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탈리아 여행" (1954)

by 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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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인 캐서린과 알렉스는 저택을 팔기 위해 이탈리아에 방문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집을 팔기 위해 행하는 어떠한 노력도 보여주지 않고, 다만 계속해서 어긋나는 두 사람의 관계만을 보여준다. 알렉스는 주로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 싶어 하고 특히 우연히 만난 지인 줄리와 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한편 캐서린은 박물관이나 유적지 등을 방문하기를 원한다. 또한 알렉스에게 줄리라는 존재가 있다면 캐서린에게는 자신을 좋아했던, 몇 년 전 죽은 시인이 있다. 알렉스와 캐서린은 질투인지 단순한 미움인지 모를 말들을 서로에게 내뱉으며 상처를 준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후로 두 사람은 거의 함께하지 않고 각자의 일정을 소화한다.


캐서린은 알렉스가 줄리가 있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카프리에 간 동안 박물관, 화산온천, 지하묘지 등을 방문한다. 그곳들에서 캐서린의 얼굴은 낯선 것을 맞닥드리는 듯 혼란스럽고 때로는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다. 하지만 캐서린이 이탈리아에서 느끼는 낯섦은 비단 박물관에 전시된 조각물이나 지하묘지에서 본 해골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믿었던 남편에게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초반부터 캐서린과 알렉스는 가벼운 말다툼을 하곤 하는데, 이때 이탈리아로의 여행이 결혼 후 처음으로 갖는 두 사람만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캐서린은 알렉스에게 "처음으로 서로가 얼마나 낯선 존재인지 느끼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이는 알렉스가 캐서린에게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카프리에서 알렉스가 돌아온 이후 두 사람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하고 결국 알렉스는 캐서린에게 이혼을 말한다. 그 직전 캐서린이 보고 온 것은 폰타넬리의 지하묘지에 있던 오래된 해골들이다. 묘지에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수많은 해골이 전시돼 있다. 캐서린이 느끼는 혼란스러움은 점차 증폭되고 있다. 그리고 저택으로 다시 돌아가자마자 알렉스와 죽은 시인의 일로 또다시 말다툼을 벌이고 결국 이혼 얘기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알렉스가 이혼하자고 말하자마자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두 사람을 도와주었던 버튼이 지금 당장 폼페이로 가자고 말한다. 그곳에서 사람과 함께 굳어진 용암의 빈틈에 석고를 부어 그 모습을 재연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은 하는 수 없이 그를 따라간다.


폼페이에서 발견된 유적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이를 본 캐서린은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런데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또 한 번의 카오스가 남았다. 가톨릭 축제로 거리가 사람들로 꽉 차서 두 사람이 탄 차가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다. 두 사람은 결국 차 밖으로 나가 인파 속으로 들어간다. 그때 캐서린은 애원하듯 이혼을 다시 생각해 보자고 말한다. 하지만 알렉스는 이를 거절하고, 다시 차로 들어가려는 순간 캐서린이 사람들 틈에 휩쓸려 알렉스와 반대 방향으로 끌려간다. 캐서린은 알렉스의 이름을 다급하게 외친다. 극적으로 알렉스가 캐서린을 붙잡고 두 사람은 서로를 안는다. 캐서린은 알렉스에게 사랑을 갈구한다.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면 그녀도 자신을 사랑해줄 것이라는 확답을 받고서야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때의 고백은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 비로소 발화될 수 있는 진심이다.


영화 속 캐서린이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은 낯선 도시에서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의 낯선 얼굴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 얼굴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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