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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국 프로젝트 Jul 23. 2019

영어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몰랐다.

박앤비. 실수예요 악의는 없습니다, 싸이코 아니야

벌써 두 번째다.
얘네 눈엔 내가 웃는 얼굴로 나쁜 말하는 싸이코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영어가 부족한 외국인으로 산다는 건 시한폭탄이 된 느낌이다. 언제 갑자기, 누구에게 불상사를 던져줄지 모르는 시한폭탄. 한국말로는 어미가 이상하거나 ㅆ,ㄲ 등의 된소리만 여러 번 나와도 바로 어감의 차이를 느끼지만, 영어로는 F*ck that sh*t이 아닌 이상 나쁜 말을 하고 있다는 체감이 안 든다. 네덜란드에서 지낼 때 prostitute가 성매매 여성인 건 알았지만 매춘부, 창녀 등의 격한 어감인지는 몰랐다. 그래서 무슨 주제였는지 그들에 관해 떠들다가 병크를 터뜨리기도 했었다.



그때보다는 한 층 발전한 영어였기에 지금은 나은 줄 알았는데, 아니 분명 나아지긴 했지만, 또다시 순진하게 웃는 얼굴로 헛소리를 해버렸다.
 
 

동료 스태프 M은 항상 밝고, 하이텐션에다가 특유의 유쾌함으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퇴근이 15분 남았다고 노래 부르고 신나 있길래 ‘ㅋㅋ퇴근 앞두고 엄청 신났네’라고 말했다. 아니 그럴 생각이었다.



M : (신남, 반갑게 손님맞이 중)


내가 하고 싶었던 말 : 엄청 신났네 ㅋㅋ


실제로 내가 한 말 : You look so high.


직역 : 너 약한 거 같아


의역 : 너 약빤거 같아



처음엔 high가 그런 뜻인지 몰랐다. 하이텐션의 그 하이인 줄 알았지. M이 왜 그런 단어를 쓰는 거냐며 나중에 설명해주겠다고 갔고, 퇴근 후 구글 검색과 함께 재빠른 해명으로 일은 일단락되었다.



구글 검색 그리고 빠른 사과와 해명



이런 실수는 상당히 창피하다. 다행히 이곳 동료들은 잘 이해해주고, 빠른 해명과 사과에 오히려 재밌다고 넘어갔지만 M이 동료들 앞에서 내 실수를 얘기할 땐 웃긴데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이날 실컷 쪽팔렸으니 앞으론 조심해야지 속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며칠 뒤,
이쯤 되면 병이고, 입이 제 멋대로 아무 말하는 거다.



L : (다른 동료 여스태프, 지쳐서 무표정으로 일하고 있음, 근데 예쁨)


내가 하고 싶었던 말 : (일단 친해지려면 칭찬부터 하고 보는 성격) 나 너의 그 시크한 표정이 마음에 들어


내가 실제로 한 말 : I like when you are in cynical face.


직역 : 너의 냉소적인 얼굴이 마음에 들어


의역 : 너의 비꼬는( 혹은 빈정대는 또는 비웃는) 얼굴이 …




하….



칭찬으로 건넨 말인데 L이 다른 말로 화제를 전환하려 할 때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급하게 화장실 가는 척 검색해보니 시크와 시니컬은 전혀 다른 뜻이고 나는 또 웃는 얼굴로 침을 뱉은 꼴이었다.



그냥 적당히 넘어가는 게 쿨한 관계일까, 붙잡고 또 해명을 하면 너무 소심해 보이진 않을까, 벌써 두 번째니 이 정도면 애들 사이에서 아무 말이나 막하는 무례한 사람으로 비치진 않을까.

그래 차라리 악의는 없는 소심한 외국인이 낫지. 이번에도 재빠른 사과와 해명을 택했다. 여전히 쪽팔려서 얼굴은 홍조가 발갛게 달아오른 채로.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데,


하마터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될 뻔했다.












박앤비 : 현재 호주 워홀 중으로 경험한 일이나, 이 곳 사람들은 어디서 놀고 뭐 먹고 지내는지에 관한 글을 씁니다. 마음은 여행 잡지 에디터지만, 막상 글을 완성해보면 '이런 일이 있었쪄요 우엥엥'하는 극 초보 레벨 1짜리 블로거에 가깝습니다. 매주 한편 올릴 예정이며, 앞으로 더 나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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