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mpunyee Apr 03. 2021

잘 짜인 사기극(공황장애와 결혼#25)

행복한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이성적 판단이 흐려질 수 있으니..

결혼 날짜가 정해지고 본격적인 결혼식 준비를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그놈이 오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바빠서 줄어든 것이 아니라 결혼 준비를 위해 그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줄어든 것임을 알고 있다. 익숙한 누군가와 함께 있으니 그놈이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 왔다고 하더라도 내가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 경우에는 익숙한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경우에는 그놈이 잘 오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놈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야 ‘맞다! 내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지내고 있다. 하지만 방심하지 않는다. 매번 그랬지만 그놈에게서 해방됐다고 자만할 때마다 늘 그놈은 더 강력하고 크게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의 상황에 대해서 그녀에게는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항상 내 옆에 있기 때문에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현재 겪고 있는 이 증상이 별 것 아니라고 믿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집 근처의 병원에 약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회사에서 일찍 퇴근하여 가벼운 차림으로 갈아 입고 병원까지 운동삼아 걸어갔다. 병원에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 약을 꾸준히 복용하라고 권한다. 그래서 한 번 방문하면 2주 분량의 약을 처방해 준다. 그렇지만 그놈이 와도 어느 정도 익숙하게 이겨내고 있는 지금, 나는 이 약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먹기는 싫었다. 그래서 의사와 상담 후 증상이 있을 것 같거나 증상이 왔을 때만  먹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2주 분량의 약이면 나에게는 보통 서너 달 정도의 분량이 된다. 자주 왔던 병원인 만큼 익숙하게 등록을 하고 자리에 앉아 의사와의 상담을 기다린다. 오늘따라 사람이 없다. 로비에는 나 혼자만 앉아 있다. 나는 ‘OO정신과의원’이라는 간판과 내 얼굴이 잘 보이도록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방금 찍은 사진을 보냈다. 내가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리려는 목적이다.

사진을 확인한 그녀에게서 연락이 바로 연락이 왔다. 정신과의원이라는 간판이 보이니 놀랄 법도 했지만 사진 속의 내 표정이 밝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녀의 반응은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단한 답변이다. 나는 이내 연초부터 시작된 공황장애 증상으로 인해 현재 약을 복용 중이며 약이 떨어지면 이렇게 병원에 와서 상담을 하고 다시 약을 받아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자 TV나 각종 매스컴에서 많은 현대인들이 공황장애로 고생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그런 줄 몰랐다며 조금은 놀라는 눈치다. 그리고는 이내 왜 자신에게 미리 말을 하지 않았냐며 다음부터 병원에 갈 때는 본인도 함께 가자는 것이다. 그녀가 의외로 놀라지 않아 나도 안심은 됐지만 오히려 그런 나를 걱정해 주고 병원에 함께 다니겠다는 말에 얼마나 마음이 든든해졌는지 모른다. 앞으로 그놈이 온다고 할지라도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녀와 만나는 내내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 늘 마음에 걸렸지만 이런 식으로 나마 고백을 하고 그녀의 이해를 구하자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이전부터 나는 누군가가 나의 이런 모든 상황을 알아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다가와 '괜찮으니 기운 내라! 함께 이겨내 보자!'라고 말해주길 기다렸다. 오늘 다시 한번 느꼈다. 그 누군가를 제대로 찾은 것 같다.




남녀가 결혼을 할 때 직면하는 여러 문제 중에서 신혼집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 아닌가 한다. 원하는 곳에 원하는 종류의 집을 구하는 데 있어서 걱정할 필요 없이 예산이 충분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더구나 내 경우에는 부모님께 손을 벌릴 처지가 못됐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약 12년 간 회사생활을 하면서 내가 갖고 있던 돈이라고 해봐야 전세로 살고 있던 오피스텔과 몇 천만 원 정도의 현금을 합치면 약 2억이 채 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큰 돈일 수 있지만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금액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그녀에게 왠지 미안하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액수다. 물론 더 모으려 했으면 훨씬 더 모을 수 있었다. 20대 초 어려운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마음으로 직장을 구하자마자 엄마와 함께 힘을 합쳐 대전에 엄마가 살 수 있는 제대로 된 집을 구하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기 때문에 정작 나만의 자산을 모으기 시작한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깝거나 아쉽지는 않다. 누추한 집에 사는 엄마의 모습을 옆에서 그냥 두고 보는 자식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어머니가 집을 얻고 안정적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나까지도 주변의 일들이 수월하기 풀리는 것을 경험했기 문이다. 이 시기에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을 절실히 실감했다. 확실히 집안이 평안해야 바깥 일도 수월하게 되는 것 같다. 비록 이 집이 내 명의로 되어 있는 집이라고 하나 절대 건드릴 생각은 없다. 이건 우리 엄마의 노후 자금이니 말이다.


본격적으로 신혼집을 어디로 할 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와 상의하고는 있었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난번 결혼경력과 관련하여 서류 몇 가지를 보내달라는 전화 이후 처음 받는 전화다. 익숙하지 않은 그녀 아버지로부터의 전화라 조금은 당황했지만 적어도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예비 장인의 입장에서 예비 사위에게  전화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놓인다.


