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 수업이었다. 나는 맨 뒤에 앉아 교재를 폈다. 옆자리는 비었고, 예전처럼 혼자였다.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지금까지 평면 위에 삼각형, 사각형, 원을 그려 왔지요. 하지만 우리는 완벽한 평면을 구할 수 없습니다. 완벽한 점도, 선도 그릴 수 없어요. 완벽한 점은 눈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가 말하는 점, 선, 면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이데아에서나 존재하는 대상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그 이데아 정도로 생각하면서 평면으로 가정하고 기하학을 하고 있었습니다. 평면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기하학적 성질들이 모두 만족합니다. 가령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백팔십도라거나, 주어진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면서 그 직선과 평행한 직선은 단 하나 존재한다는 성질들이요.”
교수는 칠판에 수학자의 이름을 쓰고 말을 이었다. “유클리드가 다섯 개의 공리와 다섯 개의 공준으로 삼백 팔십 다섯 개의 명제를 증명했습니다. 처음으로 수학책다운 수학책이었죠. 그런데 그 다섯 개의 공준 중에, 그 이름도 유명한 평행선 공준이 있습니다. 그 공준이 수학자들에게 오랫동안 화두가 되었죠. 다른 공준들과는 달리 내용도 길고, 다소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수학자들은 나머지 공리와 공준 아홉 개로 이 평행선 공준을 증명할 수 있는 건 아닐지 끊임없이 시도했죠. 모두 실패했습니다. 사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요. 우리는 그 덕분에 새로운 기하학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평행선 공준이 성립하는 세상은 완벽한 평면 위입니다. 하지만, 공 위에서 또는 말안장처럼 생긴 곡면 위에서는 우리의 상식을 벗어납니다. 평행선이 무수히 많을 수도 있고, 아예 없을 수도 있죠.”
교수는 칠판에 두 개의 그림을 띄웠다. “예전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평평하다고 믿는 소수의 사람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는 엷게 웃고 말을 이어나갔다. “지구는 구, 공 모양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위에서는 평행선이 없습니다. 선 하나를 구의 중심을 기준으로 무한히 연장하면 원이 됩니다. 그러니까 구 위의 직선은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대원이고, 두 개의 대원은 어디선가 무조건 만나게 됩니다. 지구 위에서는 평행선이 없다는 뜻이죠. 다시 말하면 지구 위에 두 선분을 무한이 연장하면 어디선가 반드시 만납니다. 아주 흥미롭죠. 평면 위에서 옳다고 생각한 성질들의 대부분은 구 위에서는 틀린 것이 됩니다.”
평면에서든, 구에서든, 말안장처럼 생긴 공간에서든, 어디에서 기하학을 하든, 그 일이 내게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완벽한 면이 없다면 완벽한 구도 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완벽하지도 않은 대상을 다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보지도 못하는 것들, 머릿속에서나 겨우 떠올릴 수 있는 것들, 심지어 머리로도 그릴 수 없는 것들을 정의하고 성질을 밝혀내려는 일이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 화면의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완벽하지 않지만, 완벽하다고 믿는 깔끔한 구 하나가 그려져 있었고, 그 구를 반으로 자른 자국처럼 원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 원이 두 개였고, 두 원은 가운데쯤에서 만나고 있었다. 교점이 생겼다.
교수가 말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구입니다. 공 모양이죠. 그래서 지구를 평면으로 옮긴다면 많은 오류가 생기기 시작하죠. 육지의 크기가 본래보다 더 커지기도 하고, 두 점을 잇는 최단거리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죠. 중요한 건, 그 오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모른다면 우리는 그게 오류인지도 모른 채 이해하고 그대로 믿기 시작하니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실 지구 위에서 삽니다. 우리가 어디서 살고 있는지, 그래서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우리는 공부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만을 위해서 수학을 하는 건 아닙니다. 수학자들은 평행선 공준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지점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지금껏 우리는 평면 위에서만 기하학을 하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 말이죠. 그 끝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평면을 넘어섰습니다. 다양한 곡면 위에 설 수 있었죠. 하지만 놀랍게도, 인간이 처음부터 서 있는 곳이 이미 곡면이었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세상과 같은지 의심해보자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터무니없는 것들을 믿으며 평생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죠. 안 그런 가요? 주변을 잘 둘러보세요. 우리는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는 것 태반일 겁니다.”
