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엄빠는 학력의 필요성을 통감했다

공부는 내 힘의 원천!!

by 버들s

우리는 배움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예외 없는 삶이라는 학교에 등록한 것이다.

수업이 하루 24시간인 학교에, 살아있는 한 그 수업은 계속된다. 그리고 충분히 배우지 못하면 수업은 언제까지나 반복될 것이다.(주 1)




결혼 때 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날로 날로 번창했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유명한 회사가 되어갔다.

남편은 창립 멤버 안에 들었을 정도로 회사 설립 초반부터 함께 했고, 대표님의 신임도 두터워서 급여도 계속, 많이 오르고 우리 사주도 선물 받는 등 대우도 점점 좋아졌다.


그런데 회사가 점점 커지다 보니 승진 등 인사제도에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다. 남편보다 늦게 입사한 대졸 사원들, 남편한테 교육을 받았던 대졸 직원들이 남편보다 먼저 승진을 계속하게 된 것이다.


남편의 고졸 학력이 남편 승진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결혼 전에 방송통신대학교를 다니다가 빠른 결혼을 하게 되면서 공부는 포기했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늦게 입사한 사람들, 본인이 가르친 사람들의 승진에 남편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때 남편에게 이직 제의가 들어왔다. 이직하려는 회사는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규모는 작았으나, 남편의 경력과 능력을 인정해 주어 급여를 지금보다 더 받을 수 있었기에 남편은 이직을 선택했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남편이 현 직장에 애정이 많이 있었음을 그래서 떠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알았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떤 말도 건넬 수 없어서 그냥 모르는 척, 급여 많이 받아서 좋은 척만 했다.


그런 남편에게 퇴사 후 이직한 회사 출근까지 한 달여 남짓 쉬는 기간이 생겼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일하다가 군대 갔고, 군 제대 후 바로 일을 시작했던 남편. 고등학교 시절부터 용돈을 자신이 벌어서 해결했던 남편에게 처음으로 장기간의 마음 편한 휴가가 생긴 것이다. 휴가가 끝난 후 이직한 회사에 다니게 되면 월급이 오른 만큼 더 바빠질 것이 분명하기에 남편에게 주어진 한 달여 기간을 편안하게 잘 쉬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가족 여행도 가고 싶었다. 결혼 후 3년이 넘었지만 여행은 신혼여행이 끝으로 아이들과 가족여행을 한 번도 가지 못한 것이다. 남편이 주말도 없이 바쁘게 일하기도 했고, 대출 등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기에 여행은 감히 생각도 못했는데 남편에게 강제 휴가가 한 달이나 생긴 것이다.


여행 가기 딱 좋은 타이밍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었다.


남편의 퇴직금은 회사에 빌린 교통사고 합의금으로 들어갔기에 우리에게는 한 두 달의 생활비만 겨우 있었다. 그렇다고 빚을 내어 여행을 가는 것은 둘 다 원치 않았기에 남편은 그냥 집에서 쉬고 있었다.


돈이 없어 그냥 집에서 귀한 휴가를 보내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는 나는 참으로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팠다.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는 것보다 돈이 없을 때는 차라리 시간도 없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어렵게 생긴, 귀한 시간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머리만 굴렸다.

하지만 나는 마음만 앞서고 아직 경제적인 능력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때 생각난 게 아이들의 돌반지!!!. 큰애 백일과 돌, 작은 애 백일에 들어온 금반지!

아이들것이지만 첫 가족여행에 썼다고 하면 애들도 이해할 듯하여 금은방 가서 금반지를 과감하게 팔았다.


그리고 남편 손에 현금을 쥐어주었다.

" 우리 이 돈으로 여행 가자!!! "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남편에게 돈을 줄 때 내 기분이 더 좋아서 남편 돈 주는 기쁨을 알게 된 것이......)


남편은 얼굴이 환해지며 무척 기뻐했다. 그렇게 우린 기억에 오래 남을 첫 가족여행을 떠났고, 남편에게도 새로운 출발을 위해 충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이직한 남편은 회사에 잘 적응하고 급여도 많이 받았기에 우린 저축도 조금씩 더 늘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몇 달이 흘러 다니는 회사와 연계된 회사에 스카우트되어 더 많은 급여를 받고 옮겨가게 되었다.


결혼 때 받던 급여의 두 배가 가까운 금액이었다.


