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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이브리지 Feb 20. 2022

오늘 차 한잔에 세계 역사와 여행을

[10년 후 더 빛나는 책]홍차 애호가의 보물 상자(제임스 노우드 프랫)

차 한 잔에는 이야기가 많다.

오늘 홍차를 마신다. 차 한 잔을 마시며 그 안에서 역사를 들여다 보고, 녹색이 가득한 다원의 풍경에서 올해 처음 따는 퍼스트 플러시를 마시는 것을 그려 본다.


여섯 가지 맛의 조화

우리는 차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고 일을 하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다. 서로 다른 기호를 가지고 있어 누구는 커피, 다른 누군가는 홍차, 루이보스티 그리고 맹물을 주문하기도 한다.

차의 맛을 이야기할 때는 나무, 과일, 꽃 향기, 토양, 석탄, 그리고 꿀 맛의 조화이다. 여섯 가지 맛의 조화가 우리에게 기호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차, 커피, 와인, 맥주, 위스키와 같이 우리들이 마시는 것 모두에서 이런 맛의 차이를 읽어 낸다.


홍차는 무슨 맛일까?

홍차의 맛은 무얼까? 영국에서 오래 살다 온 친구와 이야기하였다. 지금은 티백으로 대중화되어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맨 처음 도입된 17세기부터 300년간 홍차를 구하는 것이 귀했기 때문에, 처음 홍차는 구하기 어려운 귀한 맛으로 마셨다고 한다.

 

1610년 중국에서 유럽으로 네덜란드 상인에 의해 처음 소개된 차인 오렌지 페코는 비싸기도 하였고, 영국은 1658년 처음 차를 접하게 되는 데, 당시 즉위에 오른 영국 찰스 2세와 포르투갈에서 온 왕비 캐서린 드브라간자는 어려서 홍차를 접한 경험으로 왕실에서도 홍차를 즐겼다고 한다. 홍차는 왕실과 귀족들이 마시는 것을 즐긴다는 마음의 신분 상승을 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너도 나도 홍차를 찾았으나, 가격은 천정부지였다.  당시 찻잔도 발달을 하여 영국의 Stoke-on-Trent에서 생산되던 웨지우드, 로열 알버트, 앤슬리에서 만든 찻잔에 홍차를 마시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홍차의 역사

1610년 네덜란드 상선은 처음으로 차를 유럽에 소개하였다. 당시 차는 주로 중국 남동부의 푸젠성에서만 생산되었다. 유럽과 영국 내에 차 시장이 커짐에 따라,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본격적으로 차 수입에 뛰어들었다. 동인도 회사는 영국과 유럽 그리고, 서아프리카를 제외한 아시아, 미국과의 무역을 담당하도록 1600년에 세워진 회사이다. 1678년 중국에서 처음으로 녹차와 홍차를 수입한 이후 차 판매로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기에 동인도회사 선적량은 차와 도자기가 대부분이 되었다. 영국 왕실은 차에 높은 관세를 매기기 시작했다.


미국의 독립

영국의 식민지 시절, 미국 대륙은 홍차가 유행하였다. 대부분 네덜란드에서 밀수로 들여온 홍차였다. 보스턴 항구의 밀수업자, 홍차 판매상들은 1파운드(453그램)에 3실링 (36 페니)의 높은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그러나, 1773년 영국 의회가 동인도회사의 미국 내 홍차 무역 독점을 승인하고, 또한 차의 가격을 1파운드에 2실링 (24 페니)으로 낮추었으나, 그 안에는 영국에는 없던 3 페니의 특별세(현재 가치로 1달러)가 숨겨져 있었다.


이로 인해 보스턴의 밀수업자와 홍차 판매상들은 큰 손해를 보게 되었다. 홍차에 부과된 불과 3 페니였던 특별세는 독립전쟁의 불씨가 된다. 동인도회사의 홍차 판매에 대한 독점과 식민지에만 부과한 특별세에 대한 저항으로 1773년 12월 보스턴 항구에서 티파티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이와 같이 티파티 사건이 하나의 발단으로 미국 독립운동은 미국 동부의 항구 전역으로 퍼졌고, 1776년 미국 독립까지 이르게 된다.

