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감정표현!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체계적인 사고를 하지 않은채 인생을 사는 것을, 도자기를 굽거나 구두를 만들면서도 그 기술적 과정을 모르고 있거나 따르려고 하지 않는 것에 비유했다.
직관에만 의존해서는 훌륭한 도자기나 구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물며 한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복잡한 일을 어떻게 근거나 목표에 대한 지속적인 반성 없이 수행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실은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주 1)
자녀를 낳고 키우며 자녀교육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렇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면서 부모가 되기 전에 부모교육을 먼저 받아야 한다고, 결혼하기 전에 부부에 대해, 남과 사는 것에 대한 교육을 먼저 받아야 한다고 얘기하곤 했다.
그런데 그보다 본질적인 것!
아내, 엄마등 보이는 역할 안에 숨어 있는, 그 아래 깔려있어서 의식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삶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산 것이다.
행복해야 한다며,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며,
삶은 행복한 것이라고 주입하면서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행복은 큰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소확행이 주는 행복을 아이들에 알게 해 주기 위해 더 '행복, 행복'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행복을 추구하고 산다면서
행복에 연연했다.
행복에 끌려다녔던 것이다.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 찾고, 노력하며 살면서 아이들에게도 행복이라는 감정을 강요한 것이다.
나에게 행복이란 편안함, 만족감이었던 것 같다.
아무 걱정 없는 순간, 원하던 것을 얻은 순간에 행복하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알고 보니 행복이 아니고 쾌락을 좇은 것이다.
쾌락(유쾌하고 즐거움), 안락함을 추구한 것이다.
" 아~, 행복해!"
"엄마가 행복하면 됐어"
내가 행복하다고 하는 말을 듣고 딸이 자주 했던 말이다.
"그럼 너는 안 행복해?"
"아냐, 나도 행복해!"
나는 딸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더 행복한 척했하는데, 딸은 또 엄마인 나를 배려해 행복한 척하는 것 같아서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다.
이제 알겠다. 이제 깨달았다.
내가 '행복하다'는 감정에 삶에 의미를 잔뜩 가져다 붙이고 아이들에게 삶의 행복을 찾는 게 중요하고 삶을 행복하게 살라고 강요한 것이다.
당연하다는 듯~~
그래서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아 보일 때 아이들도 힘들고, 나는 더 힘들었던 것이다.
부끄럽다.
행복하다는 말을 남발했다.
행복하다는 말을 엉뚱한데 썼다.
경치가 예쁘다
음식이 맛있다.
누우니 편하다로 말했어야 했다.
'행복하다' 는 허세에 빠져나와
행복하려는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고
사실을 보고 그 사실에 맞는 감정을 선택하련다.
나는 오늘 또 이렇게 성장했다.
에피쿠로스가 펼쳤던 주장은,
만약 우리에게 돈은 있는데 친구와 자유, 사색하는 삶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고,
비록 부는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친구와 자유, 사색을 누린다면 우리는 결코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행복하다.(...)
결핍에서 오는 고통만 제거된다면, 검소하기 짝이 없는 음식도 호화로운 식탁 못지않은 쾌락을 제공한다.(주 1)
주 1) 철학의 위안. 알랭 드 보통. 청미래
사진. ko-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