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본 인생은 비교적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익숙한 사람과 함께 타는 비행기는 그동안 홀로 비행기를 타면서 느꼈던 뭔가 잘못될 것 같은 불안이나 두려움이 없다. 오히려 두 시간 남짓의 비행시간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다. 옆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도 이런 나의 기분을 이야기하자 의외라는 반응이다. 하기야 한 달에 서너 번씩 출장을 위해 비행기를 타는데 그때마다 불안함을 지닌 채 비행기를 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비행기 타는 행위를 피해야 하지 않냐는 반응이다. 하지만 일의 특성상 해외에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 퇴사를 하지 않는 이상 그럴 수 없는 처지다. 그러고 보니 매번 비행기를 타기 전에 평소에는 잘 챙겨 먹지 않는 공황장애 약을 미리 챙겨 먹는 것이 익숙해졌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공황장애는 매우 불편할 뿐 익숙해지면 그럭저럭 버틸만하다. 더구나 지금처럼 옆에 익숙한 누군가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일본 출장을 그렇게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여행을 위해 온 것은 처음이다. 3박 4일 일정이 시작됐다.
12월의 오키나와는 한국의 초가을 날씨와 비슷한 것 같다. 다만 청명한 하늘은 제주도를 닮았으며 거리의 풍경은 마치 하와이와 비슷하다. 소위 본전을 뽑기 위해 이곳의 명소 여기저기를 촉박하게 둘러보지 않기로 했다. 일부러 차도 빌리지 않았다. 그저 호텔에서 3일 간 푹 쉬며 충전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택시로 명소 한 두 군데 둘러보면 그만이다.
4개월 남짓 짧은 기간 연애를 했지만 3일 동안 하루 종일 서로가 함께 있기는 처음이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은 보이지 않았던 서로의 세세한 차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보통 아침을 먹지 않는 나와 가볍게나마 꼭 아침을 챙기는 그녀, 식사라는 것은 그저 배고픔이라는 현상을 달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여 배만 부르면 뭐든 괜찮다고 생각하는 나, 한 끼를 먹어도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챙겨야 한다는 그녀다. 2~3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이동할 경우 운동삼아 걷자는 나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선호하는 그녀. 이렇게 매일 함께 있는 동안 의견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이 끊임없이 생기기 시작한다. 대부분 누가 맞고 틀리다고 할 수 없는 서로의 생활패턴이 달라 자연스럽게 생기는 충돌이다. 그러다 보니 평생 싸우지 않을 것 같았던 그녀와 이 짧은 3박 4일 동안 여러 차례 말다툼을 했다. 그때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으로 이내 내가 먼저 사과를 했고 화해를 했다. 결혼 전 오키나와 여행은 마치 짧은 예비 신혼생활과 같았다.
한국에 돌아오니 결혼 전 해야 할 일들이 아직 산더미다. 무엇보다 그녀와 내 친구들에 우리를 서로 인사시켜야 한다. 그녀의 친구들을 만나는 저녁식사 자리다. 친구들을 보자 그녀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나이차로 인한 어색함이 느껴진다. 그녀의 남자 친구 여자 친구를 막론하고 왠지 한참 어리게 느껴지는 지금이다.
외적인 모습으로 인해 어리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서로의 관계로 인해 느껴지는 면이 크다.
즉, 내가 남편이라면 그녀는 동등한 입장의 ‘아내’다. 그러다 보니 그녀와 내가 입장이 동등한 부부 사이라는 생각에 그녀의 나이가 나와 11년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친구들과는 이런 조건이 없다 보니 확실히 차이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생물학적 나이 차가 나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다.
아무래도 그들 중에서 가장 빨리 결혼을 하게 되는 그녀를 데려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그랬을까?
나를 대하는 그녀의 친구들은 궁금증과 더불어 탐색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더구나 나이 많은 아저씨와 결혼을 한다고 하니 나의 어떤 면이 마음에 들어 이렇게 빨리 결혼을 결정했는지 이유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다 보인다. 그럴 때마다 그다지 내세울 것이 없는 나로서는 난감하다.