나는 너~~~~~~~무 좋았다!!. 꿈만 같았다!!!!

아~ 이렇게 부자가 되는 거구나!!!!!!!!!!


현재처럼 아끼고 살면 한 달에 약 100여만 원은 저축할 수 있다. 그러면 1년이면 1200만 원, 3년이면 3600만 원이라는 돈이 모여지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마다 모아질 돈에 대해 계산하면서 너무 신났다. 그냥 웃음이 났다.


그 당시 우리 집 전세금이 800만 원이었기에 한 달에 100만 원 모으는 것은 엄청난 것이었다. 몇 년만 아끼면 집도 사고 엄마도 좀 더 도울 수 있고, 내가 쓰고 싶은 곳에 돈을 쓸 수 있는 삶. 그런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부자로 사는 꿈!!, 그렇게 부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 꿈도 잠시, 이직한 회사에서 급여를 딱 두 번 받고 IMF가 터졌다!.


그래서 남편이 다니는 회사는 바로 어려워졌고 그 두 달 이후로 일 년간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퇴사하지 않고 폐업하는 순간까지 부자로 사는 꿈을 꾸게 해 주었던 회사와 함께 한 것이다.


나는 그때 알았다. 부자는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것만이 아닌 것을.....

아직 부자가 될 때가 아님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되면서 꿈꾸었던 만큼 속이 상하고 미래도 많이 불안했다.

혹시 나는 부자가 될 수 없는 운명인 건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삶이 내 팔자인 건가?


이후 남편은 다른 회사로 그리고 또 다른 곳으로 계속 이직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이직 시장에서 남편의 학력은 늘 걸림돌이 되었다. 괜찮은 회사는 최소 초대졸 이상이 필수 조건이었기에 지인을 통한 이직만 가능했다.


그런데 결혼 때 다니다 퇴사한 회사는 IMF에도 끄덕 없이 계속 더 승승장구하며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 회사 광고가 TV에서 나올 때, 회사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때마다 나는 더 속이 상했으나 겉으로 표현은 못하고 있었다.


남편도 '퇴사하지 말고 그대로 다녔으면 더 좋았겠다~' 라며 이직한 것에 대해 후회가 담긴 말을 했다.


하지만 그때, 그 당시엔 그 선택이 남편이 결정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나는 안다.


그렇기에 과거를, 과거의 선택을 계속 아쉬워하고 있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쉬움과 후회가 삶을 변화시켜주지 않기에......


학력 때문에 또 좋은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남편이 자신의 경력과 역량에 맞는 회사에 다닐 수 있도록 남편의 약점을 보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일하느라 바빴기에 내가 나서서 남편이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을 알아보았다. 일을 하면서 야간에 공부를 해야 했기에 대학교는 부담스러워 전문대학을 먼저 알아보았다. 그 당시 전문대학 입학이 쉽지 않은 시기였지만 남편은 고등학교 성적이 매우 우수했고, 출결도 성실했으며 군대에서 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해 두었기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렇게 2년 동안 퇴근 후 바로 학교에 등교했다가 밤늦게 집에 오는 생활을 했다. 부족한 일은 주말에 나가서 하곤 하여 바쁜 생활을 보냈지만 남편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생활했다.


졸업 후 바로 산업대에 3학년으로 편입했다. 하지만 회사와 거리가 멀어서 야간 출석이 쉽지 않았다. 회사는 다녀야 하기에 결국 대학교를 포기했다.


그때 남편을 보며 일에서 경력도 필요 하지만 경력에 맞는 학력의 중요성도 절실하게 느꼈다.


그래서 나도 일하면서 방송대에 편입, 졸업을 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해 희망하는 분야로 전직을 할 수 있었다. 이후 내 분야에서 일하면서 얻게 된 능력만큼 인증받기 위해 석사까지 공부했다. 전문가가 되어 오랫동안 경제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내가 미래에 대한 투자로 생각하며 대학원을 다녔을 때가 큰애는 대학생, 둘째가 고등학생인 시기라 우리 집에 교육비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갔다. 그때 남편이 투잡으로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학비를 보탰다.


남편이 퇴사 후 여러 회사를 다니다 보니 남편의 능력을 알게 된 회사 대표들이 많았다. 성실하게 근무하다가 퇴사할 때 잘 마무리를 하고 나왔기에 그분들과 인연이 계속되어 삶에 중요한 순간에 일거리를 주셔서 아르바이트가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분들과의 인연은 계속되어 남편에게 일을 부탁하시며 명절마다 떡이나 과일, 생선을 보내주시기도 하신다. 한 회사에만 계속 다녔으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들이다.


