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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훈 Apr 12. 2020

24일


Y를 만난 건 스무 살 때였다. 우린 부동산학과의 동기였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부동산학과로 진학하는 이유는 보통 두 가지다. 성적에 맞춰 진학한 거 아니면, 부모가 부동산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경우. 스무 살의 나이에 부동산의 대부가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을 리 만무했다. 동기란 걸 차치하면 딱히 접점이 없던 우리는 평일 밥값을 벌기 위해 주말에 누군가 먹다 남긴 음식을 치우는 일을 하며 돈독해졌다.


노선은 바뀌었다. Y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고, 졸업을 한 뒤 호주에 갔다. 거기서 습득한 어학 능력을 가지고 부기장 시험 준비를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끈기가 없던 난 2학년을 마치고 편입을 준비했다. 통학시간을 줄일 수 있었지만, 그때 배운 속성 영어를 더 발전시키진 않았다. 가는 길은 달랐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이번엔 서로가 원하는 걸 찾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먼저 합격자 신분이 된 건 Y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는 매주 시뮬레이션 훈련을 하고, 각종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입사 후, 널널한 직장 생활을 하는 내 입장에선 알 턱 없는 삶이었다. 까짓것 떨어지면 다른 회사 지원하면 되는 거 아니냐 물었다. 친구는 수습 기간에 낙오된 사람은 업계에서 알음알음 소문이 난다고 답했다. 일종의 낙인 같은 게 찍힌다고. 그게 진실인지 김어준식 음모론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은 Y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만들었다.


한창 날아오를 준비를 하던 친구는 2월에 비행 스케줄이 취소됐단 소식을 전했다. 3월에는 휴직에 들어갔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얼마 전 4월, 이번엔 연락이 아닌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했다. 1~2년 차 수습 부기장들이 정리해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팬데믹 이후 세상살이가 힘들어졌단 기사를 봐도 좀체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이번엔 달랐다.


마스크를 쓰고, 손세정제를 챙겨 친구를 만나러 갔다. 한겨레나 경향의 렌즈로만 세상 돌아가는 걸 파악하던 난 그가 다니는 항공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알 수 없었다. 항공사 이야기를 알게 된 건 친구의 입을 통해서였다. 자기가 말하는 내용은 어느 언론에서 보도한 기사란 설명을 덧붙였다. 지금까지 어떤 정황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그걸 듣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기계적으로라도 중립이란 걸 지켜야 하나. 이런 게 당사자성이란 건가.


“난 그동안 헬조선이란 담론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었어. 그건 자기 핑계 같은 소리로만 들렸거든. 노력하면 될 수 있잖아. 근데 처음으로 내가 그 생각에 동의하게 됐어. 내 생각이 틀렸을 수 있구나 싶더라.” 나 같은 약골은 애당초 능력주의란 신화를 믿지 않는 편을 택했다. 노력하는 데 힘을 쏟기보단, 노력해도 안된다는 비관적인 얘기를 믿는 게 여러모로 편했으니까. 친구는 달랐다. 부딪혀보고 피부로 느껴 깨닫는 편에 속했다.


참 신기했다. 가는 길이 다른 두 사람의 생각이 교차점을 찾게 된다는 게. 동시에 당사자성이란 부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곱씹어 봤다. 구조조정을 직면한 어느 항공사의 직원들만 당사자일까. 그들과 엮인 가족 또는 지인들도 당사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속 편한 생각을 하는 건 내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일까 등등.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친구는 이제 구조조정 통보일을 초조하게 바라보는 신세가 됐다. 그 일이 ‘내 일’이 됐다고 말할 순 없지만 나도 그 날짜를 외워버리고 말았다. 그런 일은 결코 발생해선 안되지만, 만약 친구에게 그 일이 발생한다면,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무얼 하려는 거 자체가 오만일까. 설령 300명이란 숫자에 친구의 이름이 적히지 않았다면, 그건 더 이상 내 일이 아니니 다행이라고 안심하면 그만일까. 복잡한 문제다. 발표는 24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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