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엄마는 막막했다!!

현재의 삶에 집중하자!

by 버들s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며 살아야 하지만 삶은 되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된다.(중략)


진정한 만족감은 너희에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는데서 비롯된다.

우리는 유전자에 이타심을 갖고 태어난 듯하다. 관용은 우리의 생득적 자질이다. 그렇기에 관용을 억누른다면 비인간적인 행위가 될 것이다. 윈스턴 처칠도 " 우리는 얻은 것으로 생계를 꾸리고, 주는 것으로 삶을 만들어 간다"라고 말했다.(주 1)





아버님 병환이 많이 위중하셔서 병원에선 더 이상 해줄 게 없다며 퇴원을 권했다. 집에서 마지막을 준비하셔야 하는 것이다.

아버님은 어머님과 시골에서 거주하셨는데, 그때가 농번기라 어머님 혼자 아버님 간병에 농사일까지 하시기는 버거운 상태셨다.


남편은 7남매 중 막내로 형들과 누나들이랑 대책 회의를 했다. 그리고 학교 다니는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내가 시부모님의 식사를 챙겨야 할 사람이 되었다.


나도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 안 가겠다고는 못하고,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마음으로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하여 하소연을 하였다.

그때 엄마는 "네가 해야겠네! 할 수 있을 때 해!!!" 였다.

스물다섯 늦은 봄. 16개월 된 아이와 함께 시골에 갔다.

나는 도시에 태어나 시골서 살아본 적이 없었고, 시부모님과는 결혼 전과 결혼식 당일 그리고 명절날 등 총 네댓 번 정도 뵌 상태였다.

아버님은 워낙 말씀이 없으셔서 아이를 낳고 처음 인사드렸을 때 아기를 안으시고 여기저기 만져 보시며 ‘뼈가 튼튼하게 잘 키웠다’라고 칭찬해 주셨던 게 가장 길게 말씀하신 것이다.

남편 없이, 낯선 시골에서, 아이를 챙겨가며 아직 어렵기만 한 시부모님께 서툰 음식 솜씨로 식사를 챙겨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아이 얼굴 흉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주변에 날카로운 물건에 무척이나 예민해 있었다. 시골 마당에는 호미, 낫, 곡괭이 등 여기저기 농기구가 널려 있었다. 내가 정리한다고 했지만 농사일이 힘드셨던 어머님은 그냥 던져 놓으셨고, 아이는 여기저기 호기심을 가지고 뒤뚱뒤뚱 걸어 다니고 있었기에 나는 일을 하면서 계속 아이 주변을 살폈다.


나에게 맡겨진 두 분의 식사. 재료는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채소들이다. 양파 줄기와 파도 구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채소들은 음식 재료가 아닌 그냥 풀로만 보였다. 그 풀들로 반찬을 만들어내야 했다.


아버님은 미음에 미나리를 살짝 데쳐 들기름에 무쳐서 곱게 다진 것을 제일 좋아하셨고, 어머님은 된장찌개에 상추 겉절이를 잘 드셨다. 장은 식재료를 잔뜩 실은 용달차가 한 번씩 지나가면 어머님이 몇 가지 구입해셨는데 그중에서 자반고등어를 사주신 날이 젤로 좋았다. 나도 어머님도 생선을 좋아했기에 그런 날 저녁은 자반고등어구이로 반찬 신경 안 쓰고 편히 맛나게 먹었다. 매일 하다 보니 두 분의 식사는 요령이 생겨 그럭저럭 챙길만했다.


어려움은 문병 오신 분들의 식사였다. 동네분들과 친척들이 아버님을 뵈러 오셨다.

동네분이 오시면 간식거리와 음료 또는 막걸리와 안주를, 친척분께는 점심을 차려내었고 아버님이 걱정되어 시골집으로 퇴근하시는 아주버님 저녁을 챙겼다

친척분들의 문병은 하루 한번 또는 많을 때는 하루 두세 번도 오시는데 다 따로 오신다. 한번 차려서 같이 드시는 게 아니기에 차리고, 치우고 또 차리고를 반복해야 했다. 반찬을 만들어 내야 하는 미션이 나는 너무 어려웠다. 어떤 날은 상추, 부추 겉절이의 간이 짜고 어떤 날은 미나리가 질기게 데쳐졌다. 매일 똑같은 음식을 만들다 질려버려서 한 번은 찌개와 나름 귀한 고등어를 구워 내었다. 그랬더니 손님이 이런 거는 도시에서 맨날 먹는 건데 시골에 왔으니 나물 반찬 좀 해주지”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나는 겉절이를 계속 만들어 내었다.


