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의 집으로 돌아왔다. 붉은 우산을 씌어 준 그녀가 나를 데리고 왔다. 나는 욕실에서 몸을 씻은 후에 그녀가 준 옷을 입었다. 옷에서 수진의 향이 났다. 방으로 나오자 그녀는 침대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며 고개도 들지 못한 채로 힘없이 바닥에 앉았다. 탁자만을 내려다보았다. 가슴 한 편이 아파왔다. 왼쪽 가슴 가장 안쪽에서 저미는 통증이 짧게 올랐다가 쇄골 근처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가슴께가 먹먹해지더니 피로가 몰려왔다. 방은 조용했다. 그녀와 나 사이를 빗소리만이 채웠다. 오랫동안 우리는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네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너도 내가 필요해.”
잠시 빗소리가 도드라졌다.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뗐다. “아마도.”
“여기서 나랑 같이 있자. 우리는 서로를 떠날 수 없어. 우리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았어.”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녀를 보았다. 그녀가 누구든 이미 내게서 떠났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중얼거렸다.
“무엇을 해야 되지……?”
“생각나는 무엇이든 말하면 돼. 숨기지 말고. 서로 그걸 듣고 다시 말하고, 묻기도 하고 다시 듣고 말하고. 말하기 힘든 건 말하지 않아도 돼. 말할 수 없다는 것 그 자체가 힘든 일이니까. 그걸 인정해야 돼.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말하는 거야.”
하얀 카페에서 수진도 내게 비슷한 것을 요구했었다, 그때도.
“진실게임 같은 건가.”
“비슷해.”
“언제까지?”
“그건 모르지만 실제로 그 끝에 가면 말하지 않아도 아마 알 수 있을 거야. 그곳이 끝이라는 걸.”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누구와 말을 주고받고 있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먼저 말할게.” 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영수야, 나를 봐.” 나는 그 목소리를 따라 억지로 눈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얼굴은 수진의 것을 닮아 있었다.
“수진이는 정말 예쁜 아이였어. 나와 똑같이 생겼어도, 수진이는 나보다 더 예뻤어. 나만 있을 때랑은 다르게 수진이가 집에 오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어. 때로는 엉뚱하고, 때로는 진지한 아이였어. 그런 모습을 모두 좋아했어. 부모님도 좋아했고, 친구들도 좋아했어. 고등학교까지 수진이랑 나는 같은 학교를 다녔거든.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지만, 어울리는 친구들은 항상 같았어.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가끔 수진이를 질투한 적도 있어. 다들 나보다 수진이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수진이가 오자마자 뭔가 친구들의 표정이 달리지는 거야. 나는 그걸 애써 못 본 척 했어. 그게 수진이 때문이지, 나 때문은 아니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차이가 거슬리기 시작했어. 그래서 나도 노력했어. 내가 노력하면 할수록 나도 모르게 수진이처럼 행동하고 있었어.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수진이의 모습을 흉내 내는 꼴이었어.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 수진이는 좋은 사람이니까. 마치 수진이처럼 되어 보려고 했어. 쉽지 않더라고. 당연하지. 어떻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겠어. 똑같이 생겼어도 절대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야.”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힘겹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녀의 입술이 어떤 단어를 내뱉으려는 것처럼 오물거리기만 하다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수진이의 친구는 내 친구이기도 했어. 처음에는 수진이랑 나를 구분하지 못했는데, 아주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정확히 우리를 구분하는 거야. 친구들한테 물어본 적도 있어. 똑같이 생겼는데,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럼 다 그랬어.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데, 우리 둘은 분명 다르대. 쉽게 알 수 있다는 거야. 한 번은 내가 친구들한테 수진이 흉내를 냈어. 수진이를 따라하는 건 꽤나 쉬운 일이니까. 내 연기에 다들 속았는지, 나를 수진이라고 생각하더라고. 그런데 친구들이 내 흉을 보기 시작하는 거야. 재수 없다 그러더라고. 친구들이 나를 정말로 수진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내가 수빈이라는 걸 알고 그랬는지 알 수가 없었어. 내가 시작한 장난을 내가 멈출 수도 없었고. 나는 그저 듣고만 있었어. 친구들의 흉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어. 그냥 어렸을 때 별로인 친구 말하는 정도. 그런데 수진인 척 연기하면서 내 욕을 듣고 있으니까, 정말 그게 이상한 거야.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사실 수빈이라고 갑자기 밝힐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같이 욕을 할 수도 없고 말이야. 나는 그냥 조용히 내 욕을 듣기만 했지. 그들의 얼굴을 살피면서.”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는 바람에 빗소리가 도드라졌다. 마치 빗소리가 그녀의 말을 잇는 듯했다. 깊고 긴 한숨 소리가 한 차례 들렸다.
