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원하라(Be happy to do WANT)-8

고민하라(Think), 원하는 것을

by 행복실천가 오원식

Think, 이 단어는 영어회화 초보들이 I 다음으로 많이 쓰게 된다. 잘 안 떠오르는 문장을 떠올리려면 오래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I Think...."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행복실천습관은 나에게 몰입하기다. 이유를 설명하기보다 직접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몰입(Flow)>과 황농문 교수의 <몰입(Think hard)>을 추천한다. 몰입한다는 것은 깊이 생각한다는 뜻이고 몰입을 할수록 내가 원하는 결론에 더 가까워진다. 결론이 좋기도 하지만 몰입의 순간 자체가 황홀하다. 몰입의 쾌감은 오래 지속될 뿐만 아니라 부작용조차 없다. 인간의 유전자가 다른 종족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무지막지하게 집중적으로 뇌를 발달시킨 궁극의 목적이 아닐까 한다. 부작용을 굳이 찾자면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깊이 생각에만 빠지는 정도다. 뉴턴이 그랬고 아인슈타인이 그랬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치며 나체로 뛰쳐나간 것도 몰입한 결과다.

안식년이 끝나면서 새로 약국을 시작했다. 그리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평생의 소원이었던 삼대가 행복한 집, 그 당시 부동산이 상승기라 집을 사는 게 더 이득이라는 주변의 말도 있었다. 하지만 안식년 이후로 남들이 바라는 삶에는 관심이 없어졌다. 나는 삼대가 함께 행복하게 사는 내 삶을 살고 싶으니까. 부모님은 40년간 하시던 음식점을 그만두셨다. 사실은 강제로 은퇴하시게 했다. 더 이상 남을 위해 사시지 말고 본인을 위해 사시면 좋겠다 설득했다. 행복하게 살기로 마음먹었더니 내 인생 세 번째 행운이 나타났다. 멋진 건축사님을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짓게 된 것이다. 평생 감사할 일이다. 남들은 집을 지으며 늙는다 했는데 삼대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주시느라 우리 대신 늙으신 것 같아 죄송함이 크지만 감사함이 더 크다.

"They live happily ever after." "그 후로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라는 뻔한 이야기를 재밌게 비튼 영화 Shrek을 참 좋아한다. 한 때는 슈렉을 닮아서 싫어했지만 이젠 닮은 것도 좋다. 슈렉의 행복한 삶은 현실적이다. 나의 현실적으로 행복한 삶은 다음과 같다.


아버지와 사이가 너무나 좋지 않았다. 마흔다섯에 펑펑 울면서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어요."라고 외쳤다. 어머니는 평생소원이 부자가 화목한 것이지만 포기한다 하셨다.

코로나로 약국이 망했다. 그것도 2년 가까이 고생하고 폐업을 결정했다. 업종 특성으로 망할 때까지 국가 지원을 한 푼도 못 받았다.

주식투자로 수 억대의 자산을 손절했다. 그것도 단 하루에

아이들의 사춘기가 왔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평생 숙제로 안고 가는 사람도 많은 문제다. 나는 다행히 모두 해결했다. 짧게 불행하고 자주 행복하게 사는 중이다. 어떻게 해결했을까?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법이 생길 때까지 끊임없이 찾고 시도하고 깨닫기를 반복한 것이다. 집을 짓는 도중 가족이 화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심리학을 공부했다. 오프라인으로 다니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라 디지털 대학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했다. 장학금까지 탈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으니 도움 될 것이라 믿었지만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불안해서 못마땅하셨고 나는 아버지가 아들을 인정하지 않는 게 불만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왜 그러실까 하면서도 어떻게든 좋아지고 싶어 몇 년을 좋은 방법을 찾는데 몰입했다. 그리고 외쳤다. "Eureka." 가족심리학을 공부하던 때였다. 가족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문제가 아니라 감정이라는 사실을. 아버지와 나의 문제는 해결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불안해도 된다. 인정 못 받아도 된다. 난 그냥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고 우리 아버지도 나를 사랑하시는 게 맞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만 생각했다. 혼내시는 아버지한테 막걸리를 따라드렸다. 언젠가 아버지가 안 계시면 혼나지도 못할 테니 이것도 감사했다. 그 이후로는 혼내셔도 웃었다. 그냥 옆에 있었다. 막걸리는 받으셨으니까 됐다. 그렇게 점점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연세가 들어 보여 고 1 때부터 쓰던 호칭을 바꿨다. 고 1 때 어른스러워 보이면 인정해 주실까 하고 아버지 어머니로 불렀던 바보짓을 거뒀다. 난 이제 아빠랑 제일 친하다. 우리 아들이 그런 것처럼. 매일 아침저녁으로 껴안고 사랑한다 말한다. 그리고 함께 자주 밥을 먹는다. 효자로 유명하신 17대 장손 선배 약사님께서 '같이 밥을 먹는 것이 효도'라 하셨다. 그래서 식구(食口)다.