그들도 아마 속으로는 ‘에이, 별 것 없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매번 그녀 친구들과 만남은 대부분 이렇게 비슷한 패턴이었다. 그럴수록 그녀 친구들 앞에서는 평소보다 더 그녀를 세세하게 챙기려 노력하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나의 지인들에게 그녀를 인사시키는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인들 대부분은 그녀에게 왜 나 같은 아저씨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는지를 묻는다. 나와는 허물없이 막역한 사이기 때문에 그들이 이런 짓궂은 질문을 할 거라는 예상은 했으나 그녀는 매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나중에 들었던 얘기지만 처음에 내 친구들을 봤을 때 동네 아저씨들 같은 친구들 모습에 속으로 당황했고 그때 처음으로 11년이란 나이 차이가 현실로 다가왔다고 한다. 여기에 그런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들이 밥을 먹는 내내 자신만 쳐다보며 일방적으로 질문 공세를 해대니 당황한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결혼식을 앞두고 서로를 둘러싼 각각의 환경에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결혼식이 다가오면서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저녁식사자리가 끊이질 않는다. 대부분 술을 겸하는 자리이며 나를 축하해 주는 자리다 보니 과음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저녁 약속이 있다. 내일 일정이 있어 적당히 조절해야 하지만 분위기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내일은 대전에서 어머니가 올라오신다. 예비 장모님과 함께 결혼식에 입을 한복을 맞추러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와 그녀도 함께 동행하여 결혼식과 웨딩 촬영에 사용할 한복을 대여할 예정이다.
공황장애를 증상을 처음으로 겪은 이후부터는 이상하게도 전날 과음을 하게 되면 다음 날 피곤함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이가 들어가는 시점에 맞물려 생긴 현상이니 꼭 공황장애가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확실히 과음한 다음 날에 무리해서 일정을 소화하면 어김없이 그 놈이 오기 때문에 가급적 하루 휴가를 내거나 혹시 휴가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애초에 술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곧 결혼식을 앞둔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오늘 오전부터 양가 어머님을 모시고 한복을 맞추러 가는 날이지만 어제의 과음으로 인해 꽤 힘들다. 오전부터 두 분의 어머니, 그녀와 함께 한 대의 자동차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함을 알면서도 어제 무리를 한 것이 후회스럽다. 하지만 익숙한 사람들과 동행하고 있으니 별일은 없을 것이라고 위안해 본다. 이곳저곳을 오가며 오전을 보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누가 봐도 안색이 좋지 않다. 하지만 예비 장모님과 그녀 앞에서 가능한 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어 견뎌본다.
그렇게 오후 5시 즈음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내 옆에는 그녀가 앉아 있고 뒷좌석에는 두 어머님들이 타고 계신다. 얼마를 달렸을까? 고개가 자꾸 '픽'하며 오른쪽으로 꺾여 목이 부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목이 꺾여버린 장난감 인형처럼 말이다. 평소 같으면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 건강한 목인데 오늘따라 꺾일 것 같은 기분이 싫어 자꾸만 목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 기분이 들기 시작하자 목에 점점 힘을 주며 곧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온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 행위가 반복되던 어느 시점에 갑자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드나 싶더니 이내 우려하던 그 놈이 왔다. 익숙한 사람과 동행할 때 한 번도 겪지 못했던 그 놈이 나와 제일 익숙한 우리 엄마, 앞으로 누구보다도 더 익숙해질 그녀와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온 것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지금껏 내가 확실히 장담했던 익숙한 사람과 있을 때는 그 놈이 오지 않는다고 여겼던 불문율이 깨진 것이다. 그렇다고 그 놈이 왔을 때 내가 겪는 소위 공황발작 증세를 지금 이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줘서는 안 된다. 나는 재빨리 그녀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녀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그 놈이 온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뭔가 심각함을 눈치챘는지 그녀는 재빨리 내 목을 주무르기 시작한다. 이런 모습이 뒷자리의 어머님들께 이상하게 보일 수 있어 그녀는 능숙하게 한 마디 한다.
“그러게 어제 술을 좀 적당히 했어야죠. 피곤에 절었네.”