“나 혼자서는 거뜬히 살아갈 수 있는데, 내 곁에 누가 들어오는 순간 부족한 느낌인거야. 나 혼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누군가 나의 삶에 들어오면 바로 초라한 기분. 설령 그 사람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야. 그런 거, 경험해 본 적 없어? 수진이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어. 하지만 탓할 수 없었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그토록 어여쁜 동생에게…….”
나는 더 이상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우리의 시선이 흩어졌다.
“영수야, 너에게 수진이는 어떤 사람이었어?”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수진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나를 지켜볼 뿐이었다. 눈을 뜬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요구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매순간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기다리고 그대로 흘려보내는 듯했다. 나는 수시로 그녀의 눈동자를 피했지만, 결국 되돌아와 눈을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나의 시선을 은근히 잡아끌었다. 아주 천천히 나를 기다렸다.
아주 긴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빗소리가 멎어 집은 고요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묵음의 시선이 나를 건드렸다. 서로의 호흡소리가 나를 부추겼다. 내게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를 보는 사람. 내 상처까지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수진이 말고는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 앞으로도 없을 거야.”
이상하게 숨이 가빴다. 나는 다시 입술을 닫았다. 호흡이 차분해지기를 기다리다가 겨우 말을 붙였다.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아. 수진이가 죽었다는 게.”
“수진이는 죽었어.”
지금까지 수진을 만난 순간들이 경계를 허물고 복잡하게 떠올랐다. 어떤 지점도 정확히 짚을 수 없었다. 모두 가능성이 있었고, 모두 가능성이 없었다. 언제나 그녀인 것 같았고, 모두가 그녀가 아닌 것도 같았다. 그 곁에 항상 내가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하지만 수진은 죽었다.
“왜 죽었어?”
“자살했어. 목을 매서.”
시선이 방 이곳저곳을 방황했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다가 양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눈물이 눈앞에 맺혔다. 악착같이 참아냈다.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 내 눈물을 강한 것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단지 내가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 드러내는 꼴이었다. 나는 얼굴을 부비며 눈물을 몰래 닦고 다시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담담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그녀가 말했다.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마. 네 잘못은 없어.”
“모르겠어. 내 잘못도 있는 것 같아.”
“잘못이 있다면 내게 있어. 나는 매일같이 얘기를 하면서도, 수진이가 죽을 만큼 힘들어하는지 몰랐어. 수진이가 죽고 나서 미치도록 괴로웠어. 내가 수진이를 살릴 수도 있지는 않았을지, 그 여지가 나를 너무 힘들게 해. 내가 수진이를 구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그러면서 말이야. 수진이가 죽은 후에는 자꾸 악몽을 꿔. 꿈속에서 내가 수진이의 목을 졸라. 그런데 수진이의 표정은 변함이 없어. 내가 목을 아무리 비끄러매어도 온화한 미소로 나를 보고만 있어. 그걸 마치 받아들이듯이.”
“나는 몰랐어. 수진이가 그토록 힘들어하는 줄. 수진이를 그렇게 힘들게 만든 게 도대체 뭐야.”
“나도 몰라. 유서도 없었어. 그냥 세상을 떠난 거야. 한마디 말도 없이.” 그녀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수진이는 대학에 가자마자 나가서 살고 싶다고 했어. 나는 부모님과 살기를 원했고. 서로 성향이 조금 달랐던 거지. 수진이는 여기 원룸을 구해서 계속 혼자 살았어. 우리는 매일 연락은 했지만, 잘 만나지는 않았어. 수진이도 나를 여기로 부르지도 않았고, 나도 일부러 찾지 않았어. 그런데 어느 날 집으로 오라는 거야. 비밀번호까지 알려주고. 그날 여기에 왔을 때, 수진이는 죽어 있었어. 여기 위에.” 그녀는 고개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나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 죽어 있었어. 그날 나의 어떤 부분이 죽은 건 아닐까 의심스러울 만큼 나도 뭔가 달라졌어.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아. 수진이뿐만 아니라 아주 중요한 다른 뭔가를 말이야.”
