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강의는 전공과목을 주로 듣고, 교양과목은 필수적인 것만 택했다. 그 이외의 수업은 추가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강의를 들을 예정이었다. 수강하는 강의가 많든 적든 학교에 내는 돈은 같았다. 예상한 대로 2학기 장학금은 없었다. 등록금을 전부 빌려 납부했고, 생활비도 대출했다.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받으려는 시도는 포기했다. 애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사실 장학금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요구에 불과했다.
나는 돈을 더 벌기 위해 과외를 구하기 시작했다. 학과 사무실 앞 게시판에 자주 기웃거리며 과외를 요청한 학생들의 목록을 확인했다. 학교 근처에서 과외 두 개를 더 구했다. 둘 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마지못해 공부를 하는 건 똑같았다. 인사는 밝게 했지만, 공부를 시작하면 풀이 죽고 집중을 잘 못했다.
과외를 늘려도 시간이 꽤 남았다. 그녀를 만나러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할 일이 없었다. 소설을 읽고 싶지도 않았고, 혼자서 돌아다니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비는 시간에는 도서관에 올라가 전공 공부를 했다. 문제를 풀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풀리지 않는 명제를 오래도록 붙들었다. 성적을 올리려는 목적은 아니었고, 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명제만을 관찰하는 행위였다. 내가 수학의 명제를 증명해낸다면 우연이었다. 오랜 응시의 작은 보답일 뿐이었다. 쉽게 풀리지 않는 명제 덕분에 주변의 그 무엇도 자세히 보지 않을 수 있었고 적당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번은 도서관 층계를 내려오다가 빨간색 모자를 쓴 재준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층계참에서 4층 문학서고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부리나케 달려가 불러 세웠다. 하지만 그는 재준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었지, 재준은 아니었다. 그에게 거듭 사과를 하고는 4층을 빠져나왔다.
개학 후에 나는 재준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나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재준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공 필수 수업에 들어가도 재준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출석부에도 없는 것이었다. 연락도 한참이나 오지 않아 먼저 연락을 했다.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나왔다. 재준과 알고 지내던 과 동기들에게 재준에 대해 물었지만, 나보다 재준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어느 곳에서도 재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완전히 사라졌다. 내 잘못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됐다. 홀로 강의를 듣고, 홀로 교정을 걷고, 홀로 학생 식당에서 가장 저렴한 한식을 먹었다. 교정 장치 때문에 매번 이빨이 아팠다.
잊을만하면 치과를 내원하는 날이 다가왔다. 갈 때마다 간호사는 떨어진 브래킷이 없는지 확인했다. 치과의사는 입 속에 손가락을 넣어 이리저리 돌려보고 입을 양쪽으로 찢어보면서 치아를 자세히 살폈다. 충치가 보이기는 하지만 정기적으로 내원하기 때문에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의사는 절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간호사와 대화한 후에 사라졌다. 간호사는 내 옆에 앉아 세밀한 작업을 했다. 와이어를 교체하고 고무줄도 교체했다. 치아를 잡아당기는 힘이 세지고 있었다. 조금만 치아를 건드려도 통증은 상당했다. 치통 때문에 딱딱한 건 입에 대지도 못했다. 먹는 일은 언제나 거슬리고 피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교정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어렵지 않았다. 마주치는 일도 드물었고, 서로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예전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기억 속의 어머니와 눈앞의 어머니는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았던 주름이 눈에 띠었고 예전보다 살이 많이 붙은 듯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를 제대로 응시하지 않았다. 우연이라도 나를 마주할 때 다른 곳을 보며 말했다. 치아 교정기가 발각될까 염려했던 내가 바보였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알지만,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 알 만큼 서로를 살펴보지는 않았다.
나를 가장 관심 어린 눈으로 보는 사람, 내게 질문하는 사람, 심지어 나를 쫓아다니는 사람은 허연 얼굴의 두 여자뿐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역 주변을 서성였다. 내가 등교를 할 때나 하교를 할 때, 과외로 늦게 돌아올 때도 항상 마주쳤다. 마치 나를 기다리는 듯했다. 내가 역 출구로 나와 잠시 인도를 걸으면 어디선가 귀신 같이 나타나 내게 다가왔다. 매번 똑같은 질문을 했다. 대학생. 성경 말씀. 옳고 그름. 족히 나를 삼사십 번은 마주했을 텐데도 매번 나를 새롭게 대했다. 나는 같은 방식으로 매번 거절했다. 이쯤 됐으면 포기할 법한데도 그들은 매일 나를 붙잡고 동일한 질문을 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나의 얼굴을 기억하면서도 일부러 재차 시도하는 줄 알았지만, 그들의 태도를 보면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확실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두 여자는 나뿐만 아니라 대학생처럼 보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을 수십 번 마주했지만, 그들은 나와 같은 대학생을 수백 번 마주했을 것이었다. 그들의 수많은 시도를 생각하자니 집념이 새삼 대단했고, 그들에게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밤낮으로 거리를 배회하며 말을 건네는 그들의 행동의 동기는 도대체 무엇일지 가늠해보아도 적절한 연유를 찾을 수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일깨우려는 것처럼 나에게 질문했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누적된 그들의 언행만을 돌이켜보며, 나는 이해하지 못한 그 무언가를 얼굴이 허연 그들만이 공유하고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