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엄마는 세상 물정을 몰랐다!

너는 빛이고 희망이었다.

by 버들s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를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이유가 뭐지?'로 좋은 일이든, 불쾌한 일이든 이 질문으로 하나씩 그 현상이 벌어진 사태를 연역의 줄기를 따라 거슬러 가보면 세상이 어떤 사태를 일으켜서 나를 성장시키려는지 확인하게 된다.


"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지만 나중에 알게 돼.

그 돌이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었음을.."


모든 현상은 '추론'이나 '유추'보다 '해석'의 힘으로 이해되고 해결된다! (주 1)




결혼 후 이듬해. 스물넷 늦은 봄. 남편이 교통 사고를 냈다.


친정 아빠가 본인이 타고 다니시던 소형차를 우리에게 주셨다. 아기를 안고 다니는 게 힘들어 보였던 것이다.


차 보험기간 만료가 가까워져 갱신을 해야 할 즈음 친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보험 회사를 다니며 교육을 받는 중인데 수료하면 직원 코드가 나오니 그때 자기에게 자동차 보험을 가입해 달라는 것이다.


친구의 교육 수료일은 자동차보험 만료일 2~3일 정도 이후였다. 그 기간 동안 무보험으로 출퇴근을 해야 했지만, 남편이 차분하게 운전하는 성향이라 나는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친구의 첫 사회생활을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기간에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남편이 우회전을 하다가 오토바이를 친 것이다. 속도가 많이 지 않은 상황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무보험 상태였기에 남편이 직접 합의를 봐야 했다.


필요한 합의금은 1200만 원!!.

그 당시 남편 월급은 세전 70만 원이 채 안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던 신혼집 전세금은 800만 원으로 그중 500만 원은 은행에서 대출 받은 돈이었다. 그러다보니 합의금은 우리에게 너무나 돈이었기에 남편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나는 남편을 돕고 싶은 마음은 컸으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이웃 언니들이 조언을 해주었다.

아기를 업고 병원으로 찾아가서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얘기하고 합의금을 조정해 달라고 눈물로 애원을 하라는 것이다. 남편은 그런 말을 하기 어려울 테니 아쉬운 말은 여자가 나서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뭐라도 해야 했기에 만나서 할 말을 열심히 준비한 후, 아기를 등에 업고 과일을 사서 병원에 갔다.


병원에 도착하니 사고 당한 분이 한쪽 다리에 기브스를 하고 누워 계셨다. 그리고 옆에 보호자이신 어머님께서 나를 보고 " 아들이 교통사고로 당분간 배달 일을 못하게 되었다 "라고 하시면서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셨다.


나는 너무도 죄송했다. 남편이 낸 사고로 다친 분을 보고 나니 막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거듭거듭 사죄만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퇴근한 남편은 돈뭉치를 꺼내 놓았다.

다행히 남편 회사에서 대출을 해주었던 것이다.


" 1200만 원이야. 만져라도 봐라! 어차피 딴사람

줄 돈이지만,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큰돈을 구경이라도 하겠냐!!"

남편의 목소리는 낮고 힘이 없었다. 침통한 목소리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초췌해진 남편을 보면서 능력도 없으면서 친구를 돕겠다고 마음먹었던 내 자신이 밉기만 하고 이 상황이 그냥 믿기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앞날이 깜깜했다.


'결혼 전 친정에서의 삶도 빚 때문에, 돈 때문에 힘들고 불행했었는데....'


내가 불행의 씨앗인 듯 느껴졌다. 남편이 날 만나서 불행해진 것 같았고 아이도 날 만나서 불행하게 될까 봐, 이 불행이 계속 이어질까봐 너무도 두려웠다.


그날 이후로 우린 둘 다 교통사고와 합의금에 대해 어떤 말도 누구의 탓도 하지 않았다. 각자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남편은 더 오래, 더 많이 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일한 남편이 퇴근하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 다음 날을 위해 충전할 수 있는 편안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다. 과거는 내가 변화시킬수 없기에 현재에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엄마의 얼굴이 가정의 얼굴이다!!'


나는 우리 가정을 밝게 웃는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숨쉬는 것, 웃는 것 조차 미안했으나, 그냥 더 크게 웃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속도 좋다. 웃음이 나오냐~', '푼수 같다' 라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나는 나의 그 어리숙한 웃음과 행동을 보며 피식~ 하는 남편의 어이없어 하며 짓는 미소가 좋았다. 그렇게라도 남편을 웃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푼수 소리를 들어가며 나는 되도록 밝은 미소와 유쾌하고 따뜻한 말로 남편을 대했으며, 아끼고 절약하며 아들도 열심히 돌보았다. 그게 내가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자 응원이었다.


그리고 그때 우리 아들의 '까르륵 까르륵' 하는 웃음 소리는 우리가 좌절하지 않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였고 희망이었다!!!



토닥토닥)

* 하늘에 계신 아빠! 글을 쓰면서 기억이 났어요. 아빠가 타고 다니시던 차를 제게 주셨다는 것을.... 그리고 아빠는 오래된 용달차를 타고 다녔죠.

교통사고와 함께 그 기억까지 잊고 살았네요.

아빠가 저를 힘들게만 했다고 생각하고 원망만 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를 아끼고 잘해주셨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남들이 조금이라도 잘해주면 고마워서 보답하려고 노력하고 살았는데 부모님이 잘해주시는 건 너무 당연하고 왜 못해준 것만 기억하며 살았을까요? 부모가 되어 자녀들을 분가 시켜보니 그때 아빠의 마음이 어떤건지, 얼마나 컸었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때 아빠의 마음에 감사하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요. 죄송해요 아빠. 그리고 고맙습니다!


* 스물아홉 살 남편!! 우리 전재산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대출 받으며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그리고 철없는 아내, 아이를 지켜야 하는 책임이 또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그런데도 힘들다는 소리 한번 안 하고 묵묵히 자리를 지켜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스물넷 엄마인 나!! 나는 기억한다. 그때의 막연함, 슬픔을.... 모든 게 다 내 탓 같아서 어디다 하소연도 못하고 스스로 불행의 씨앗이라며 자책했던 시간들과 숨죽이며 흘렸던 눈물을.......

그래도 주저앉지 않고 웃음을 선택한 것은 정말 잘했다. 그래서 아들이 잘 웃는 어른이 되었고, 웃음이 많은 가정을 만들었다. 잘했다! 그러고 보면 '좋아서 웃는다 보다 웃으면 좋아진다'가 나에겐 더 맞는 말이다.



모든 게 다 무너져 내린 날,

나는 그 잔해 위에서 앉아 있었다.

모든 소리가 멎은 듯했고,

길은 부서져 흩어져 있었다.


이제는 도무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중략)


' 희망은 거창한 해답에서 오는 게 아니라, 작은 빛을 향해 고개를 드는 순간 시작된다.'(주 2)


빛을 보는 순간부터 변화는 시작되었다. 나는 밝음을 택했고, 우리는 아이를 보면서 현실을 충실히 살며, 함께 미래로 나아갔다!



주 1) 엄마의 유산, 김주원, 건율원.

주 2) 믿고 싶은 밤의 당신에게, 숨결 biroso나, 브런치.

사진. ko_choi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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