그녀는 숨을 길게 내쉬고 말을 이었다. “수진이가 아니라 내가 죽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악몽도 그렇잖아. 누가 누구의 목을 조르는지 알 수 없으니까. 이 꿈이 수진이의 꿈이면 내 목이 졸리는 거지. 왜 내가 아니고 수진이가 죽어야 했을까. 내가 대신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수진이를 살리지도 못했으면서 악착같이 나는 살아가는 거야. 가끔은 내 자신이 아주 진절머리가 나.”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을 뗄 수가 없어 침묵했다.
“수진이랑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연결되어 있었어.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말이야. 우리는 원래 하나였는데, 둘이 된 거야. 서로가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가면서 서로를 잃은 거야. 탯줄이 잘리기 전에 우리는 서로 잘렸어. 하지만 나는 수진이와 계속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수진이가 죽고 나서야 알게 된 거야. 내가 수진이를 알고 있다는 건, 다 착각이고 오만이었어. 난 진짜 수진이를 들여다볼 생각도 안했던 거야. 제대로 보지도 묻지도 않았던 거야. 난 죄인이야. 내가 왜 수진이와 쌍둥이로 태어났을지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었어. 왜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한 명 더 세상에 만들었을까. 그런 생각들마저 수진이가 죽은 후에는 다 세세한 죄목인 거야. 난 그냥 물은 거였어. 나쁜 마음은 하나도 없었어. 때론 질투하기도 했지만, 그게 그렇게 잘못인 거야?”
나의 긴 한숨을 대답을 들은 듯 그녀는 말을 이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난 아무 잘못도 없는데, 도대체 왜.” 그녀의 눈망울에 눈물이 고였다. 흐르기 전에 그녀는 소매로 얼른 닦아냈다.“왜 수진이를 데리고 가신 거야. 왜 나는 남겨두시고.”
원래는 하나였던 둘, 결국 둘 중의 남은 하나. 나는 언제부터 수진이 아니었는지 묻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두는 일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이 복잡하고 기이한 문제 속에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영수라는 한 인물이라는 예감이 진득하게 스쳤다. 그랬다. 나는 언제나 수진을 만났다. 수진과 대화했고, 수진을 사랑했다.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했다. 하지만 수진은 죽었다. 영수는 안됐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한영수의 삶을 생각했다. 찢어진 풍선 조각을 내려다보는 그, 술 취한 아버지 앞의 그, 수진을 떠나보낸 그. 감당할 수 없는 상처 속의 그. 한영수는 한영수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고, 내가 나라는 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수빈이 수빈이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듯이.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럴 필요가 없었다. 모두 자기 자리를 찾은 것처럼 자명한 일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애초에 태어나면서 둘 중 하나는 거기서 죽어야만 했을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한 명은 태어나지 말아야 했을지도 모르지. 그게 나였을 수도 있고. 왜 내가 아니라 수진이어야 했던 거지. 수진이가 이 세상에 남는 게 더 좋은 일이 분명한데. 차라리 내가 죽었어야 해."
“그런 생각하지 마.”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내가 죽고 수진이가 이 세상에 살아 있어야 했다고 생각하잖아. 그게 너에게 더 좋은 일이니까.”
“아니, 이제는 그런 생각 안 해.”
“거짓말. 너는 이미 그렇게 생각 했어. 단지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체념한 것뿐이야. 엄마 아빠도 똑같아. 나를 보는 그 눈빛이 다 똑같아.” 그녀의 눈길이 내 얼굴 위에서 방황하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미안해. 다 내 탓이야.”
“아니. 내 탓도 있어. 그것도 아주 많아. 그때의 나는 상처받은 채로 어느 누구도 제대로 보지 못했어. 오직 내 생각만 했어. 머리가 터지도록 내 생각만……”
비가 다시 내리는 듯했다. 빗소리가 들렸고, 그녀의 울음은 오래 이어졌다. 누구든 많은 눈물을 흘려야했다. 모조리 다 쏟아내고, 울어 버리면 다 좋아질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더 이상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나는 다리를 구부려 양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는 방의 천정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