“신혼집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직 우리 OO가 어리기도 하고 제대로 살림이나 할지 몰라 걱정이 돼서 생각해 봤는데 괜찮다면 우리 집 근처에 전세를 얻어 시작하면 어떨지 하는데. 그러면 우리가 어느 정도 가르치고 돌봐가며 익숙해지면 그때 가서 다시 고민을 해도 되지 않겠나? ”


그녀의 집 근처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전혀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여러 문제로 약간은 망설이고 있었던 터라 막상 예비 장인께서 직접 물으시니 난감했다. 그렇게 난색을 표하며 얼버무리자,


“혹시라도 돈 때문이라면 자네가 부담할 수 있는 부분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내가 부담하겠네. 어차피 우리 딸 시집갈 때 주려고 미리 준비한 것도 있으니 언짢게 생각하거나 부담 갖지 말게나. 생각해 보고 알려주게.”


전화를 끊고 예비 장인어른의 제안을 곱씹어 본다. ‘언짢다니..’ 당치도 않다. 단지 미안할 뿐이다. 아울러 조금은 창피한 마음도 든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는데 원하는 집을 구하지 못해 난감한 지금의 상황을 선뜻 나서서 해결해 주신다고 하니 당연히 고맙다.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집은 어떻게는 남자가 알아서 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한국의 일반적인 문화에 어떻게는 맞춰야 한다는 강박에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 않다. 무의미한 시간 낭비다. 어차피 지금 난 매월 꾸준히 돈을 벌고 있으니 살면서 갚아 나가면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께서 이런 제안을 하셨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 그녀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다. 결혼식 날짜가 정해지고 신혼집을 어디로 어떻게 할지 그녀와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대화가 그녀 부모님 귀에 들어갔고 그때 이미 그녀 아버지께서 제안을 하신 모양이다. 하지만 그 제안을 들었을 때 내가 언짢아할지 모르니 당신께서 직접 나에게 의사를 물어보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녀 또한 어릴 때부터 살아온 익숙한 동네에서 결혼 후에도 살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내가 살아왔던 터전도 있기도 하니 그 제안을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혹시라도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전화에 기분이 상하지 않았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렇게 나는 그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엄마께도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엄마는 하나뿐인 아들이 결혼을 하는데 제대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한다. 그리고는 당신께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하여 돈을 보태는 것이 도리가 아닌지 물으신다. 그럴 필요는 없다는 나의 대답에 엄마는 장사를 하면서 조금씩 적금을 들었는데 곧 만기일이 다가오니 보태주겠다고 하신다. 약 3천만 원 정도다. 얼마나 부은 적금인지 묻자 4년 만기라고 한다. 그 말을 듣자 눈물이 핑 돈다. 작년에 6천만 원 정도를 들여 차를 샀던 것이 후회된다. 엄마가 식당일을 하면서 힘들게 모은 3천만 원과 내가 술김에 샀던 6천만 원의 자동차, 두 배 차이가 나는 금액이지만 엄마의 3천만 원이 훨씬 고귀하고 가치 있게 느껴진다. 돈의 가치에 대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자식이 결혼하는데 그 정도라도 보태지 않는다면 부모로서 미안할 것 같다는 말에 염치가 없지만 받기로 했다.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고 우리 아이가 결혼을 할 때 나도 과연 이럴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신혼집을 구하기 전까지는 당분간 원룸에서 지낼 생각으로 서둘러 현재 살고 있던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나왔다. 노총각의 변변치 않은 살림살이는 대부분 버리고 일부 쓸 만한 것들은 창고를 빌려 보관하기로 했다. 그리고 처분한 오피스텔의 전세금과 갖고 있던 현금을 모두 합쳐 그녀의 계좌로 보냈다. 그녀의 계좌로 돈을 모두 보낸 며칠 후, 기회가 되어 그녀 그리고 예비 장모님과 함께 신혼집을 둘러보기로 했다. 세 집 정도 봤지만 결정은 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둘러본 세 곳 모두 괜찮았고 맘에 들었다. 하지만 그녀와 장모님의 눈에는 부족한 면이 보이는 모양이다. 그러자 장모님은

 

“그럼 다음부터 볼 집들은 나랑 OO랑 둘이 다닐까? 자네는 이거 말고도 바쁜 일이 많을 테니 다음에 집 보러 갈 때는 굳이 같이 둘러보지 않아도 괜찮네. 집은 나랑 OO가 알아서 함세. 온 김에 저녁이나 같이 먹고 가게나.’


고마운 제안이다. 신혼집을 어디로 할지 지역을 결정한 이상, 나는 어디든 상관없기 때문이다. 이미 그녀와 결혼을 하고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이 산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나에게 그 공간의 크기와 가격은 의미가 없다. 나는 이런 속내를 그대로 전달했고 그런 나의 심정이 아주 좋은 의미로 잘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그렇게 신혼집 결정에 대한 모든 권한을 그렇게 그녀에게 넘겼다.

