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원하라(Be happy to do WANT)-6

실천하라(Act), 원하는 것을

by 행복실천가 오원식

Act라는 단어를 볼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고 정주영 회장이다. "어이, 자네 시도는 해봤어?" 나는 시도하는 게 좋다. 결과가 생기니까. 약국 동료들한테 하는 이야기가 있다. "가역적 시도는 무엇이 되어도 좋으니 마음껏 시도해 봐요. 그러면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 깨닫게 될 테니까요. 그중에 좋은 게 우리가 원하는 것이에요." 해봐야 알 수 있고 알아야 깨닫기 때문이다. Act는 WANT의 핵심이다. 행복도 성공도 원하는 사람이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다. 원하는 만큼은 원하는 일을 찾고 시도해 봤을 때 알 수 있다.


원하는 삶을 찾았으니 잘 살기 위해 성공하는 사람들의 궤적을 열심히 따랐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 노력했다. 약사로서 열심히 사는 것보다 좋은 길은 없었다. 아이가 태어났으니 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 하루는 천사님과 대화를 하다 좌우명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아빠인데 '멋대로 살되 함부로 살지 말자'라는 좌우명은 아닌 것 같아요." 맞는 말이었다. 며칠 고민 끝에 새 좌우명을 만들었다.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한다.' 20대 시절의 후회와 반성으로 함부로 살지 않게 되었으니 원하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실천했다. 남들과 다른 시도를 통해 짧은 시간에 수십 곳의 약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내 약국을 열었다. 정말 열심히 할 자신이 있었다. 이왕 열심히 사는 김에 재미있고 싶었다. 원하는 시도를 통해 재밌는 약국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재밌게 하니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7년 간 매해 약국은 성장했다. 저널에 칼럼도 쓰고 약사회 주간 언론사에서 약사를 대상으로 하는 개인 타이틀 영상도 5년 간 찍었다. 전국을 다니며 약국경영 전문강사로 활동했으며 지역 약사회(나는 제주도에 살고 있다.)는 물론 대한약사회 활동도 했다. 다 재미있어서 한 일이었다. 경제적 여유도 생겼고 그 덕에 약사라는 직업에 대해 감사함을 약사 사회에 보답하는 의미를 부여한 회사도 시작했다. 매일매일 열심히 살고 누구보다 애썼다고 자부할 때다. 열정적인 나를 알리고 싶어 '열정생산자 오원식'이라는 명함도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지치기 시작했다. 모든 일이 재미 없어졌다. 불안감과 불만이 커지기 시작했다. 몸도 많이 망가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님을 알게 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몇 년 간 입버릇처럼 쉬고 싶다는 말을 했고 결국 실행했다. 손실을 감수하고 회사도 접었다. 잘하고 있던 약국도 접었다. 칼럼도 방송도 강의도 약사회 활동도 접었다. 약사라는 직업의 무대에 모든 등이 꺼진 암전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안식년을 가졌다. 아니 뒤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싶어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목표를 eudaemonia(에우다이모니아)라 했다. 어원적으론 “eu”(“good”)와 “daimōn”(“spirit”)의 합성어로 좋은 영혼을 뜻한다. 인간의 궁극적 목표는 가치 있는 삶이라 하였고 이를 후대에서 행복이라 생각한 것이다.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2024)에서 “지금까지 많은 서양 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가치 있는 삶이 곧 행복이라는 해석을 해왔다. 그 결과, 행복을 필요 이상으로 거창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이 거창한 이유가 있다.”며 다음을 말다. “그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귀족 가문에서 최고만을 누리며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스승은 플라톤, 제자는 알렉산더 대왕. 인류 역사에 이렇게 화려한 이력서를 가진 사람이 또 있을까. 그래서 그의 행복관도 엘리트주의적이다. 그에 의하면 여자나 노예들은 행복을 누릴 최소한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누리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은 ‘칭송받을 만한’ 삶의 구성 요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착각’이다. 사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정확히 말해 ‘가치 있는 삶(good life)’이지 ‘행복한 삶(happy life)’이 아니었다. 우리가 이 둘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초엘리트주의적 행복관의 잔재 때문에 좋은 삶과 행복한 삶이 뒤엉켜 있다.” 서은국, <행복의 기원: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21세기 북스, 2014 초판 2024 개정), 185~186쪽.

서은국 교수의 책 행복의 기원은 내가 행복실천법 강사가 된 큰 계기가 되었다. 행복하게 사는 것에 관심이 많은 나는 내가 직접 행복을 실천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성공한 행복 사용 후기를 공유하는 것이 좋다. 서 교수의 말에 따르면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닌 도구다. 옳다구나! 내가 행복을 잘 쓰면 그 에너지가 나를 잘 살게 만든다. 그 에너지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 에너지를 다시 행복을 쓰는 데 사용하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불분명할 때 나는 행복을 바라기만 했다. 내가 원하는 행복을 실천하지 않고 내게 다가올 미래만 낙관했다. 세상이 내게 준 평가가 나를 채울 동안 나는 내가 원하는 나의 평가를 잃어버렸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세상의 평가를 감사하기도 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나의 행복 실천에 집중할 뿐이다. 내가 행복하면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내가 원하는 삶을 다시 찾고 행하고 깨닫고 고민할 것이다. “행동은 가장 강력한 설득력이다. 오늘을 가장 설득력 있는 행동으로 시작한다면 내일은 가장 설득력 있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햄릿의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말이다. 나는 내 마음에 솔직했고 책임질 용기를 냈다. 힘을 실어줄 가족의 지지도 받았다. 멈춤과 돌아감을 선택하고 실행(Act)했다. 그 덕분에 다행히 지금의 내가 있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잘못 알았기에 모든 것을 멈추고 뒤로 돌아가기까지 했을까? 지금의 삶을 얼마나 원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내게는) 이렇게 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너무나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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