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왼쪽 끝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어머니의 시선 끝에는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가 있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아버지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창가로 돌렸다. 시선의 회피가 낯설었다.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버지는 상체에 복대를 메고 있었는데, 살갗이 굳어 생긴 딱딱한 껍질 같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어머니가 말했다. “뭘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술 처먹고 돌아다니다가 차에 치인 거지. 그나마 차가 속도를 줄여서 이만하지. 그대로 들이받았으면 어쩔 뻔했어. 술 좀 적당히 마셔. 응? 정말 지긋지긋해. 진짜!”
아버지가 눈을 감은 채로 입을 뗐다. “그만해. 다른 사람들도 있잖아.”
“창피한 줄은 아나 보지? 그래, 다른 사람들 들으라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정신 좀 차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러고 살아!”
입원실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힐금 쳐다보았다.
“얼마나 다친 거예요?”
어머니는 턱으로 배쭉 아버지의 복대를 가리켰다. “갈비뼈의 금이 갔대. 퇴원하려면 몇 주 걸린다더라. 한동안은 병수발 들어야겠는데.”
아버지가 윽박지르듯 말했다. “됐어. 수발은 무슨. 나 혼자서도 괜찮아.”
“혹시 모르니까 누가 붙어 있어야지! 속 터져, 진짜!” 어머니는 나를 보고 그나마 너그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학교 다녀와서 시간되면 병원 들려서 잠깐이라도 있어. 엄마는 일 끝나고 들릴 테니까.”
당연히 아버지를 보러 병원에 제 발로 오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일부러 아버지에게 눈길을 보내지 않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제 곧 시험이라 시간이 될지 모르겠어요.”
“너 시간 비면.” 어머니가 말했다. “참. 영수야. 엄마 돈 좀 빌려줘.”
“저 돈 없는데요.”
“너 과외도 몇 개 하고 그러는 것 같아서. 곧 카드값 나가는데 부족해.”
“그럼 어떻게 해요. 저 진짜 돈 없어요.”
“큰일이네 이거.” 어머니는 한숨을 푹 내쉬고 말했다. “그럼 과외비 가불 받아서 엄마 좀 줘. 진짜 급해서 그래.”
어머니의 얼굴은 참담했다. 나는 마지못해 병실을 나와 곧바로 전화했다. 다행히도 축구를 좋아하는 과외 학생의 어머니는 선뜻 다음 달 과외비를 계좌로 부쳤고, 나는 바로 어머니에게 송금했다. 다시 병실로 들어가려는데 팔꿈치와 무릎의 상처가 따끔거렸다. 화장실에 가서 물로 상처 부위를 대충 씻고 휴지로 물기를 닦았다. 핏기가 스몄다. 쓰라렸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화장실을 나와 복도 한 편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복대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병원을 바로 떠날 수가 없었다. 힘이 빠지면서 초점이 사라진 듯 시야도 흐릿해졌다. 아버지의 입원을 듣고 왜 뛰었을까. 사실 병원에 오지 않았어도 괜찮은 일이었다. 아버지와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고는 전화를 끊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릎의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벌겋게 올라 있었다. 복도는 깨끗하고 희었다. 몇 사람이 내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누군가 내 앞에 섰다. 간호사였다. 내게 상처가 났다고 했다. 나는 알고 있다고 했다. 간호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간호사와 응급실로 내려갔다. 상처를 보여주었다. 치료를 받은 후에 병실에 들르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중간고사가 끝난 후에도 아버지를 찾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특별한 부탁이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병실에 들렀다. 아버지 곁에 앉아 있을 뿐,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아버지도 무리하게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전한 보복의 말처럼, 그가 내게 폭력을 행사한다면 나도 폭력을 행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술에 취하지 않은 아버지는 위험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험에 노출된 사람 같았다. 그는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나도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었다.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얼굴을 훔쳐볼 때면, 내 얼굴의 일면이 문득 지났다. 그와 나는 어쩔 수 없이 닮아 있었다. 그 모습이 싫었다. 나는 애써 아버지를 보지 않고 병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둘러보았다. 때로는 서로 다투기도 했지만 사이가 좋아 보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과일을 같이 나눠 먹었다. 오히려 이상하게 보였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떻게 서로에게 저토록 호의를 보일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너무도 다른 가족의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가족의 군상 속에 있으면 홀로 떠난 수진의 얼굴이 떠올랐고, 홀로 남은 수빈의 처지도 생각났다.
아버지를 찾아가더라도 그리 오래 병실에 머물지 않았다. 내가 나가면 아버지는 단란한 가족들 사이에서 홀로 남게 되었다. 나는 그 화목한 가족들 사이에서 아버지가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 속에 마땅히 홀로 남아야만 한다고 여겼다. 한번은 병실에 앉아 있다가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고 조용히 일어났다. 병실을 나가려는데 한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노부부였는데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웃어댔다. 나는 발을 멈추고 잠시 동안 문가에 서서 아버지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았다. 그는 주변을 보지 않았고 뜬 눈으로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했다. 시선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아버지는 천정을 올려다보는 듯했다. 나는 처음으로 면밀히 아버지의 얼굴을 살폈다. 어머니보다 더 주름이 졌고, 입꼬리는 아래로 쳐져 있었다. 술을 먹지 않았어도 코끝은 이미 벌겋게 올라 있었다. 아버지는 갑자기 눈을 거듭 깜빡였다. 시선은 천정에 고정한 채로 눈꺼풀은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살갗의 이동이 아버지의 의도인지 원하지 않는 떨림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외로운 듯 했고, 불안한 것 같았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나는 다시 아버지에게 돌아가 곁에 앉았다. 아버지의 눈동자가 내게 머물다가 다시 위를 향했다.
“아직도…….”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술 드시고 싶으세요?”
아버지의 눈동자가 조금 아래로 내려왔다. 그가 목덜미를 움직이며 껄떡댔다. 복대에 눌려 힘들게 호흡을 하며 입을 뗐다. 갈라지는 목소리였다.
“이제 안 마셔. 절대로.”
나는 빤히 아버지의 옆얼굴을 보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를 홀로 두고 병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