하곤 했다. 많은 미혼 남녀들이 그렇듯 나도 명절 기간에 홀로 고향집이나 친척집을 방문하면서 미혼이라는 이유로 보이지 않게 받는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래서 매해 반복되는 이러한 스트레스를 피해 가급적이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래도 해외에 나가서 명절에 고향집에 가지 못한다는 핑계는 그럴듯하게 통했기 때문에 별도의 부가 설명이 없이도 명절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미 연초에 금년 추석의 일정에 대한 계획도 세웠다. 나를 포함한 동갑내기 노총각 셋이서 3박 4일 일정으로 홍콩과 마카오 여행을 계획했고 이미 호텔 예약이나 항공권의 발권도 마친 상태다. 하지만 고민이다. 명절 이후에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서 이 난국을 해결해야 하는데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물론 우리의 여행 계획은 그녀와 내가 만나기 전인 금년 3월에 세웠고 그녀를 만난 것은 금년 7월이다. 순서로 보면 당연히 훨씬 전에 약속했던 이 여행을 가는 것이 맞지만 왠지 이런 상황에서 남자 셋이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이 심적으로 편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명절 연휴에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명절 이후 그녀의 부모님과 만나 무엇인가 결론을 내기 전까지는 당분간 만나는 것을 보류하고 있는 중이다. 당분간이라고 해봐야 일주일 정도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서로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화 통화나 메시지는 서로 이전과 동일하게 주고받고 있다. 물론 그녀 부모님이 우리의 만남에 대해 반대가 없었을 때와는 달리 다소 조심하고 있는 중이다.
내 지금의 상황과 심정에 대해 그녀에게도 얘기를 했고 그녀도 기꺼이 다녀오라고 한다. 차라리 지금은 친구들과 여행을 갈 상황이 아닌 것 같다고 그녀가 말했다면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떻게든 여행을 취소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다음 주 그녀 집에서 있을 그녀 부모님과의 만남을 앞두고 여행을 떠났다.
사실 홍콩은 마카오를 가기 위해 거쳐가는 수단이며 실질적으로는 마카오에 카지노를 즐기러 가는 것이다. 마카오를 가기 위해서는 항공편으로 직항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홍콩에 들러 시내를 둘러보고 페리를 이용하여 마카오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일 년에 한두 번은 친구들과 이곳 마카오에 카지노 게임을 하러 종종 왔다. 그렇다고 스케일이 크게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테이블 게임은 즐기지 않고 슬롯머신류를 주로 하다 보니 크게 잃지도 않지만 크게 따지도 않는다.
홍콩을 경유하여 마카오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멋진 고급 호텔들이 즐비한 익숙한 풍경이다. 명절 스트레스를 피해 놀러 오기는 했지만 해결하지 못한 것이 남아 있어 그런지 이전과 달리 즐겁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친구가 예약한 호텔 방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최고 퀄리티의 방이다. 약 30평 정도 되는 엄청난 규모의 스위트룸이다. 이런 최고급 호텔에 최상급 방이라니. 예약한 친구도 방에 들어서자 놀란 눈치다.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정말로 우리가 선지불한 금액으로 예약된 방이 맞는지를 두 번이나 확인했을 정도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해당 호텔에 몇 차례 숙박한 이력으로 운 좋게 업그레이드되어 예약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좋은 룸을 예약해서 좋다는 생각은 잠시, 이런 곳에 그녀와 꼭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것을 보면 항상 그녀가 떠오르는 것을 보니 분명히 내가 그녀를 좋아하기는 하는 모양이다.