코로나로 약국이 망했다. 안식년 이후 다시 시작한 약국이었는데 집 짓는 동안 열심히 돈을 벌게 도와준 고마운 약국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정이 안 갔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돈을 벌기 위한 것만이 목적인 약국'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 내 생각으로는 집은 행복의 결실이고 일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 또는 고통일 뿐이었다. 견딜만했지만 평생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코로나가 왔고 약국은 힘들어졌다. 하루에 다섯 명도 안 오는 날이 생겼다. 11시간을 약국에 있으며 느낀 감정은 '나라는 인간의 무용함'이었다. 사실 그 당시 약국은 잘 안 됐지만 주식투자가 잘되었다. 2년 간 약사로 번 돈 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런데 마음은 더 우울해졌다. 좋은 약사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돈도 못 버는 데다 무용함까지 느끼는 게 싫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2년 간의 고민 끝에 정리하고 새로운 자리를 찾았다. 2년 간 생각한 것은 '다음 약국을 하면 하루 종일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었다. 가족을 위해 할 노력을 다 했으니 나를 위해 행복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지금은 원하는 일터에서 동료들과 매일 하이파이브를 하며 지낸다.

즐거운 돈과 괴로운 돈이 있다. "남을 도움으로써 나를 돕는 사람이 약사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합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나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니까 노력하는 거이다."라는 슬로건으로 움직이는 번영약국으로 번 돈은 즐겁다. 행복한 약국을 만들고자 노력한 결과니까. 행복실천법 강의를 하면서 버는 강의료도 그렇다. 강의료는 행복을 사는데 쓴다. 그중 하나가 책 선물이다. 투자가 올바르다면 그렇지만 투기가 되면 다르다. 나는 주식투자 25년 차다. 사실 코로나 초기에 20년간의 주식경력 덕에 제대로 타이밍을 알았다. 그리고 단기간에 수억 대의 수익을 올렸다. 다행이었다. 약국이 망하고 새로운 약국을 하는데도, 집을 짓느라 대출을 받을 때도 이 덕에 큰 고민을 안 했다. 하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전업투자로 돈을 벌면 일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사이 약국을 옮기느라 잠시 잊었다. 다음 약국을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코로나 특수로 바빠졌다. 돈이 쉬우니 오만에 빠졌고 신용대출을 10억대까지 끌어다 무리한 투기를 했다. 그리고 1년을 버티며 견뎠다. 수익을 모두 반납하고 손실이 커지자 고통에 빠졌다. 쓸데없는 싸구려 물건들을 사며 이상한 중독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결국 수 억대의 손실을 실현했다. 며칠 뒤 나의 알 수 없는 피곤함(?)을 위로하려는 것인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맛있는 저녁을 하며 응원을 해주는 것이다. 그때 너무나 신기한 경험을 했다. 분명 고통스러워야 할 시간인데 행복한 기분으로 가득 찬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불행하다고 행복할 수 없는 게 아님을. 그리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내 의지로 마음껏 행복해지는 것임을. 그 이후로 손절의 고통을 잊고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 그 시작이 콜드샤워였고(글을 쓰는 현재 2년이 넘었다.) 행복해지는 공부였다. 그리고 선언했다. '나, 행복실천가, 행복실천법 강사가 될 거야.' 그렇게 약국을 즐겁게 하고 강의를 즐겁게 하며 즐거운 돈만 가까이하고 있다. 주식투자는 계속하고 있다. 즐거운 돈을 벌 수 있는 느긋한 투자로. 즐거운 투자 이후 수익성이 좋아졌다. 즐거운 돈이 나랑 맞다.

큰 아이가 사춘기가 왔다가 잘 자리 잡았다. 나는 23살에 이미 첫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바라는 것만 많았던 터라 언젠가 결혼하고 애는 낳겠지 하던 때다. 그래도 이것 만큼은 잘했지 싶다. 오사랑. 아들이면 생각할 사(思)에 사내 랑(郞) 자를 써서 아빠처럼 생각 없이 살지 말고 생각이 깊은 남자가 되라는 뜻이고 딸이라면 생각할 사(思)에 밝을 랑(朗) 자를 써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다행히 큰 딸은 이름과 같이 밝게 성장했다. 나이가 드니 남들처럼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처음엔 이상하고 힘도 들었다. 우리 딸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남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답이라 그랬다. 특히 아빠는 더더욱. 그게 답이 아니라 생각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한 몰입한 결과 딸과 옆에 나란히 앉아서 책도 읽고 둘만의 산책을 하며 편안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앞서 말한 아이들의 마음을 어른의 것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되 어른의 뇌를 빌려주는 것. 이 책의 문장을 다듬어준 것도 딸이다.

원하는 것을 너무나 이루고 싶은 사람은 몰입한다. 깊이 생각한 결과를 다시 실천하고 결과를 확인하고 또 생각한다. 에디슨은 실패한 적이 없다. 찾고 실행하고 깨닫고 생각하기를 무수히 반복하며 몰입에 빠졌을 뿐이다. 오델로 게임을 떠올려보자. 수많은 실패로 패색이 짙어지다가도 깊은 생각 끝의 한 수로 인해 승리한다. 성공한 사람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마지막 한 수의 순간일 뿐이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기나긴 실패와 성공의 과정을 거쳤다. 성장의 시간이다. 긴 시간을 통한 성장은 '매일의 작은 성공'을 쌓은 산과 같다. 성장하지 못하는 자는 성장한 자의 '또 다른 하루의 성공'을 평가할 뿐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만들 당시 이미 귀가 멀어 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대단하게 여긴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베토벤이 이 곡을 구상하고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30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당신이 원하는 삶은 성공의 순간인가 성장의 시간인가?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시간이다. 내게 있어 원하는 것을 찾고 실천하고 깨닫고 몰입하는 과정은 행복의 시간이다. 나는 행복할 때 살아있다. 그리고 살아있어서 행복하다. 이게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몰입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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