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이용권을 끊고 놀이동산에 들어갔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았지만 혼자서 다니는 사람은 나 이외에는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가장 먼저 회전목마를 탔다. 중심과 가까운 말 위에 앉았다. 바깥쪽으로는 부모들과 아이들이 앉았다. 안내원이 한 바퀴 돌면서 안전장치를 확인했고, 잠시 후 목마가 회전했다. 주변의 말과 마차들이 빛났고 세상은 돌기 시작했다. 끝나지 않을 듯 흘렀다. 나는 몇 번이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바깥에서 회전목마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주변에 앉은 아이들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즐겁다기보다는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부모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랬다. 어른들이 더 신나는 표정이었다. 회전목마는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나는 안전장치를 풀고 출구로 나가 다시 혼자서 걸었다. 놀이동산 광장을 순환하는 열차에 탑승했다. 열차는 아주 느렸고, 동요가 흘러나왔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주위의 아이들은 신기한 듯 바깥의 경치를 구경했다. 내 옆에 아이가 창밖을 보다가 나에게로 고개를 돌려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아이도 나를 따라하는 것처럼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아이의 부모는 나를 보고 가볍게 목을 숙였다. 나도 따라했다. 열차가 멈추고 출구로 나왔다. 계단을 올라 열기구를 타러 갔다. 홀로 열기구 하나를 차지했다. 몸을 실자 둥실 떠올랐다. 천정으로 오르더니 놀이동산에서 가장 높은 곳을 지나기 시작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주 높았다. 무대에서는 공연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회전목마는 열심히 회전했다. 광장을 가로지르는 작은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분주하게 어딘가로 향했다. 열기구는 느릿느릿한 속도로 놀이동산을 돌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몸이 가라앉았다. 열기구에서 내린 후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바이킹을 타러갔다. 줄은 꽤나 길었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사람들이 연신 비명을 질렀다. 나의 차례가 왔고, 가장 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배가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의 몸이 높이 올랐다가 떨어졌고, 반대쪽이 높이 올랐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스쳐 지나는 바람결을 느꼈다. 주변의 비명소리가 나의 귀 옆을 스쳐지나갔다. 괴성과 함께 세상이 기울었고, 떨어졌다. 반복됐다. 어지럽기 시작했다. 몇 번 더 반복운동을 했다. 생각보다 길었던 운행시간이 끝나고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눈에 보이는 놀이기구를 닥치는 대로 타고 다녔다. 아이들의 자리를 뺏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놀이동산에 있는 모든 놀이기구를 탈 작정이었다. 나는 타고, 타고, 또 탔다. 무엇이든 다 탔다. 그리고 끝내 미루고 미루던 롤러코스터 앞에 섰다. 거친 레일의 소리가 들렸고, 허공에서 길고 가냘픈 비명소리가 지났다.
오랜 시간 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롤러코스터에 몸을 실었다. 신뢰할 수 없는 안전장치를 붙잡자 열차는 출발했다. 몸이 뒤로 기울고 경사를 천천히 올랐다. 수진이 생각났다.
‘올라가는 건 한참 걸리지만 떨어지는 건 금방이야. 아주 잠깐만 참으면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생각 하지 마. 그냥 몸을 맡겨. 금세 처음으로 돌아와 있을 거야.’
나는 정면을 보았다. 하늘이었다. 오르막길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영수야, 좀 이따 봐.’
