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메라>는 주인공 아르투를 중심으로 죽은 사람의 부장품을 팔아서 이윤을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르투에게는 어디에 귀한 보물이 묻혀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아르투와 함께 다니는 패거리인 톰바롤리는 이를 두고 ‘키메라’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표현한다. 영화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이렇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내용이 있다. 바로 아르투에게는 잃어버린 여인, 배니아미나가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첫 번째 장면도 아르투가 배니아미나를 향해 “당신이구나. 내가 잃어버린 여인의 얼굴.”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아르투가 꾼 꿈의 일부 같기도 하다. 배니아미나가 영화에 등장할 때마다 아르투가 잠들어 있는 모습이 선행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첫 번째 장면 이후 잠에서 깬 아르투에게 역무원이 건넨 첫 번째 말은 “손님, 꿈을 꾸고 계셨나요?”이다. 하지만 아르투는 한 번도 배니아미나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배니아미나의 엄마를 주기적으로 찾아가 시간을 보내며 그녀를 여전히 찾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배니아미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배니아미나의 모습을 등장시키고 있다. 특히 배니아미나의 자매들이 그녀의 엄마에게 “그 애는 이제 안 와요.”라고 말한 바로 다음 장면에서 배니아미나의 모습이 또다시 등장한다. 이때 배니아미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배니아미나의 모습은 영화에서 그녀의 존재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때문에, ‘배니아미나는 정말 죽은 존재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아르투는 신성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다른 도둑들처럼 무덤을 파내는 일에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태도가 달라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이탈리아와 함께 축제에서 놀다 근처 무덤에서 신전을 발견하면서이다. 이때 이탈리아는 아르투와 패거리들이 무덤을 파서 부장품을 찾으려 하자 “그건 인간이 보라고 만든 게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그들과 대조적인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톰바롤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탈리아를 쫓아낸 후 무덤을 판다. 그런데 그곳은 이전까지 그들이 파내던 무덤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다. 수많은 조각품들이 있고, 정중앙에는 여신상처럼 보이는 ‘키벨라’가 서 있다. 이를 본 다른 도둑들은 부자가 될 생각에 흥분하지만, 아르투는 다른 무언가에 압도된 것처럼 보인다. 특히 도둑들이 조각품의 머리를 잘라내자 크게 화를 내며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치기도 한다. 톰바롤리는 결국 다른 패거리들의 방해로 키벨라의 머리만 들고 신전에서 빠져나온다. 아르투는 도망쳐 나와서도 한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인다. 신전에서 그가 본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아르투에게 신전에 있던 물건들은 단순히 돈이 되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후 톰바롤리는 밀수업자인 스파르타코에게 키벨라의 얼굴을 팔아넘길 생각으로 찾아간다. 하지만 아르투는 키벨라의 머리가 마치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여인의 얼굴인 양 소중히 어루만진다. 그리고 “인간이 보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야.”라고 나지막이 속삭이며 키벨라를 바다 깊은 곳으로 던진다. 이때 키벨라의 얼굴이 배니아미나와 닮아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아르투는 무덤을 파내며 단순히 돈이 될 물건을 찾고 있던 것이 아니다. 스파르타코가 그에게 말했던 것처럼, 누더기를 입고 있어도 신성한 것을 볼 줄 아는 그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아르투는 무덤을 파내며 신성한 것을 찾고 있었고, 그 끝에 발견한 것은 자신이 잃어버린 여인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배니아미나와 닮은 키벨라의 얼굴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 그녀가 죽은 존재가 아님이 증명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야 한다. 아르투는 키벨라의 머리를 던진 일을 계기로 무리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스파르타코에게 아르투에 대해 듣게 된 다른 도굴꾼들이 그를 찾아와 또다른 무덤으로 불러낸다. 그곳은 이미 어떤 부랑자가 황금을 발견한 곳이다. 이때 도굴꾼들은 황금을 보며 “황금 태양”이라고 말한다. ‘태양’은 분명 이전에도 언급된 적이 있는 단어다. 영화의 첫 번째 장면에서 배니아미나는 아르투에게 “태양이 우리를 따라오는 거 알아? 따라오고 있어.”라고 말한다. 이제 곧 배니아미나와 아르투의 만남이 이루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다. 곧이어 아르투는 동그랗게 물이 고여 있는 곳을 가리키며 바로 그곳에 보물이 있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도굴꾼들은 그에게 직접 밑으로 내려가 보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그가 땅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입구가 흙으로 뒤덮이며 더 이상 땅 위로 올라갈 길을 잃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쪽에서 빛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배니아미나의 붉은 실이 내려와 있다. 배니아미나와 아르투는 함께 붉은 실을 잡아당긴다. 곧 실은 끊어지고, 배니아미나의 앞에 아르투가 등장한다. 그가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와의 연결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그녀와의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배니아미나는 살아있다. 다만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아르투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 역시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사라져야 한다. 마치 키벨라의 얼굴이 바다 깊은 곳에 잠긴 것과 마찬가지로.
수장품은 본래 땅속 깊은 곳에 묻혀 있어야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르투와 배니아미나의 사랑 역시 인간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성립된다. 이와 같은 논리는 매우 낯설다. 숨김으로써 생성되는 의미, 감춤으로써 완성되는 사랑이라니. 하지만 본질은 타인의 시선으로 결정되지 않음을 상기할 때, 소중한 것을 숨기려 했던 이들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어떠한 대상이든 인간의 손길, 혹은 눈길이 닿으면 빛이 바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키메라>가 아르투, 그의 잃어버린 여인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신성한 것을 지키고자 하던 이들의 가치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