문병객들은 한번 왔다 가시기에 한 두 가지 반찬을 연습해서 똑같은 걸 내어 드려도 괜찮은데 문제는 아주버님 반찬이었다. 어머님은 초저녁에 식사를 하시고 일찍 잠자리에 드시는데 아주버님은 퇴근 후 오셨기에 늦은 저녁상을 차려냈다.


그때 알게 되었다. 환자를 간호하려면 환자뿐만 아니라 문병객들도 챙겨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때론 그 부분이 환자 돌봄보다 더 힘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그렇게 흘렀다. 하늘은 파란색이요, 주변은 다 초록인 세상에 나는 대화할 사람도 없이 아이를 챙기면서 밥과 청소만으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TV와 전화기가 모두 아버님이 누워 계신 방에 있었기에 나는 세상과 단절된 시간들로 답답하고, 외롭고, 막막했다.


내가 유일하게 세상과 통할 수 있는 길은 10여분 남짓 거리에 있는 점방 옆의 공중전화였다. 아이 과자 사준다는 핑계로 아이 손을 잡고 점방까지 걸어 가서 공중전화로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다. 그 마저도 어머님이 가게 자주 가는 것이 동네 창피하다고 하시며 한번 갈때 과자를 많이 사다 놓으라고 하셨기에 눈치를 보면서 가야 했다. 그때 전화로 엄마에게 힘들다고 투정하면 엄마는 늘 " 잘해드려, 할 수 있을 때 잘해드려!!"였다. 그런 엄마 말을 들으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나는 언제까지 여기, 이곳에 있어야 하지?라고 계속 앞날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가 없었지만, 언제까지라고 명쾌하게 답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맡은 일을 충실하게 해내는 것뿐이었다. "할 수 있을 때 하자!"


남편은 미안해하며 걱정되는 마음에 5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매주 토요일 밤늦게 왔다가 일요일 낮에 돌아가곤 했고 그런 아들이 안쓰러운 어머님은 매주 못 오게 야단을 치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형님이 아버님 병을 낫게 해 드린 다며 무당과 함께 집에 오셨다. 그리고 집에 큰 굿판이 벌어졌다. TV에서만 보던 굿을 눈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집안에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혼령들이 무당의 부름에 하나둘 방으로 들어왔고 무당은 들어온 혼령에 따라 울기도 하고, 큰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 등 혼령들의 다양한 감정을 전했다. 어머님과 큰 형님은 무당 앞에서 계속 두 손으로 빌고 또 비셨다.


굿판이 끝나고 형님과 시부모님은 병원에 다녀오신다며 다음날 돌아오시는 일정으로 집을 나서셨기에 나는 아이랑 단둘이 시골집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시골집 대문은 개방형이라 잠그는 게 의미가 없어 창호지로 만든 방문의 문고리에 숟가락을 꽂아 잠갔다. 시골의 밤은 가로등도 하나 없어 칠흑같이 깜깜했고, 더구나 우리 집은 이웃집과도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나만 아이, 이 세상에 단 둘만 남아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사실 그때 제일 무서웠던 건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잠을 자려는 방이 낮에 많은 혼령들이 들어와서 울부짖던 바로 그 방인 이다. 굿을 했던 상황이 떠올랐고 왠지 떠나지 못한 혼령들이 방에 남아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하며 이상한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아 몸서리치게 무서웠다. 그때 새근새근 잠든 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나는 내 아들을 지켜야 한다'


아들 옆에 가만히 누워 아들을 안고 나의 온 정신과 숨을 아이의 숨소리에 집중, 아호흡에 내 호흡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어리고 작은 아들은 그때 내게 큰 힘이 되었고 잠시 후 내 마음은 안정을 되찾았다.


'혼령들이시여~ 당신의 손주가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지켜 주소서'


그렇게 기도를 하며 밤을 잘 넘겼다.


그리고 며칠 후! 그날도 문병객이 가셔서 술상을 정리하고 있는데 쿠션에 기대어 겨우 앉아 계시던 아버님이 술상 위의 술잔을 말없이 내게 내미셨다. 아버님이 약주를 무척 즐기셨는데 아프시면서 못 드시는 것으로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내게 술을 청하신 거다.

잠시 망설여졌다. '약주를 드려도 될까?', '약주를 드시면 더 안 좋아지시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정말 드려야 할 것 같았고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약주를 한 모금 정도 드실 수 있도록 정성껏 따라 드렸다. 아버님은 한잔 드시고는 내게 편안하고 만족한 웃음을 보여주셨다.