친구들은 서둘러 카지노로 내려갔지만 나는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일층의 야외 수영장으로 갔다. 이 드넓은 수영장에 나를 포함하여 서너 명 밖에 보이지 않는다. 축구장 절반 정도의 규모 수영장이다. 수백 명이 함께 해도 남을 크기다. 도박의 도시이니 만큼 모두들 카지노에 있는 모양이다. 홀로 물에 몸을 담그고 몇 차례 왔다 갔다 하며 여유를 즐겼다. 어차피 어렵게 온 여행이니 나름 즐기려고 애쓴다. 썬배드에 누워 맥주도 마셔보고 책도 읽어 보고 최대한 여유를 부려보지만 그때마다 느껴지는 허무함, 무엇인가 완성되지 않고 불안정한 이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가짜 여유를 부리고 있는 내 모습을 스스로가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미지근한 여행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회사에 출근하여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머릿속엔 온통 곧 있을 그녀 부모님과 만남에서 어떻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생각뿐이다. 지난 3박 4일의 여행 동안 곰곰이 정리하려고 했으나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역시나 솔직한 나를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 직접 나를 집으로 불러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최소한 나를 어느 정도 좋게 봐준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완전히 맘에 들지 않았다면 굳이 나를 집에까지 불렀을 리 없다.
드디어 토요일이 됐다. 오후 2시에 그녀의 집에서 부모님을 만난다. 혹시라도 늦을까 서둘러 그녀의 집으로 갔다.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왔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지만 배는 고프지 않다. 집 주변을 둘러보니 찜질방이 보인다. 곧장 들어갔다. 좀 쉬다가 씻고 가야겠다. 출발 전에 이미 씻고 왔지만 왠지 다시 씻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집에 들어갔는데 혹시라도 나의 냄새나 체취가 느껴질까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정말로 더디게 간다. 찜질방의 야외 테라스에 나와 보니 멀리 그녀의 집이 보인다. 곧 저 건물 속의 그녀 집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그녀의 부모님 앞에 앉아 있을 나를 그려본다. 회사에서 국내외 많은 직원들 앞에서 발표를 앞두고 느꼈던 심장의 박동과 유사한 두근거림이 지금 느껴진다.
그녀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그녀가 다소 어색한 미소로 나를 맞아준다. 연애를 하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집까지 바래다주었지만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건 처음이다. 그녀와 대화를 하던 중에 그녀가 묘사하는 집안의 모습을 그리며 대략 어떻게 생겼을 것이라는 상상은 했지만 직접 들어가 보니 사뭇 다른 풍경이다. 널찍한 현관에 여기저기 문이 꽤나 많이 보인다. 거실로 가는 복도도 꽤 넓다. 얼핏 봐도 50평은 넘어 보인다. 다소 연식이 있는 아파트지만 고풍스러운 가구들과 잘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군데군데 가족사진이 눈에 띈다. 국내외 여기저기를 여행하며 찍은 각양각색 크기의 사진들이 마치 가족의 성장일기처럼 걸려 있다. 그럴 필요까지 없지만 나도 몰래 왠지 주눅이 든다. 어렸을 적부터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유독 가족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많이 걸어 둔 집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친구는 어김없이 성격도 좋고 꽤 괜찮은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왠지 그녀도 그런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실로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보인다. 다행이다. 어머니의 표정이 썩 나쁘지 않으시다. 최소한 집에까지 불러 놓고 박대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생기자 마음이 조금 놓인다. 이전에 마지막 뵀을 때 나를 노려보시며 적개심 가득한 모습을 기대했기 때문에 지금의 이 표정이 감사할 정도다. 안방에서 그녀의 아버지께서 나오신다. 나름 손님이 온다고 하니 옷을 갈아입고 나오시는 모양이다.
거실에는 큼지막한 소파가 있었지만 나는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고 그런 내 옆으로 그녀도 앉는다. 자연스레 그녀의 부모님도 우리 앞에 앉으셨고 대화는 시작됐다. 그녀의 아버지는 몇 번이고 편히 앉으라고 하시지만 왠지 무릎을 꿇고 앉는 게 편하다.
