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캐시를 반납하고 퇴근을 해야 하지만, 하필 이면 마지막 손님이 연간회원권을 만드는 중이라 정보를 수기 입력하는 것부터 사진 촬영 및 회원권 출력까지 제시간에 퇴근하긴 글렀다.
2시 40분.
앞선 연간 회원권 손님을 끝내고 퇴근 시간이 애매해 아예 30분 더 일하고 퇴근하기로 한다. 일본인 청소년 손님 2분이 왔는데 18세 이상의 어른 대동하지 않고는 입장이 불가하다는 연령제한에 걸린다. 한 명은 15살, 한 명은 17살. 나이가 애매해 슈퍼바이저에게 물어보러 사무실로 들어간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사무실에 온갖 높은 매니저들이 심각한 얼굴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쉴 새 없이 들려오는 무전과 함께.
2시 50분.
틈을 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 그런데, 원래는 잔뜩 말려 올라가 있어야 할 셔터 문이 한쪽은 내려오고 한쪽은 반만 올라가 있다. 무슨 일이지? 아직 폐점 시간까지 3시간이나 남았는데.
3시.
직전 손님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손님이 몰려들지만, 더 이상은 일 할 수 없다. 최대한 손님들의 시선을 피한 채 내 자리를 정리하고 캐시를 반납하러 사무실로 들어간다.
“조금 더 사무실에서 머무르다 가는 게 어때? 지금 kings street 쪽에서 incident가 있대. 그래서 지금 여기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급하게 문 닫으려고 대기 중이야. 급하면 먼저 가도 되는데 혹시 모르니까 사무실에서 조금 더 상황 지켜보다가 안전해지면 귀가해”
밀려드는 손님에 정신없이 일만 하고 있어서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일하는 곳에서 불과 15분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 한 복판에서 한 남성이 흉기를 들고 거리를 배회하면서 노천카페와 식당들에서 식사 중이던 사람들을 찔렀다.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3시 무렵에는 곧바로 인터넷에 의자와 우유 박스에 깔려 제압된 범인의 사진이, 윗옷은 들려있고 바지는 반쯤 벗겨진 채 연행되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범인이 한 명이라는 얘기, 한 명 더 있다는 얘기, 총을 들고 있었다, 총을 들고 있던 게 아니라 자신에게 총을 쏘라고 경찰들에게 소리 질렀다, 테러와는 관련이 없다, 알라는 위대하다 구호를 외쳤다는 등 온갖 괴담과 황색 저널리즘이 맞물려 소란스럽다. 나는 사무실 복도 구석에 우두커니 서서 핸드폰으로 최대한 사실에 들어맞는 뉴스만을 고르고 골라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려 애를 쓰고 있고, 사무실 한 켠에는 바쁘게 무전을 하고 있는 매니저들이, 문 밖에는 사건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수족관에 들어갈 생각에 신난 어린아이들과 바다와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있다.
불과 어제 있던 일이다. 사건이 일어났다는 kings street과 york street은 시티 중심지역으로 wynyard 역과 townhall 역 2개의 주요 전철역이 지나가고, 수많은 행인들과 노천카페 및 레스토랑 그리고 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게다가 그 칼을 든 남자가 등장했다는 시간은 한참 사람들로 주변 카페와 거리가 붐빌 2시경이었다.
각종 기사와 뉴스에 따르면, 범인은 blacktown이라는 시드니 서쪽 부근에 사는 정신병력이 있는 남성이라고 한다. 도중에 알라는 위대하다 라며 외쳤지만, 테러와는 무관했다. 그를 체포한 것으로 일단 사태는 일단락된 듯 보였다. 사상자는 중국계 여성 한 명으로 칼에 찔려 병원으로 바로 이송되어 다행히도 큰 부상은 아니라고 한다. 처음에 범인을 제압한 것은 경찰이 아닌 일반 시민으로, 의자를 활용해 범인을 제압했다.
진작에 나섰어야 할 퇴근길을, 퇴근 시간이 한참이 지나서야 오른다. 사건이 일어났다는 곳이 집으로 가는 길목이라 수많은 경찰관들과 엠뷸런스 소리, 그리고 중간중간 통제해 놓은 구역들이 눈에 띈다. 얼른 서둘러서 집으로 가는 전철 위에 올랐다.
퇴근 길목, 여전히 통제된 사건 장소와 경찰차들
사건이 있기 바로 전날, 바로 그 근처의 카페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기 때문에 어제의 일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피해 여성이 동양계라고만 밝혀졌을 땐, 혹시라도 이국의 뉴스에 부모님이 놀라시진 않을까 어떻게 무사하다고 안부를 전해야 할지 고민하다, 오빠에게 부모님이 시드니 뉴스를 봤을 때만 알려드리라고 난 괜찮다고 연락을 했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출퇴근 길에 자주 지나가는 지역이다.
*13일 시드니 시티 중심가에서 일어난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