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원하라(Be happy to do WANT)-7
깨달아라(kNow), 원하는 것을
by 행복실천가 오원식 Nov 22. 2024
kNow는 능히 그럴 수 있는 선택이다. 이렇게 좋은 단어를 철자 놀음으로 바꿀 수 없었다. kNow의 k는 묵음이라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알면 일이 쉽다. 깨달으면 더 좋다. 현명한 사람은 무엇인가 하기 전에 효율적인 수단을 통해 알려고 노력한다. 대표적인 것이 책이다. 반면 나 같은 반푼이들은 일단 행동한다. 몸으로, 그리고 삶으로 대가를 치른 뒤 배우는 것이다. 그래도 깨달으면 다행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얻는 깨달음은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 깨달음은 또한 내가 행동한 결과를 확인하고 수용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깨달음은 지혜를 낳는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의 깨달음이다. 우리 부모님도 그러하셨고 나 역시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이렇게 후회와 반성을 기록한다.
왜 멈췄을까? 이미 멈춰야 할 이유는 확실했다. 둑이 무너지기 전까지 몰랐을 뿐. 일곱 살의 딸과 네 살의 아들의 아빠로 열심히 살던 날들이었다. 아이들은 현명한 엄마 덕에 이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둘째가 말이 조금 늦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모든 게 다 평화로웠다. 20대의 후회와 반성을 통해 30대에는 근면성실하기로 결심한 아빠는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도 그보다 중요한 일을 우선했다. 남들도 그렇게 사니까. 부모님은 몸만 상하지 말라고 응원하셨고, 천사님은 묵묵히 지켜봤다. 아이들과 시간이 부족한 게 아쉬웠을 뿐이다 순조로운 삶이었다. 지난 시간의 낭비를 만회하려 언제나 효율적으로 살겠다 생각했기에 어쩌다 생기는 짧은 시간에 아이들을 대할 때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이들에게 뭔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똑똑한 방법을 알려주는 게 최우선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는데 아직 말을 제대로 못 하던 둘째가 환한 모습으로 "아빠~" 하면서 달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멈춰 섰다.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는 둘째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깜짝 놀란 나는 천사님에게 물었다. "건이가 왜 그럴까요?" 천사님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가 자기를 혼내기만 하니까 그래요." 깜짝 놀랐다. 내가 언제? 나는 어느새 무서운 아빠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기에 짧은 시간에 단점을 찾아 고친다는 핑계로 혼내기에 바빴다.(대체 네 살의 아이가 무엇을 잘못할 수 있단 말인가?) 첫 아이가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나 자라는 동안 열심히 바른 길을 가고 있다 착각했다. 그냥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지치다는 핑계로 일이 끝나면 친구들과 만나 술이 취해서 늦게 오거나 방구석에 들어가 텔레비전을 벗 삼아 술 마시다 자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어이없게도 열심히 살았는데 다시 한심한 중독자, 이제는 거대한 빌딩 사이의 이끼는 아니지만 가족의 중심에서 햇빛을 가리는 잘못 자란 나무가 된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고통도 없는데 왜 그렇지? 혼란스러웠고 공포스러웠다. 이유는 모르지만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직면했다. 그날 저녁 방구석에서 펑펑 울었다. "안 되겠어요. 나 그만둘래요." 천사님은 말했다. "잘 생각했어요." 그렇게 결심은 실행되었다.
남들이 신기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그런 큰 결심을 하게 되었는가? 여유일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니 느꼈다. 20대의 후회를 다시 할 것 같은 공포감이 엄습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죽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피하기 위해 내가 원하는 삶을 찾는 길을 떠났다. 멈춰서 내가 한 잘못을 차분히 돌아봤다. 나는 다시 남의 평가를 기준으로 살고 있었다. 그때보다 그래도 나아졌다 생각할 점은 그때는 아무것도 안 했지만 지금은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사실 나아진 모습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이렇게도 안되며 어떻게 하라는 거지?' 다시 차분히 돌아보니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남보다 돈을 열심히 벌고 남보다 일을 많이 하고 남보다 나은 삶을 살았다고 착각했다. 그리고 나와 내 가족을 중심에 뒀다 착각하며 남의 눈에 보이는 삶에 집착했다. 언제나 내가 원하는 삶은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삶이었다. 다행히 둑이 무너질 뻔한 순간 둘째를 통해서 깨달았다. 모든 걸 내려놓는데 용기가 그리 크게 필요하지는 않았다. 다시 후회스러운 삶을 살게 될 두려움이 훨씬 컸다. 다행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달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내 마음에 솔직하는 수밖에 없다.
