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여성의 가난한 삶 혹은 가난한 여성의 글쓰기. 이 영화를 보다보면 자연스레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떠오른다.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난한 주인공은 '방랑기'라는 작품이 성공하기 전까지 늘 누군가와 함께 쓰는 자그마한 방 안에서 글을 쓴다. 어머니와 같이 사는 방, 남자와 같이 사는 방, 술집에 마련된 작은 방, 때로는 이름 모를 낯선 이들과 함께 자는 방에서 글을 쓴다. 주인공에게 글쓰기는 하나의 투쟁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이 이게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투쟁. 나에게는 분명 다른 삶이 있을 것이라는 투쟁. 이 작품은 주인공의 가난을 특별히 감추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돈과 예술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나루세 미키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 배우는 주로 시련을 겪는 여성,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여성의 삶을 주로 연기한다. 인상적인 점은 매 작품마다 다른 얼굴로 등장한다는 것인데 이 영화에서는 늘상 뾰루퉁한 얼굴로 등장한다.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얼굴이다. 무엇보다 주인공은 자신이 원하는 바에 충실하다. 돈이 많고 안정적인 남자보다는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고, 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글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녀의 시를 놓고 쓰레기가 가득 든 쓰레기통을 그대로 열어보이는 것 같다고 표현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그녀가 쓰는 작품의 가치일 것이다.
주인공에게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 술집에서 진상을 부리는 손님에게 개새끼라고 욕하는 얼굴, 남자에게 받은 상처를 잊기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얼굴, 자그마한 책상 앞에서 싸우듯 글을 쓰는 얼굴까지. 그녀는 가난하고, 남자를 좋아하고, 생계를 위해 술집에서 일하고, 동료 작가를 질투한다. 그러면서도 작가로 성공한다.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했던 순간들까지 모두 그녀의 삶이다. 글 쓰는 여성의 삶이 우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후미코가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세상에 메롱하며 글쓰기를 멈추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