아버님의 평상시 하지 않으시행동을 보이신게 좀 꺼림칙하여 남편에게 전화로 상황을 전했다. '이번 주말에는 꼭 내려와요, 그리고 형님과 아주버님들 다들 꼭 오시라고 해요!'


주말 저녁, 오랜만에 식구들이 다 모였고 아버님은 시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드셨다. 깊은 밤까지 두런두런 딸들과 어머님의 대화소리,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새벽..... 아버님은 주무시다가 조용히, 가족들이 편하게 잠든 모습을 보시면서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집에서 장례식이 치러졌다. 발인 때 남편이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남편은 이성적이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 남편의 눈물을 본 나는 함께 울었다. 울고 있는 남편의 마음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나는 부리나케 짐을 쌌다.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남편 따라 우리 집에 갈 생각만 가득했던 것이다.


" 쟤 좋아하는 것 좀 봐라! " 어머님이 나를 보면서 말씀하셨다.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너무 부끄럽고 죄송했다.


남편과 집으로 오는 길, 시골에 온 지 두 달이 조금 안 된 시점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언제가 끝인 줄 모르기에 나는 매일, 매시간을 의무감으로만 임했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잘해드릴걸~ '이라는 아쉬움, 죄송함이 가슴에 남았다.


그리고 그때 죽음을 처음 접했던 나는 내가 둘째를 낳으면 아버님은 그 애를 못 보시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 빨리 둘째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을 다.


남편은 '자기 부모의 임종을 지킨 사람에게 잘 못하면 천벌 받는다!'라고 말하며, 나와는 평생 헤어지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나의 노고를 진심으로 인정해 주었다.


토닥토닥)

* 아버님!!

며느리가 너무 어려 아는 것이 부족했고, 낯설고 많이 어렵기만 했었어요. 그러다 보니 다리 한번 제대로 주물러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곳에서 어머님과 좋아하시는 약주 하시며 아프지 마시고 편안하소서~


* 어머님!

남편을 떠나 보낸 허전한 마음, 가족들이 다 떠난 텅 빈 집에 혼자 남으셨을 어머님!

위로도 제대로 못 해 드리고 바로 떠나와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뻐하시는 손주 얼굴의 흉터를 보고도 며느리에게 한마디도 안 하신 거.. 글을 쓰면서, 그때를 돌아보면서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겐 늘 어렵기만 했던 어머님이 저를 많이 아끼셨음을 이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곳에서 아프지 마시고 편안하소서~


* 딸에게 '해야 한다'라며 시골로 가라 했던 엄마!

제가 지금 딸을 결혼시켜 보니 그렇게 말했던 엄마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지 이해가 됩니다. 덕분에 아내로 며느리로 가족으로 신뢰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 마음을 읽지 못해 죄송하고 할 수 있을 때 하라고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16개월 된 엄마 아들!!

네가 내 옆에 함께 있었기에 그 시골 생활이 덜 외로웠어. 그리고 그날 밤!!! 귀신에 둘러싸여 있다는 생각에 숨쉬기조차 두려웠던 그 밤!! 너의 편안하게 잠든 모습, 숨소리가 엄마를 살렸어. 너는 존재만으로 엄마에게는 큰 힘이 된단다! 사랑해♡


* 스물다섯의 며느리자 엄마였던 나!

낯선 곳에서 며느리로서의 의무감, 남편과의 약속을 이행하려 노력했지. 언제까지가 될지 도통 모르는 나날들, 소통할 곳도 없는 곳에서 외로움을 잘 이겨냈어. 그리고 아버님께 마지막 술 한잔을 드리고, 가족들에게 연락한 건 정말 잘했어. 그걸 놓쳤다면 평생 후회했을 거야. 그리고 그날! 혼령들 속에서 두려움에 떨었던 그날 저녁! 아들을 지키려 정신을 단단히 잡았던 나!. 칭찬해!!!!!

역시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가 맞는 듯~




끝은 언제가 갑자기 찾아왔다.

사람이 떠나는 순간, 익숙한 자리가 무너지는 순간, 붙들던 꿈이 사라지는 순간.

그 앞에서 나는 숨조차 잊은 채 멈춰 서 있었다.(중략)

사라짐 속에서도 세상은 빛을 준비하고 있었고(..), 끝은 다른 시작의 이름이었다.(주 2)


아버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끝이 아니었다.

아버님의 삶 속에서 배웠던 지혜와 아버님과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을 가슴에 담아 우리는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둘째 계획을 하며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꿈꿨다.!!!



주 1)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찰스핸디, 인플루엔셜

주 2) 78개의 마음 <다시 시작하는 당신에게> 중에서, 숨결 biroso나, 브런치


사진. ko_choi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