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생활 19년, 교사 생활 9년, 이제는 질문할 때!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비교적 모범생으로 학교에 다녔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이유나 학교에서 공부하는 내용에 대해 큰 의문은 없었습니다. 공부가 비교적 적성에 맞았던 것도 있었겠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정말 멋진 미래가 펼쳐질거야!’라는 생각이 기꺼이 큰 불만 없이 공부하도록 저를 다독여 주었지요.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한 저는 처음에는 고대에 들어갔다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교대에 와 있었습니다. 합격의 기쁨은 정말 잠시였고, 학교 생활은 현실이었습니다. 두 번의 대학교 선택은 그다지 신중하지 못한 순간적인 판단이었지만, 그 선택은 돌이키기 어려운 것이었죠. 남들은 오고 싶어하는 대학일지 모르지만, 저에겐 감옥 같았습니다. 교대 교육과정은 저를 매료시키지 못했고, 교사는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교 4년, 대학원 3년은 의문의 연속이었어요. 고등학교 때 정말 열심히 공부하면 꿀같은 날들이 펼쳐질거란 것은 제 착각이란 것을 처절하게 깨달아 갔죠. 조금만 참자, 조금만 더, 조금만......! 하다가 쾅! 하고 한계에 부딛친 거지요. 아무리 공부를 해도 행복해지지가 않았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길을 가는 방법도 모르고, 뛰쳐나올 용기도 없어 ‘준비되지 않은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준비도 안 된 채, 교육 현장에 던져지니 어땠겠어요? 교사가 된 첫 해는 지옥이었죠. ‘이 직업을 3년 하면, 나는 정신과 병원에 실려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진로를 바꾸어볼 수 있을까 하여 대학원에를 갔는데, 결국은 ‘공부도 나의 적성이 아니다.’는 결론과 탈모를 얻고 겨우겨우 졸업을 했죠.
초, 중, 고, 대, 대학원까지 하면 저는 무려 19년이나 학생 생활을 한 셈인데, 그 결과가 ‘빛나는 미래’도 ‘행복’도 아닌 ‘탈모’라니... 정말 허무하고 어이가 없지요. 그런데, 궁금한게 있어요. 저만 그런가요? 저는 제 경험이 저만의 것이 아닌, 동시대 수많은 대한민국 학생들이 함께 겪은 ‘시대의 아픔’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저는 진작에 던졌어야 했어요. 19년을 채우기 전에, 아주 어릴 때부터요.
교사가 되고 나서 저의 질문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학교폭력과 교실붕괴는 저의 학창시절부터 있어온 일이지만, 여전히 학교는 상처투성이었습니다. 언젠가 제 아이를 낳아 학교에 보내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그렇다고 학교에 보내지 않자니 마땅한 대안교육도 떠오르질 않고... 진퇴양난이랄까요? 저는 많은 학부모들이 이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옥같았던 교사 첫 해를 버텨내고, 힘든 3년도 지나가고, 다행이 저는 저의 예상과 달리 정신과 병원에 실려가지 않았어요. 오히려 생각보다 교사 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뛰쳐나가고 싶고, 저의 행복은 작품활동에 있다고 생각하는 저이긴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제가 교사 생활을 즐기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어떨 때는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진심으로 교사 생활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 비결이 어디에 있는고, 하니 바로 ‘질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교사란 무엇인가, 교사와 학생은 어떤 관계인가, 우리가 만나 의미있는 시간들을 만들어갈 수는 없을까, 그런 질문을 수도 없이 했고,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가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저 나름의 답을 찾을 때마다 교사 생활은 조금 더 의미가 있어지고,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좀 더 즐거워 집니다. 제가 찾은 의미들은 본문에서 천천히 꺼내놓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답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의 생각은 수많은 답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저와 전혀 다른 성격과 개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오답이 될 수도 있겠죠. 다만 한 가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삶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아무런 의문없이 남들이 정답이라 말하는 길을 따라가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남들은 내 인생을 책임지지도, 대신 살아주지도 않아요.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삶의 주체인데, 어른들이 대신 살아줄 것처럼 특정 방향의 삶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책임은 아이가 지겠지만, 그 원망은 어른들에게 돌아올테죠.
그래서 저는, 제가 품었던 교육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저의 글에는 저의 주관이 담겨 있겠지만,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필명 waysbe는 ‘길이 여러 가지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이 글을 통해 질문을 던질 뿐, 각자의 길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삶과 교육에 대한 답은 그리 쉽게 바로바로 드러나지는 않겠지만 끊임없이 질문하다보면, 어느샌가 자신의 길이 만들어져 가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그랬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