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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서 Dec 10. 2019

3. 미워하고 믿어가면서

< 제 5 장 > 투 잡 한번 해 볼까?

나은이는 말이 없는 친구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은주보다 같이 있는 시간이 더 많았음에도 특별히 그녀와 있었던 에피소드가 기억나는게 없다. 딱 하나 기억난다.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은 어느 날, 서로 퇴사했던 시기가 비슷해 다음 회사로의 이직을 준비하며 동네에서 만났을 때였다.


"나은아, 회사는 어땠어?"

"말도 마. 잘 시간이 없었어. 매일 마감일 맞춘다고 야근하고…."


학생 때 만난 친구들이 성인이 된 후에 어떻게 지낸다는 얘기를 들으면 놀랄 때가 있다. “걔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일을 한 대, 상상이 돼?” 나은이가 그런 케이스였다. 그녀는 미술이나, 디자인에 특별한 관심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덜컥 실내디자인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졸업 후엔 전공을 살려 인테리어 회사에 취업까지 했다.


"진짜 박봉에다가, 야간이나 휴일 수당도 안 줘…. 우리 상여금도 없다?"

"헐…. 진짜? 그래도 되는거야? 그런데 계속 다녔어?"

"응, 이 업계가 다 그래….“

“너 인테리어 회사 간다고 할 때 진짜 신기했었는데, 에구... 그동안 고생 많았네.”


계약직 근무가 끝나고 이력서를 넣고 있을 때, 나은이는 3년째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몸이 먼저 망가질 것 같다며 버티고 버티다가 퇴사했다. 인테리어 업계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온갖 힘든 과정들을 버티며 3년의 경력을 쌓은 것이다. 


처음으로 나은이가 가깝게 느껴졌다. 말이 없던 친구는 말이 많아졌다. 말랐던 애가 힘들어서 살도 쪘다. 월급쟁이인 우리는 다 똑같았다. 일은 힘들고 연봉은 박봉이고, 이대로 사는 것이 맞는 건지 앞길은 캄캄했다. 막상 다른 걸 시작하기에는 늦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포기하진 않았다. 할 수 있는 걸 했다. 나은이는 다른 회사로 이직했고, 나도 100군데에 이력서를 쓰다가 취업했다. 몇 년이 흐른 후, 나은이는 인테리어 전문가가 됐다.


"봐, 여기 사이즈가 이만큼이니까. 이쪽에 바를 만들고, 반대쪽에 테이블을 배치하면 될 것 같아."

"우와 이게 우리 가게야? 입체로 보이는 거야? 미리 가구 배치까지 다 해볼 수 있는 거야?"

“그러엄, 뭐든 해 볼 수 있어.”


친구가 보여준 캐드라는 프로그램은 상상을 초월했다. 가게를 고스란히 컴퓨터로 옮겨온 느낌이었다. 벽지와 바닥, 필요한 가구까지 전부 3D로 만들어서 배치할 수 있었다. 심지어 사람도 집어넣을 수 있었다. 심즈 게임을 보는 듯했다. 보는 내내 감탄사가 나왔다. 


내가 잘 모르는 일을 할 땐 전문가의 손을 빌리는 것이 가장 빠르다. 나은이 덕분에 빠른 기간 안에 인테리어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인테리어 비용도 절약했고, 무엇보다 충분히 의견을 나누면서 어떤 모습의 카페를 만들고 싶은지 구체화 시킬 수 있었다.


"전기배선은 이쪽으로 빼주시고, 저 기둥은 모양대로 잘라주세요, 붙이면 테라스가 돼요. 앗, 타일은 이 방향으로 붙이시면 안 돼요, 이건 다시 붙여주세요."


친구가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나은이는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목재, 전기, 수도, 타일 사장님들과 대화를 하는 모습은 터프함 그 자체였다. 레이저가 나오는 줄자를 들고 툭하면 길이를 재는 것도 멋있었다. 손이 조금 긁혀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다치는 것은 그녀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모든 과정이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엄청나게 싸웠다. 상의할 시간은 부족한데, 서로의 의견이 전부 달랐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 하나를 결정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공사가 시작하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끝나고 나서도 모두가 예민해져 있었다. 우리는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주기적으로 맛있는 것을 먹으며 회식을 했다. 의견 차이로 생긴 마음의 금을 맛과 술로 메꿨다. 술은 대화의 수단이었다. 


"와, 나은이 장난 아니던데, 일할 때보니까 완전 딴사람 같더라. 전문가야, 멋있던데~"

"뭘…. 맨날 하는 일인데…."


가까운 사이일수록 칭찬에 인색하다. 이런 오글거리는 대화도 술을 먹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잘잘못을 가리는 대화도 술을 마시면 한층 부드럽게 얘기가 됐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을 만들고 있었다. 동업이라는 길 위에서 함께 걷기가 힘들어지면 잠시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함께 사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동업의 장점은 투자금이 적게 들어가서 리스크가 적어지고,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일할 수 있는 몸도 여럿이다 보니 내가 일하지 못할 때 동업자가 도와줄 수 있다. 단점은 투자금은 적게 들어가지만, 수익도 그만큼 나눠야 한다. 의사결정의 속도가 늦어진다. 인테리어 소품의 위치부터, 쿠폰 모양, 진동벨 업체까지 소소한 것들도 함께 얘기를 나누고 결정해야 한다. 한 명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가 없다.


가게를 차리기 전에 어떤 것이 나에게 맞는지 생각해 보자. 장단점을 종이에 쓰고 고민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다시 돌아가도 동업을 선택할 것이다. 월급쟁이가 투잡을 할 땐 동업의 장점이 부각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회사에서 일하고 있더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존재가 가게에 있기 때문이다. 우린 20년 동안 동거동락한 친구였다.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다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사이다. 이런 관계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친구들이 있었기에, 함께 만들어 갔기에, 더 의미가 있는 가게가 만들어졌다. 요즘도 카페에 가면 캐드로 봤던 가게가 현실에 나와 있다는 것에 감탄하곤 한다. 성격도 다르고 직업도 다른 세 명이다. 일 년에 한 번 만나서 삼겹살을 먹던 초등학교 친구들이었다. 서로의 아픔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응원하던 우리가 사장이 됐다. 싸우면서도 점점 서로를 신뢰하게 됐다. 


미워하고 믿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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