 

저녁식사 자리, 장인께서 한 마디 하셨다. 내가 그녀에게 집을 구하도록 미리 돈을 송금한 것에 대한 얘기다.


“자네가 우리 딸에게 신혼집을 구하라며 돈을 보냈다고 들었네. 그런데 그런 큰돈을 어떻게 쉽게 보낼 생각을 했는가? 아무리 결혼할 사이라고 하지만 둘이 미국에서 만나 지금까지 겨우 서너 달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뭘 믿고 그렇게 했는지 궁금했네. 물론 우리 딸이 사기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쉽게 보내서 좀 놀랐네 난. 우리가 만약 사기꾼이라면 어떡할텐가? 물론 그만큼 우리 OO를 좋아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돈과 관련된 행동은 항상 신중하게 하게.”


생각지도 못했던 예비 장인어른의 말씀이다. 순간 '매일매일이 행복한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이 혹시라도 누군가가 잘 계획한 사기극이라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의 상황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몇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히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마치 일부러 누가 계획한 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사기극에 상황에 완벽하게 걸려든 먹잇감이다. 등골이 오싹하다.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다. 최근 몇 개월 동안 그녀가 나를 이 지긋지긋한 외로움과 공황장애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그 생각에 취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며 달려왔다. 그런데 만약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이 이런 나를 대상으로 한 완벽한 사기극이라면 어땠을까? 모든 것을 잃고 더 깊은 절망으로 빠져 그 이후를 장담하지 못할 상황이 됐을 것이다. 장인어른의 그 조언으로 인해 ‘평화로울 때 전쟁에 대비하라’라는 말을 다시 상기하게 됐다.


고마운 조언이다. 평생 행복만을 경험하는 사람, 평생 고난만을 경험하는 사람은 없다. 이 둘은 적절히 섞여 누구에게나 비슷한 빈도로 온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와 흙수저로 구분이 되는 지금이라지만 금수저가 항상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흙수저도 항상 고난만 겪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힘든 20대를 보냈지만 그 속에서는 좋았던 일들도 물론 있었다. 물론 그 좋았던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한 것은 좋았던 일을 겪은 후 나쁜 일을 겪으면 그 강도가 훨씬 크게 느껴진다. 방금 장인께서 조언하신 것도 행복한 기분에 오래 취하면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어찌 됐든 그녀에게 앞뒤 생각하지 않고 나름 내가 가진 전 재산을 송금한 것으로 내가 그녀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간접적으로 증명이 된 셈이다.




신혼여행은 우리가 처음 만난 미국 서부와 하와이로 결정했다. 지난 미국 여행에서 친구들과 헤어질 때 그녀와 결혼을 한다면 여기로 신혼여행을 오겠다고 한 말이 불과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된 것이다. 미국의 두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다들 놀란다. 그저 농담으로 가볍게 내뱉은 말이 현실이 되었으니 놀랄 만도 하다. 신혼여행 기간은 총 10일이며 3박 4일은 그녀 동생에게 100불을 건네었던 라스베이거스로 나머지는 하와이에서 보내기로 했다. 나의 제안에 라스베이거스 일정은 미국에 있는 두 친구도 흔쾌히 함께 하기로 했다. 기대되는 신혼여행이다.


12월이다. 지난 8월에 연애를 시작한 지 불과 두 달이 지난 10월에 상견례가 있었고 여기에서 내년 2월로 결혼 날짜가 잡혔다. 보통 결혼은 사계절을 모두 겪어 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한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무엇보다 둘이 함께 한 연예 기간이 짧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비록 결혼 날짜를 잡은 예비 신혼부부라고 하지만 아직 어딘가 놀러 가서 외박을 한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그만큼 연예한 시간이 짧았던 것이다. 물론 그 짧은 사이에 몇 가지 사건으로 만나지 못했던 시간도 있었으니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예비 장모님께서 눈치를 채셨는지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에 둘이서 가까운 해외라도 다녀오는 것이 어떠냐고 하신다. 장모님의 이런 제안이 감사하다. 우리가 이미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고 하나 결혼 전에 대놓고 서로 외박을 하고 다니는 모습은 보여주기 싫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녀 부모님도 절대 그런 모습을 용납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런 부모님이 더구나 장모님께서 이런 제안을 해 주시니 내가 진짜로 그녀와 결혼을 하기는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2015년 12월 23일, 우리는 3박 4일 일정으로 여름철 태풍이 발생하면 거의 어김없이 날씨 뉴스에 등장하여 왠지 익숙한 그곳, 오키나와로 향했다. 공황장애로 인해 그렇게도 타기를 꺼려했던 비행기를 처음으로 그녀와 함께 타는 순간이다. 역시 공황장애는 마음의 병인 것인가? 약을 먹지 않은 지금이지만 이렇게 마음이 편하고 느긋하기는 오랜만이다. 내가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지는 이 순간이다.     


다음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 없는 상견례(공황장애와 결혼#2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