혼자 있을 때 그 놈이 온다면 소리도 질러보고 온 몸을 뒤척여 쫓아내려고 시도라도 해봤겠지만 뒷좌석에는 내가 공황장애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부모님들이 있다. 그녀도 내가 공황장애로 고생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지만 실제로 이런 증상이 온 내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보여주기 싫었다. 더구나 나는 지금 이들을 태우고 운전을 하고 있다. 그 놈이 나를 마치 미라처럼 온몸을 천으로 칭칭 감아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는 기분이다. 나는 이렇게 의식이 있고 움직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녀가 목을 계속 주물러 주어 나를 지켜줄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계속하여 알려줬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십분 정도 지나면 괜찮아질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았지만 버틸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차를 갓길로 옮겨 정차를 했고 그녀에게 남은 운전을 맡겼다. 목적지까지 불과 10여분 남은 상황이었다. 어머니들께는 너무 졸려서 안 되겠다며 적당히 둘러댔다. 10분을 버티지 못해 억울하고 분했다. 그러나 그녀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평소에 그 놈이 왔을 때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의 일을 계기로 그녀가 나의 증상에 대해 더욱 신경을 써주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오늘 운전 중에 그 놈이 왔을 때 외적으로 특별히 우려될 만한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다. 다만 평소와 달리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급기야 고속도로의 갓길에 차를 세운 충분히 있을 법한 상황이었지만 문제는 겁에 질린 나의 표정이나 눈동자가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던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외상이 없이 힘들어하니 오히려 더 안쓰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주다니 고맙다. 아니 감사하다. 나라면 결정적인 하자를 감춘 나를 달갑지 않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로서 우리는 나의 공황장애까지도 제대로 공유하게 됐다.
그렇게 결혼식을 약 한 달 남겨둔 1월의 어느 날, 그녀가 몸이 평소와 다르다고 말한다. 평소보다 쉽게 지치고 진작 시작됐어야 할 생리도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순간 임신이 아닐까 직감했다. 우리는 약국에서 구매한 간이 임신진단기를 통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분이 묘하다.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내가 진짜로 결혼을 하는지 실감이 제대로 나지 않았는데 아이를 가졌다는 그 말에 우리가 진짜 결혼을 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 이제 신혼생활을 시작하려는 찰나 아이도 함께 한다는 생각에 약간 부담을 느꼈지만 기분 좋은 부담이다. 우리는 바로 산부인과에 가서 정식으로 임신임을 확인했다. 6주 차라고 한다. 6주 차 라면 오키나와에 놀러 갔을 때 생겼다는 얘기다. 처음으로 함께 갔던 여행에서 티격태격 싸우면서 만들어진 아이인 셈이다.
첫째가 태어나면 나는 분명 그 아이의 이름을 ‘봄’이라고 지을 것이다. 예전부터 결혼을 하면 아이 넷을 낳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아이를 많이 낳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래서 성별에 관계없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이름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결혼이 늦어지면서 아이를 넷이나 낳을 수 있을까 의문도 들었지만 어찌 됐든 첫째는 ‘봄’이라고 지을 작정이다.
그렇게 우리는 ‘봄’ 이를 품은 채로 겨울의 끝자락인 2016. 2. 28일 결혼식을 올렸다. 새로운 봄이 오는 것을 반기듯 어마어마한 눈이 내린 날이었다.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피로그-
2015년 3월 처음 경험하게 된 공황장애의 증상들이 오랜 기간 저를 괴롭히고는 있으나 지금은 꽤나 익숙해졌습니다. 이렇게 익숙해진 지금도 처음 그 증상을 겪었을 때의 기분과 당시 상황이 간혹 떠오르곤 합니다. 한번 생각이 나기 시작하면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날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떠올라 생각조차도 하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그 증상에 익숙해져 여유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다시 그날의 경험이 떠오르면 메모로 남겨두곤 했지요. 그것들이 이렇게 한 편의 글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글로 남기게 된 이유는 혹시라도 이런 저의 기억과 경험들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개개인의 상황은 모두 다를 수 있으나 증상이 왔을 때 느끼는 괴로움과 고통, 그리고 그 이후에 밀려오는 무력감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제가 겪었던 그리고 겪고 있는 공황장애의 고통이 모두의 표준은 될 수 없지만 최소한 ‘이런 사람도 있구나. 내가 이상한 게 아니네.’ 정도로 위안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대단하지 않은 이 ‘공황장애와 결혼’을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옆에서 건강한 스트레스로 격려해 주신 ‘Lee’님과 ‘루피’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