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성인이 된 에스테레야의 나레이션과 함께 시작된다. 10대의 에스테레야는 엄마가 아빠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에 눈을 뜬다. 창으로 서서히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에스테레야는 베개 밑에서 아빠의 진자를 발견한다. 그와 동시에 에스테레야는 아빠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유년기의 주인공이 아빠의 부재를 직감했다는 사실을 성인이 된 인물의 목소리가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레이션을 통해 드러나는 인물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지만, 마지막 장면에서까지 나레이션은 지속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남쪽>의 모든 이야기를 과거 시점으로 만든다. 이로써 <남쪽>의 상당 부분이 주인공의 기억에 기반하여 서술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 이 영화는 주인공의 유년 시절에 대한 객관적 사실의 나열이 아닌 ‘기억’에 기반한 회상으로 만들어졌음이 중요하다.
또한 이 영화는 마치 인간의 본질은 기억하는 것에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 속 두 인물인 에스테레야와 그의 아빠 어구스틴은 모두 어떠한 대상을 기억하고 있다. 에스테레야는 어구스틴을, 어구스틴은 이레네 리오스를 기억한다. 또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남쪽은 그곳을 고향으로 둔 어구스틴 뿐만 아니라 에스테레야에게도 중요한 장소로 영화에 자리잡고 있다. 남쪽을 경험하지 못한 에스테레야에게 그곳은 상상의 공간이지만, 그곳을 떠나온 어구스틴에게는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고향이다. 하지만 <남쪽>에서 인물들이 기억하는 모든 것의 실체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무엇보다 이 영화의 시점과 관련되어 있다. 성인이 된 에스테레야의 나레이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남쪽>은 전지적인 관점이 아닌, 1인칭의 관점에서 대부분이 서술되어 있다. 우리가 시간이 지나 과거를 회상할 때 그것이 진실인지, 혹은 내가 상상한 세계인지 헷갈리는 것처럼 이 영화는 과거에 대한 명확한 진실을 설명해 주기보다는 기억이 근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모호한 특성을 온몸으로 껴안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기억을 소재로 한 영화가 대개 그렇듯이, 주인공이 과거의 겪은 일이 진실인지, 허구인지 헷갈려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남쪽>에서 인물들이 기억하는 것의 실체를 정확히 보여주지 않는 이유는, 과거의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떠한 대상을 기억하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스테레야가 아빠의 부재를 직감하는 첫 번째 장면을 지나, 바로 다음 장면에서 에스테레야를 임신했을 당시 엄마와 아빠가 침대에 함께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때 아빠는 아내가 임신한 아이가 딸임을 직감하고, 아이에게 ‘에스테레야’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언뜻 보면 회상처럼 보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이 장면이 성인이 된 에스테레야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상기할 때 이 장면은 회상이 될 수 없다. 그보다는 주인공이 주관적으로 상상해낸 부모에 대한 모습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남쪽>이 객관적 사실을 기록해 내는 데에는 관심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이 영화는 인물들이 지나온 과거에 대해 회상하면서도, 과거의 진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보다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성인이 된 에스테레야는 유년시절에 보았던 아빠의 모습을 기억한다. 아빠 어구스틴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이자 진자를 통해 수맥을 짚어내는 일을 하고있다. 아빠에 대한 에스테레야의 인상은 ‘이레네 리오스’라는 존재를 알게 된 이후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또한 아빠의 비밀을 통해 에스테레야 역시 변화한다. 에스테레야는 아빠의 노트에서 이레네 리오스가 반복적으로 적혀 있음을 확인하고, 엄마에게 그의 존재에 대해 묻는다. 하지만 엄마가 그를 알지 못하는 반응을 보이자 침묵함으로써 자신 역시 아빠의 은밀한 공범자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비밀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그의 비밀을 숨김으로써 자신 역시 이전과 달라졌음을 자각한 것이다. 아빠의 비밀을 알게 된 에스테레야는 그 이후부터 아빠를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지켜본다. 하지만 아빠는 한번도 에스테레야가 갖고 있는 여러 의문을 명확하게 해소해 주지 않는다. 심지어 청소년이 된 에스테레야가 아빠에게 처음으로 이레네 리오스의 존재에 대해 묻자, 아빠는 이에 대해 얼버무리더니 바로 다음 장면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마치 회화처럼 표현된 아빠의 죽음 역시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이른 새벽처럼 보이는 푸르스름한 강가 옆에 총을 두고 쓰러진 아빠와, 그의 자전거가 보일 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아빠가 자살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영화에서는 한번도 그가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설명해 주지 않으며, 에스테레야 역시 이에 대해 알 수 없다. 에스테레야에게 어구스틴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첫 번째 대상이면서, 그와 동시에 영원한 침묵 속으로 사라져버린 타인인 것이다.