학생들은 겨우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만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도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교수는 다시 교재로 돌아와 정의를 읽고 명제를 증명해 나갔다. 우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교수에게 죄송하면서도 아무 소용없는 짓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공 모양의 지구 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내용은 아주 중요한 말처럼 들렸다. 예전에도 교수가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았다. 연역과 귀납. 논리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산다면 나는 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교수가 말했듯이 그 지점에서 의심할 수많은 지점, 증명을 기다리는 명제, 생각지도 못한 관점과 태도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논리의 법칙을 토대로 환원시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내가 원하는 건, 그렇게 사는 것이었다. 의심하고 증명하는 것. 보이는 그대로 믿지 않는 것. 이성과 사고의 과정을 따르는 것. 재준과 인영, 수진과 수빈, 군대의 선후임들, 영수와 내가 마주한 타인들이 중요하게 내세웠던 모든 문장과 지론들이 기억 속에서 또렷이 드러나는 듯했다. 틀린 것도 있었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었다. 나의 질문 또한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한 것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의심하며 길을 따라 걸었다. 분명 내가 보고 느끼기에는 세상은 평지였다. 하지만 사실 지구는 곡률이 있는 구였다. 모두가 구의 표면을 걸어 다니는 것이었다. 무엇이 매개하는지도 모를 지구의 중력은 우리를 땅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 힘 때문에 마치 우리가 평지를 걸어 다니는 착각을 일으켰다. 불쑥 수진이 생각났다. 수진이 이 얘기를 좋아할 것 같았다. 기하학 강의에서 들은 평행선의 이야기부터 나의 생각까지 모두 전하고 싶었다. 나는 곧장 지하철을 타고 수진의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은 선로 위를 잘도 달렸다.
수진의 집에는 여전히 그녀가 있었다. 살은 빠졌지만 눈빛은 기운이 도는 듯했다. 마치 수진 같았다. 수빈은 내가 도착하자마자 수진처럼 어린이대공원을 산책하기를 바랐다. 우리는 공원까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원에 도착하자 수빈은 서서히 곁에 붙더니 자연스레 내 손을 잡으려 했다. 나는 슬며시 손을 피했다.
일부러 이름을 호명했다. “수빈아.”
수빈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서 그랬어.”
“알아.”
“근데 손도 못 잡아줘?”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
“미안해.” 우리는 잠시 묵묵히 걸었다. “복학하고 한참 됐는데, 왜 그동안 안 왔어?”
“그냥.”
“수진이가 생각나지 않았어?”
“생각났어.”
“그럼 찾아오지 그랬어.”
“수진이는 거기 없잖아.”
우리는 공원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공원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그럼 오늘은 무슨 일로?”
“수진이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들었어. 수진이한테 말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어서, 어쩌면 내가 말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해서, 그래서 찾아왔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건 좋은 거야. 무슨 얘기?”
나는 강의를 듣고 길을 걸으며 떠오른 생각,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문득 스쳤던 생각까지 모조리 말했다. 수빈은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나는 똑같은 이야기를 거듭 되풀이했다. 분명 수진은 무척 좋아할 텐데, 수빈은 따뜻하지만 흥미를 잃은 눈빛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내용보다 내가 말하는 것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나도 말하고 싶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들어주기를 원했다. 진정으로 듣고 내가 생각지 못한 다른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결국 나는 지친 기분에 휩싸여 말했다. “좀 앉자.”
우리는 나무 아래로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수진이가 이 얘기를 좋아했겠지?”
“응. 좋아했을 것 같아.”
“너는?”
“나? 나도 꽤 재미있었어. 사실 수학 얘기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해할 필요 없어. 자명하잖아. 지구 위에는 평행선이 없다.”
“지구 위에는 평행선이 없다……. 그래도 그런 얘기는 같은 전공인 친구들이 더 잘 이해할 거야. 누구 없어?”
“둘 있는데, 한 명은 취업 준비로 엄청 바쁠 거야.”
“그리고 또 한 명은?”
“또 한 명은…….” 나는 수빈을 슬쩍 보고 말했다. “사라졌어.”
“사라졌다고? 어디로 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몰라. 이번 학기에 갑자기 안 보여. 휴학했나봐. 퇴학했는지도 모르고.”
“말도 없이?”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녀가 물었다. “보고 싶어?”
“글쎄. 그냥 궁금해. 되게 이상한 애거든.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상상이 가질 않아. 나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어떤 일을 벌이고 있을 것 같아서, 그게 궁금해. 걔는 내가 하지 못할 일들만 골라서 하거든.” 나는 화제를 돌려 그녀에게 물었다. “요즘 넌 어때?”
“많이 좋아졌어. 그래도 아직은 부모님에게 나를 보여줄 수는 없어. 나도 이만큼 시간이 필요했고, 너에게 도움을 받고나서야 괜찮아지기 시작한 걸.”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눈을 마주치자 그녀는 당황한 듯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수빈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너는 좀 바뀐 것 같아.”
그녀가 다시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어떻게?”