미국은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차 안 마시기 운동을 벌였고, 이후 미국인들은 주로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1904년 아이스티가 다시 소개되기 전까지.


중국(청)의 개방

중국은 동인도회사에 차를 팔 때 은으로 지불할 것을 요구하였고, 동인도회사는 영국에서 은을 가져와 차를 구매하였다. 영국으로 차를 가져가서 몇 배 차익의 수입을 거뒀다. 한편 동인도 회사는 인도에서 재배되는 아편을 중국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당시 청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아편에 중독되는 것을 막기 위해 1800년 아편 수입을 엄격히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밀수로 아편이 수입되어 대량으로 유통되었다.


동인도회사는 인도의 아편을 팔아 중국에서 은을 벌었고, 이 은으로 차를 구입하였다. 결국 동인도회사는 영국에서 은을 가져오지 않고서도 아편 판매로 얻은 수입으로 중국 차를 구입하였고, 중국 차를 영국 본토에 팔아 막대한 수익을 얻는 구조를 가져갔다. 동인도회사는 청 나라에 아편 제재를 풀고 중국의 항구를 개방할 것을 요청하였다. 1840년 영국과 중국 간의 아편 전쟁이 발발하여, 청나라는 결국 서양 각국에 문호를 개방하게 된다. 1842년 굴욕적인 난징조약의 결과로 중국은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게 된다.


인도 아쌈 티와 다즐링 티

동인도회사는 중국 푸젠성에서만 공급되는 차의 수입선을 다양화하기 위해, 푸젠성에서 몰래 들여온 차 나무를 인도에 심어서 재배하기로 하였으나, 기후와 토양이 달라 성공하지 못하다가, 인도 북동부에 위치한 아쌈 지역에서의 토종 차나무를 재배하는 데 성공하게 되어, 1839년부터 중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재배한 차를 영국에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아쌈 차는 몰트향과 과일향의 맛이 강한 편이어서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와 밀크티에 활용이 많이 된다. 인도는 아쌈 외에도 다즐링에서 고급 품종의 차가 생산되며, 서해안의 닐기리 차 또한 유명하다.


이후 인도에서의 차 공급이 중국을 추월하게 되었다. 인도의 아쌈 차는 기후와 토양에 대한 적응력이 좋아서 전 세계에서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터키, 남아메리카로 차 재배가 확산되었다.

 

한국 차 시장

전 세계 커피와 차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으로 각 1,000억 달러(120조 원), 550억 달러 (66조 원)에 이르고, 각 9백만 톤과 6백만 톤이 생산되고 있다.

이와 비교하여, 한국은 차를 거의 마시지 않는다. 1999년에 스타벅스가 국내에 들어온 후, 대한민국은 모두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 동네의 자그마한 찻집이 간신이 있을 뿐이다. 커피 수입량은 한 해에 18만 톤에 이르나, 차의 수입량은 1.5만 톤이고, 자체 생산되는 녹차는 연간 1,000톤 정도이니, 커피에 비하여 10분의 1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포트먼 앤 메이슨, TWG, 스티븐슨 스미스티와 같이 브랜드 홍차의 티백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데, 홍차 티백의 가격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카페에서 티백차를 마시는 것을 비싸다고 여긴다.


멋과 즐거움 가득한 차 여행

차 한 잔 속에 수 백 년간 차를 두고 벌어진 세계의 변화가 그려진다. 그리고, 영국 성, 이스탄불 보스프러스 해협, 그리고 교토의 우지로의 차 여행이 그리워진다. 친구와 함께 마시는 차는 멋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by 웨이브리지, 글모음 https://brunch.co.kr/@way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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