한편, 어구스틴은 이레네 리오스를 기억한다. 영화에서는 한 번도 그녀의 모습이 실제로 등장하지 않지만, 에스테레야가 짐작하듯 관객들 역시 극장에 걸린 영화를 통해 그녀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영화 속 어구스틴은 그녀에게 편지를 쓰고, 이에 답장을 받으며 이레네 리오스가 실존하는 인물임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이는 관객들이 받은 정보일 뿐 주인공인 에스테레야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어린 에스테레야가 이레네 리오스가 출연한 작품을 보고 나오는 어구스틴을 카페로 따라갔을 때 어구스틴은 이레네 리오스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관객인 우리는 그 편지의 내용을 볼 수 있지만, 에스테레야는 창문 너머에 있었으므로 그 내용을 볼 수 없다. 또한 얼마 뒤 어구스틴은 그녀에게 답장을 받는다. 그 내용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에스테레야는 이 편지의 내용 역시 알지 못한다. 이처럼 <남쪽>에서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성인이 된 에스테레야는 기억 속 몇가지 장면을 가지고 자신의 유년시절 아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테레야가 기억하는 어구스틴은 본질적으로 완벽하게 재현해낼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어째서 <남쪽>은 에스테레야에게 명확한 진실 대신 끝없는 질문만 제시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이미 과거가 된 대상의 완벽한 복기는 불가능한 과제라는 점을 먼저 밝혀야겠다. 인간은 과거의 사건이나 대상을 똑같이 재현해낼 수 없다. 이미 떠나간 사람, 소멸된 장면은 기억하는 사람이 살아있는 한에서는 재현될 수 있지만, 이 역시 완전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지나간 순간들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길 뿐이다. <남쪽>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장면이 이 영화에 있다. 바로 에스테레야와 어구스틴의 마지막 식사 장면이다. 어구스틴은 호텔에서 에스테레야에게 점심을 사주며 유독 그 시간이 흐르는 것을 아쉬워한다. 어구스틴은 자신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고 말한다. 에스테레야는 그제서야 지난 몇년간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 이레네 리오스에 대해 묻는다. 하지만 어구스틴은 그녀에 대해 정확히 답하지 못하고 자리를 뜬다. 그는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고 레스토랑으로 돌아온다. 그때 레스토랑에서 익숙한 음악이 들려온다. 레스토랑 옆 연회장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는데, 신랑, 신부가 함께 ‘파소 도블레’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며 두 인물과 관객은 같은 장면을 복기한다. 에스테레야의 첫 영성체 날 두 사람이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던 장면이다. 그날 에스테레야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얼굴로 아빠와 함께 춤을 추었다. 하지만 다시 이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잠시 음악에 잠긴 에스테레야는 곧이어 자신을 붙잡는 아빠를 홀로 남겨두고 레스토랑에서 벗어난다. 이 다음 장면에서 어구스틴은 강둑에서 홀로 쓰러져 있다. 장면 위로 성인이 된 주인공의 나레이션이 입혀진다. 아빠에게 그 당시 그것보다 더 잘해드릴 수 있었는지, 늘 자문해본다는 내용이다. 두 사람이 다시는 에스테레야의 첫 영성체날 파소 도블레에 맞춰 춤을 추던 그 때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레스토랑에서 마지막 식사도 다시는 재현될 수 없는 과거가 되었음을 에스테레야의 목소리가 더욱 상기시켜 준다.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다. 하지만 기억을 통한 과거의 완벽한 재현은 불가능하다. 그 대상을 기억하고 있는 나의 관점과, 때로는 과거를 기억하는 현재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그 기억들이 모여 ‘나’를 구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태도는 내가 정확히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해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어구스틴의 죽음 이후 실의에 빠진 에스테레야는 아빠의 고향인 남쪽으로 요양을 떠나게 된다. 이때 에스트레야는 아빠가 마지막날 밤 남쪽으로 전화를 걸었던 전화 영수증을 발견한다. 에스테레야는 그 종이를 손에 쥐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다만 그에 대한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갖고, 그의 고향을 찾기 위해 짐을 쌀 뿐이다. 이후 에스테레야가 남쪽을 방문했을 때의 뒷 이야기는 찍히지 않았기에 영원히 알 수 없는 진실이 되었다. 이후 에스테레야가 남쪽에서 진실을 발견했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더이상 <남쪽>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쉬이 답할 수 없는 문제를 내 안에 그대로 가지고 떠나간 대상에 대해 복기하고자 애쓰는 남아있는 자의 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