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 장 > 투 잡 한번 해 볼까?
카페를 차리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메뉴였다. 손님들이 카페를 찾는 궁극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뉴를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원두는 어느 것으로 할 것인지, 디저트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 결정해야할 것이 산더미였다. 나는 여전히 카페 문외한이었고, 우리는 결정장애를 갖고 있었다.
"커피 원두를 만드는 가게가 이렇게 많았구나..."
아는 것이 없을 때는 발품을 파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맛있다는 평이 있는 원두를 전부 검색했고, 샘플을 신청했다. 하루 날을 잡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했다. 샘플로 받은 원두를 하나씩 바꿔가면서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렸다. 다른 두 명에게는 원두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8개의 원두를 순차적으로 마셔보고 커피 맛을 비교했다. 토너먼트를 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원두를 선택했다. 우리의 철학은 '우리가 먹기에 맛있어야 고객이 먹어도 맛있다'는 것이었다. 총 16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미각을 잃어갈 때쯤 생각했다. 오늘 밤은 잠자긴 글렀다고.
최종적으로 선택한 원두는 엔트러사이트의 나쓰메 소세키와 버터 팻 트리오였다. 손님이 A타입과 B타입으로 원두를 선택하도록 컨셉을 잡고 있었다. 나쓰메의 산미와 버터팻의 고소함이 대비를 이루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초보였다. 하지만 무엇이 더 맛있는 지는 비교할 수 있었다. 가장 쉬운방법인 비교평가를 하면서 합의점을 만들어 냈다.
커피를 골랐으니 디저트를 정해야 했다. 관심을 가졌던 것은 크루아상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손품을 팔아 크루아상이 유명하다는 맛집을 검색했다. 맛있다고 소개된 가게를 찾으면 발품을 팔면서 한 군데씩 방문해서 빵을 샀다. 당시 크루아상으로 유명했던 가게는 홍대의 올드크루아상팩토리, 합정의 곤트란쉐리에, 마포의 프릿츠커피컴퍼니였다. 크루아상들을 모아 전부 잘라 놓고 맛을 비교했다. 어떤게 어느 제품인지 아는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나머지 둘은 맛만 놓고 비교를 했다. 가장 맛있는 빵을 고른 뒤, 우리가 원하는 바삭함과 맛의 표준을 찾아갔다.
카페의 컨셉은 유럽이었다. 유럽의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크루아상과 함께 커피를 즐기는 거다. 오픈시간에는 빵부터 구웠다. 빵을 구워내는 냄새가 온 골목에 퍼져나갔다. 빵은 자연스럽게 커피를 주문하도록 했다. 빵냄새로 찾아온 손님들은 커피를 마시며 한마디씩 했다. “커피도 맛있네.” 라고. 우리의 고민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타르트를 메인으로 팔고 있지만, 나도 가끔 그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맛이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이었다. 원두나 재료가 조금 비싸더라도 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우리가 먹을 때 맛있어야 고객에게도 추천할 수 있는거 아닌가?'라고 말이다. 크루아상과 커피에 대한 이론은 잘 몰라도 맛에는 자신이 있었다. 발품을 팔고 먹어보며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맛있는 제품을 찾아 냈기 때문이다.
"너네 둘이 집에서 자고 와, 난 여기서 잘게."
새벽 6시. 땀에 찌들고, 먼지를 뒤집어쓴 셋은 멍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은주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내일은 가오픈 날이다. 밤새도록 청소를 했지만 아직 할 일이 많았다. 나은이와 나는 샤워만 하고 다시 카페로 왔다. 밤을 새서 그런지 여기가 우리 카페인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가오픈은 실패였다. 메뉴만 고심했지, 손님을 응대하는 멘트 같은 건 준비할 생각도 못했다. 제대로 된 메뉴얼도 없이 어벙하게 주문을 받았다. 주문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다. 전문성이 없었다. A타입과 B타입의 원두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달라는 말에, "A는 산미가 있고 B는 없는거에요~"라고 말해버렸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릴 걸.’ 후회가 밀려왔다. 누가 봐도 신입 아르바이트생처럼 보였을거다. 음료와 디저트를 준비하는 동선은 꼬이고 빵이 다 팔리면 다음 크루아상이 나오기 까지 시간이 너무 소요됐다. 문제는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선배나 상사에게 물어 볼 수도 없었다. 모든 해결책은 스스로 찾아내야 했다.