부모님은 이미 지금까지의 사정에 대해 이미 잘 알고 계셨다. 다만 당시 우리 어머니의 말과 행동에 대해 언짢으셔 다소 격앙되어 있던 그녀의 어머니와는 달리 그녀 아버지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해주시는 것 같은 분위기다. 본인들이 우리 어머니의 사정을 정확하게 모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던 대로 과거에 내가 살아온 경험과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꾸밈없이 설명을 했다. 여기에 우리 어머니가 했던 말과 행동도 실제로 어떤 의도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그녀가 얘기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실제로 그녀 부모님들은 우리 엄마가 그런 의도로 말씀을 했다면 오히려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하신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모르는 상황에서 딸이 남의 집에서 그런 말을 듣고 집에 왔다면 좋아할 부모는 아무도 없다는 말에는 나도 충분히 동감한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그녀 아버님이 나를 여전히 신뢰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나는 그 기세를 몰아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모든 것을 어필했다. 회사에서의 입지, 현재 벌어들이고 있는 월수입,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으며 그녀가 나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살 계획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결혼을 하면 그녀가 일을 하지 않고 가정주부로서 살기를 원한다는 내 희망 사항까지도 모두 말했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아빠가 가져오는 월급으로 엄마가 집에서 살림을 하며 자식들을 돌보는 가정을 동경했다. 내 주변에는 대부분 그런 가정이지만 우리 집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나중에 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면 꼭 그렇게 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수입만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데 다행히 이 시기의 내 수입은 꽤 괜찮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강력하게 그렇게 얘기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녀의 부모님은 나의 일관적이고 확신에 찬 강력한 어투에 마음이 놓이신 것 같다. 대화가 막바지에 이를수록 그녀 어머니의 표정이 확연히 밝아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처음부터 나를 긍정적으로 봐주신 그녀 아버지는 이미 대화의 중간부터 더욱 내 편이 될 것임을 나는 직감하고 있었다.
“우리 딸이 자네와는 도저히 헤어질 수가 없다고 하니 만나서 자네 얘기를 좀 들어보려고 했는데, 자네 생각을 잘 들었고 실제로 앞으로도 계획한 그대로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구먼. 말이 나온 김에 자네 부모님을 한 번 뵙는 게 어떤가?”
“네!?, 저희 부모님을 뵙는다는 건, 상견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 내가 특별히 말을 잘한 것은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솔직하게 나와 내 환경에 대해 모든 것을 포장 없이 전달했다. 그런 나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뭔가 부정적이고 따끔한 한 마디를 예상했던 나의 기대와는 달리 졸지에 상견례를 하게 됐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조금은 허무하게 느껴지면서 긴장돼 있던 어깨의 근육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다.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데도 느끼지 못했던 다리의 저림이 서서히 느껴진다.
“당장 날짜를 잡고 자리를 만들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집을 나섰다. 나를 배웅해주는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분명히 ‘잘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엄마께 전화를 걸어 그녀의 부모님을 만났고 그녀 부모님께서 상견례에 대해 제안했다는 얘기를 했다. 엄마는 드디어 우리 아들이 이제 장가를 가는 모양이다고 하며 기뻐하신다. 날짜는 언제든 좋으니 사돈 돈 분들의 일정에 맞추라고 하신다. 사돈이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오는 것을 보이 엄마도 좋기는 좋으신 모양이다. 그런데 엄마가 한 마디 하신다.
“그나저나 아빠는 부를 거니? 엄마 생각에는 굳이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엄마의 질문에 순간 머리가 복잡해진다. 아빠는 20년 넘게 따로 살고 있고 거의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두세 번 정도 행정적인 문제로 통화를 해본 것이 전부다. 누나가 결혼할 때도 내가 직접 결혼식을 알렸지만 상견례는커녕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 아빠를 이런 자리에 불러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난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상견례를 하는데 엄마와 둘이 앉아 있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조그만 욕심이라면 그저 아빠가 그 자리에 앉아서 머릿수를 채워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금 전 그녀의 집 여기저기에 걸려 있던 화목한 가족사진이 스쳐 지나간다. 오해가 풀려 큰 산을 넘었다는 홀가분한 기분은 잠시였다. 상견례와 결혼에만 집중을 해도 부족할 지금, 왜 나는 이런 것까지 걱정을 해야만 하는지 내 환경과 조건이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상황은 내 의지로 만든 것이 아닌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