안식년을 통해서 얻은 것은 너무 단순했다. 그리고 당연했다. 가장 중요한 일들이었다. 가장 큰 소득은 아이들과 더할 나위 없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둘째 아이는 아빠와 시간을 더 보내며 말이 트이기 시작했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아이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환경이란 단어를 잘못 알고 있었다. 아이는 함께 있어 주는 아빠면 충분하다. 그게 진짜 제일 중요한 환경이다. 나는 둘째의 유치원 입학식에 혼자 참석했다. 특별한 행사는 없었다. 유치원의 일상 중 첫날일 뿐이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영원히 특별한 날이다. 아빠에게는 안식년의 첫날이었고 아들과 함께 하기로 선택한 첫날이었으니까. 그날 이후로 거의 매일을 아들과 함께 유치원 등하원을 함께했다. 지금 우리 아들은 아빠랑 가장 가깝다. 그리고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했다. 여행도 맘껏 다녔고 책도 맘껏 읽었다. 음식 만들기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아이들의 밥을 만들어주는 재미에 빠졌고 아이들은 아빠가 옆에 있어 좋았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았다. 이로서 살아남게 되었으니까. 행복을 잘 써야 생존의 에너지를 얻게 되니까.
하루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밤이었다. 라디오 DJ의 내레이션이 나를 뜨끔하게 했다. '산을 내려올 때는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낮추고....' 그렇게 열심히 살던 이유가 남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함이었는데 막상 내려와 보니 동네 앞 언덕 만도 못했다. 나는 그냥 그렇게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다. 나 혼자만 별 볼일 있다고 생각했지만, 별 볼일 없는 나 때문에 소중한 가정이 별 볼일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뜨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족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했고 다시 일어설 준비를 했다. 이 모두 가족이 지지하고 응원해 준 덕이다. 내 선택은 옳았다. 나는 가족을 통해서 힘을 얻는 사람이다. 슈퍼맨이 태양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는다면 나는 가족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다시 시작할 시간이다. 그런데 어떻게 시작을 하지? 앞으로 어떻게 살지? 생각을 계속했다. 불안한 것일까? 불안함은 괜찮다. 행복한 사람은 불안할 수 있지만 불행한 사람은 불안을 못 느낀다. 그래서 불안하다는 것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불안은 세금일 뿐이다. 내 삶의 지도와 나침반 어디에 있을까? 아, 맞다. 좌우명!
안식년을 통해 얻은 다른 한 가지는 평생을 함께 할 마지막 좌우명이다.(물론 더 나은 깨달음이 생긴다면 바꿀 수도 있다.) 나는 고 1 때부터 좌우명을 갖고 살았다. '멋대로 살되 함부로 살지 말자'는 34살 때까지 쓴 좌우명이다. 그리고 40살까지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한다'는 좌우명으로 살았다. 내 마지막 좌우명은 '두 손을 펴고 마음껏 살다.'.로 정했다 나는 이제 마음껏 살고 있다. 내 두 손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바라본다. 남들보다 작은 내 손에 움켜쥘 욕심이 아니라 유독 큰 머리에 쌓고 싶은 지혜와 가슴에 가득 채울 마음을 바라본다. 속도보다 방향을, 성공보다 성장을 하는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었다. 나의 방향, 나의 성장. 40년을 달리다가 1년을 멈추고서 얻게 된 깨달음이다. 이제 내가 원하지 않는 삶에 대한 걱정은 없다.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실천하며 잘못되더라도 깨달을 수 있고 다시 돌아갈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나를 지지하는 가족,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마음이 있다. 이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일 때문에 고민할 일은 없어졌다. 나는 내 마음에 솔직하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한다. 그런데 살다 보니 고민이 더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