자리를 잡는 것도 쉽지않았다. 은주는 1년 내내 우리 가게가 자리를 잡지 못했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매출이 폭발적이진 않았지만 꾸준히 손님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겠거니 했다. ‘자리를 잡는다’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반년이 더 지난 후였다. 우리가게를 떠올리면 바로 생각나는 ‘우리만의 메뉴’가 있냐는 것이었다. 우리 카페에 올 이유가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크루아상이 이유가 되기엔 부족했다. 크로아상 전문점처럼 대량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종류가 많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우리 카페에 찾아오진 않았기 때문이다. 수요도 날짜마다 뒤죽박죽이어서 항상 재고가 남았다. 빵은 재고가 남으면 다음날 팔 수가 없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고민을 하고, 팔리지 않던 미니베이커리는 전부 뺐다. 그리고 실험을 했다. 외부에서 타르트도 떼와서 팔아보고 브라우니도 만들어봤다. 손님들의 반응을 살폈다. 1년 내내 디저트를 변경했다. '이 집은 그게 참 맛있어!'라고 할 디저트가 필요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를 만났다. 우리의 파티쉐가 되어준 첫 직원을.
우리 가게의 첫 정직원이자 파티쉐로 입사한 재현오빠는 제빵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관심이 있어서 빵을 굽기 시작했다고 했다. 대신 오빠는 직접 브런치 가게를 운영한 적이 있었다. 다음 가게를 준비하는 시기에 잠깐 일을 도와주러 온 것이다. 하지만 인연은 인연인지 지금까지 우리의 메인 파티쉐로 일하고 있다. 우리가 떼와서 데코레이션을 했던 타르트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던 때였다. 오빠는 기존 타르트의 데코레이션을 바꾸기 시작하더니 타르트지가지 수제로 만들기 시작했다. 유튜브도 보고, 레시피를 찾아서 방법을 바꿔가며 방법을 찾았다. 금새 타르트 라인업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수제 타르트가 대박이 났다. 카페는 타르트 전문점으로 입소문이 났다. 드디어 자리를 잡은 것이다.
물론 이후에도 문제는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왔다. 주문은 늘었지만 창고가 좁아서 타르트 생산량을 늘리기 어려웠고, 냉장고는 공간이 부족했다. 갑자기 바닥에서 물이 새기도 하고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무섭다는 컴플레인은 오픈초부터 계속 들어왔다. 아르바이트생은 무단으로 결근하거나 갑자기 그만두기도 했고, 주변에는 새로운 카페들은 10개가 넘게 생겼다. 카페를 오픈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카페들에 묻혀 잊혀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됐다. 권리금만 받고 팔고 나가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믿고 의지할 사람들이 없었다면 2년이 넘도록 운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 명이 전부 카페에 나가지 않아도 든든하게 매니저 역할을 해주고있는 재현오빠와,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저녁에는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 그리고 뭐든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스트레스는 3분의 1로 나누고, 좋은 일은 3배로 기뻐하면서 말이다.
장사의 포인트는 행동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발품을 파는 만큼 성장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만히 앉아서 적당한 원두를 선택하고, 크루아상으로만 가게를 이어나갔다면 적자로 지금까지 운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항상 개선할 점은 없는지 생각해야 한다. 주변의 상권의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다른 가게에서 어떤 메뉴를 파는지, 가격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도 촉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흐름을 탈 수 있다.
강인한 정신력도 필요하다. 초기에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매출이 늘지 않는다. 6개월 이상 수익이 없을 수도 있다. 아르바이트생을 쓰지 못하면 하루 8시간 이상을 사장이 직접 일해야 한다. 좁은 공간에만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중에는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 8시간씩 카페에서 일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체력적인 것보다 가게가 잘 안되고 있다는 스트레스였다. 그 시간들을 견뎌낼 정신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렇게 카페를 창업했다. 전액 대출을 받아 투자했고, 2년 동안 원금의 반 이상을 회수했다. 카페를 창업하며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25살에 가게를 3개나 차린 다른 가게 사장님도 만났고, 매출이 떨어져 공들여 오픈한 가게문을 닫는 가게 사장님도 만났다. 나이가 많아서, 경험이 많아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었다. 누가 더 발품을 팔고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장사는 실전이다.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회사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5년이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직원의 눈으로만 회사를 바라봤다. 운영자가 되어보니 회사도 사장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아르바이트 생을 포함해 5명인 카페를 운영하는 것도 이렇게 문제가 많이 일어나는데, 몇 백, 몇 천 명이 넘는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시스템을 만들고, 발전시키고, 한 명 한 명이 맡은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물론 급여를 제때 주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는 것도 말이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들을 얻었다. 2년 동안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이런 생각의 변화가 아닐까. 그리고 카페를 운영하면서 한가지는 영원히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