그때 나는 퇴근 후 대학원을 다니면서 힘들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는데 석사가 된 후 예상보다 빨리 좋은 연봉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근무하는 기관에 입사해서는 호봉 산정 시 학력을 인정 받았고, 현재 강사 활동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렇게 학력이 일할 때 큰 도움이 된다는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남편은 대학교 졸업 후 직장을 다니는 아이들에게 대학원을 다니라고 끊임없이 얘기했다. 결국 딸이 대학원에 다니게 되어 강의도 하며 지금은 석사 논문을 쓰고 있다.


하루는 딸 부부랑 저녁을 먹는데 딸이 일과 가정 챙기랴, 논문 쓰랴 바빠서 삶이 너무 버겁다고 하소연을 했다.


울먹울먹 하며 힘들다는 말을 하고 있는 딸에게 남편은 "그래도 박사까지 해야지~"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기겁했다. 애가 힘들다는데 공감을 못해주는 남편의 대답이 너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의외로 딸은 깔깔깔 웃었다. 금방까지 울음을 터뜨릴 듯 힘들다고 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진심으로 크게 웃고 있었다.


" 우리 집은 진짜 공부에 대해 너무 진심이야!! 진심!!! 특히, 아빠!!!!!!! "


" 나중에 다 도움이 돼!. 공부할 수 있을 때 해둬!! "


우리 부부는 안다. 힘들어도 일하면서 능력을 키우고 키워진 능력만큼 학력을 올리는 것이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때 나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힘들게 공부하며 취득한 자격증도 직업을 찾아 이직, 전직할 때 그리고 현재의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그렇게 끊임없이 공부했기에 지금 50대의 나이에도 사회생활을 계속하며, 경제적으로도 이만큼 누리며 내가 생각하는 부자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배웠다.


가난하고 어렵게만 살아야 할 '나의 팔자, 나의 운명'을 바꿔준 것은 다름 아닌 공부였던 것이다. 그건 IMF 같은 어려움이 다시와도 나에게 빼앗아 가지 못하는 나만의 실력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년퇴직 이후의 사회 활동을 위해 또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 시작하는 공부는 지금까지 해왔던 공부와 방향과 목표가 다르다. 이전까지 해왔던 공부는 오랫동안 일과 직장에 머물 수 있는, 그래서 고정적인 수입을 되도록 많이 생활비에 보태기 위함이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공부는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그리고 나의 경험을 돌아봤을 때 내가 잘해 왔던 분야로 선택했다. 그래서 남은 삶, 사회에 보탬이 되는 재능 기부로 삶을 풍성하고 여유롭게 해 줄 수 있는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 공부는 미래를 위한 최고의 투자다! 그리고 공부해서 키워진 내 능력은 오직 나만의 것이다.'



토닥토닥)

* 결혼 때 다니던 회사를 이직하려고 결정한 남편!

나는 그때 자기 상황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지요. 그냥 새로운 출발에 대한 기대와 희망만을 얘기하며 응원해 주었었지요, 사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어요. 그냥 안타깝기만 했거든요...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당신 자신의 인품을 지켜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런 삶을 살아온 당신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사랑합니다!!



* 금반지를 팔았던 27살의 나!

지금도 남편과 그때 얘기를 하면 웃게 되곤 한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금값이 오르고, 자녀들에게 돌반지를 물려주는 사람들을 보면 비상금 같은 돈을 여행으로 썼던 나의 선택이 무모하다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때 그게 나와 우리 부부에게는 최선이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잘했어!!!,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어.




는 우리 모두에게 '황금 씨앗(golden seed)'이란 것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 황금 씨앗은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 또는 적성을 뜻한다.


만일 너희가 그것을 찾아낸 후 적절한 비료를 주어 건강하게 자라게 한다면, 결국 너희는 너희가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하면서도 어질고 정직한 인품을 유지한다면 목표의식에 충만하고 성취감을 만끽하는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주 2)


내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어질고 정직한 인품과 목표의식을 가지고 생활하여 성취감을 만끽한 삶을 살아보기 위해 오늘도 노력해 보련다.



주) 1. 인생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이레

주) 2.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찰스 핸디, 인플루엔셜


사진) ko_choi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