얼굴을 아주 자세히 살펴보았다. “수진이 같아. 뭔가 좀 더 밝아진 것도 같고.”
“좋은 일이네? 수진이는 좋은 애였으니까.”
“너는 알고 있었어? 네가 바뀐 걸.”
“조금?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건 아니야.”
“그럼?”
“지금 나는 자유로워. 마음껏 나다워질 수 있어.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당연히 수진이도 그랬고. 그런데 수진이는 내가 따라가지 못할 만큼 빠르게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사람이었어. 내가 생각하기에 내 좋은 점은 수진이 앞에서 너무 작은 것들이 되고 말았어. 나는 항상 애매했어. 사람들은 똑같이 생겼다는 이유로 내면도 똑같을 거라고 다들 생각하거든? 그런 눈으로 우리를 봐. 하지만 우리는 달랐지. 수진이는 항상 더 좋은 사람이었어. 나는 덜 좋은 사람이라고 해야 되나? 수진이가 더 좋은 사람이 될수록 나는 거꾸로 나쁜 사람이 되는 셈이지. 언제부턴가 그게 넌더리가 나는 거야. 내가 수진이를 따라하는 기분도 들었고, 그래서 한때는 내가 나쁜 사람이 되기로 결정했어. 수진이와 나를 구분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았어.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야.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나쁜 짓이니까.”
“지금은?”
“지금은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근데 웃기게도 수진이 생각이 많이 나. 그렇다고 마냥 슬프지는 않아. 수진이는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나도 모르게 또 수진이를 모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이 수진과 비슷한 것 같아. 내가 오해했었는지도 모르지.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은 누구에게나 한 가지 방법밖에 없을지도 모르잖아.”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저기, 부탁이 있어.” 그녀가 나를 힐금 보고는 시선을 피했다. “나를 보러 좀 더 자주 와주면 안 될까? 아직은 네가 필요한 것 같아.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없고 나서야 알게 됐어. 나는 아직 힘든 것 같아. 끝이 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나 봐.”
“학기 중이니까 가능할지 모르겠어. 시간 봐서.”
“고마워.” 그녀가 나를 보는 것 같았지만, 나는 보지 않았다. “너는 이제 괜찮아?”
“뭐가?”
“뭐든지.”
“모르겠어. 뭐가 괜찮은 거고, 뭐가 괜찮지 않은 건지. 그냥 예전이랑 비슷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런 상태였어. 다 그대로야. 단지…….”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삼켰다. 우리는 공원의 정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세상은 넓었다. 그 속에 많은 것이 있었다. 하늘과, 땅, 잔디밭, 나무, 건물, 길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사람이 가장 많이 보였다. 모두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영수야, 너는 많이 바뀐 것 같아.”
“어디가?”
“음…… 정확히 말하기는 힘들어.”
그 이유가 네가 수진이 아니라 수빈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그마저도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한참을 앉아 주변을 눈에 담았다. 내가 일어나자 그녀도 조용히 몸을 일으켰고 공원을 나와 우리는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퇴근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거실로 나가 TV를 켰다. 뉴스 채널마다 같은 주제를 방송했다. 북한의 병사가 남으로 귀순하여 생활관을 노크한 사건이었다. 귀순자는 십여 분만에 사선을 넘어 남한의 군부대로 무사히 들어왔다. 귀순에 관한 전반적인 조사가 진행됐고, 의혹이 쏟아졌다. 귀순 예상 시간도 서로 말이 달랐다. 책임자의 말은 때마다 바뀌어 앞뒤가 맞지 않았고, CCTV 녹화기록은 때마침 삭제됐다. 모든 뉴스가 귀순 사건을 심각하게 다루었는데, 귀순자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똑같은 내용이 반복됐다. 2년 동안 근무했던 철책. 나는 넘을 수 없는 경계를 누군가가 넘어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수많은 철조망을 넘었을지 가늠했다. 상상만으로도 급격히 피로해지는 탓에 거실에 그대로 누웠다가 잠깐 선잠에 들었다.
휴대폰 진동에 눈을 떴다. 어머니였다.
“영수야, 역 앞에 큰 병원 있잖아. 그 뭐냐. 이름이 갑자기 생각 안 나네.”
“병원은 왜요?”
“아빠 방금 교통사고 나서 입원했어. 얼른 와.”
“입원이요?”
나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집을 뛰쳐나왔다. 급하게 슬리퍼를 신고 빌라를 내려갔다. 언덕을 뛰다시피 내려오다가 무언가에 발을 걸려 넘어졌다. 한 바퀴를 굴렀다. 피부가 바닥에 쓸려 무릎과 팔꿈치에 상처가 났다. 피가 흘렀다. 무시하고 다시 병원으로 전력질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