몸이 앞으로 쏠리고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세상은 아주 빠르게 옆으로 흘렀다. 나는 양손으로 손잡이를 꾹 붙잡고 눈도 감았다.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식은땀이 났고, 몸과 목이 사방으로 꺾였다. 롤러코스터는 놀이동산을 순식간에 헤집었다. 빠른 속도에 나는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수진과 함께 했던 과거의 수많은 순간들이 느닷없이 떠올라 스쳐 지나갔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을 겪은 듯했다. 선로를 지나간 시간은 압축되어 찰나로 변했다. 금세 열차가 선로 위를 서행하더니 승강장으로 들어갔다. 주변의 사람들은 옷매무새와 머리를 정리했다. 안전장치가 올라가고 나는 부리나케 롤러코스터를 벗어났다. 그리고 다시 줄을 섰다. 다시 롤러코스터에 탑승했다. 가장 높은 곳에 이르렀을 때 나는 눈을 부릅떴다. 구부러진 선로를 끝까지 눈에 담았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았다. 내달리던 열차의 위치가 다시 상승할 때 나는 안전장치에서 손을 뗐다. 열차가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몸이 붕 뜨기도 했고 가라앉기도 했다. 열차의 운동에 따라 내 몸은 공중에서 사정없이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열차에서 튕겨나가 추락할 것만 같았다. 아찔했지만 나는 억지로 손을 들어 올려 소리란 소리는 다 질러댔다. 완전히 내 몸을 하늘에 맡기는 기분이었다. 상승과 하강의 연속을 또렷이 경험했다. 다행히도 열차의 안전장치는 내 몸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끌고 갔다.
속이 메슥거렸지만 출구로 나와 곧바로 기념품 가게에 들려 빨간색 풍선을 두 개 샀다. 가게와 충분히 멀리 떨어질 때까지 풍선을 들고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 풍선 하나를 몸에 걸어놓고 다른 풍선을 양손으로 잡았다. 강하게 압박했다. 풍선이 나의 손 안에서 뒤틀리고 일그러졌다. 터뜨리기 쉽지 않았다. 풍선을 힘껏 잡아 뜯었다. 풍선은 큰 소리와 함께 터져 사라졌다. 붉은 고무 조각들이 발 아래로 떨어졌다. 풍선의 잔해들을 줍고는 하나 남은 풍선을 마저 터뜨리려는데 내 앞을 지나던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는 부모의 손을 잡고 주뼛주뼛 다가왔다. 부모는 아이가 이끄는 방향으로 순순히 따라왔다. 아이는 내 앞에 서서 빨간색 풍선을 말긋말긋 쳐다보았다.
나는 풍선을 양손으로 잡은 채로 말했다. “가지고 싶어?” 아이의 초롱초로한 눈동자 속에 빨간색 풍선이 담겨 있었다.
풍선을 아이에게 건네자, 아이는 내 빨간 풍선을 꼭 쥐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니요. 이제 저는 돌아갈 시간이에요.”
어머니는 빙긋 웃어 보였다. 아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형한테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아이는 배꼽인사를 했다. 나는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아이와 부모는 걸음을 옮겼다. 아이의 아버지는 내게 가볍게 목을 숙여 인사를 했다.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그를 따라 목례를 했다. 그들은 점차 멀어졌다. 빨간색 풍선은 아이의 손에 들려 가만가만 흔들렸다. 풍선은 그들과 함께 놀이동산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벤치에 앉아서 그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을 앉아 있었다. 저 멀리 놀이동산의 출구가 보였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지친 몸을 이끌고 걸어 다녔다. 아이들과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비슷한 표정이었다. 나도 그들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규칙 없이 걸어가던 행인들의 발걸음이 서서히 멎더니 광장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퍼레이드를 알리는 음악과 목소리가 들렸고, 멀리서부터 커다란 마차와 배들이 다가왔다. 화려한 옷을 입고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관객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은 신기한 눈으로 끊임없이 손을 흔들었다. 후크 선장의 배 뒤에서 대포를 끌고 가는 해적이 내 앞에 멈춰 춤을 추다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힘껏 흔들었다. 그는 다시 대포를 앞으로 끌고 갔고 다시 몸을 흔들었다.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고 나서 아이들에게 다시 인사를 했다. 나는 그 사람이 오늘 일이 끝난 후에 저녁은 무엇을 먹을지, 가족들은 어떨지, 친구들을 만나서 무슨 말을 할지, 혼자 있을 때는 주로 무얼 하면서 시간을 보낼지 상상했다. 퍼레이드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오늘 하루를 연상했다. 그들은 모두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기나긴 퍼레이드가 끝나고 사람들은 놀이공원 구석구석으로 흩어졌다. 나도 뒤늦게 출구로 향했다. 놀이동산을 나오는 길에 수진의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났고, 터지지 않은 빨간색 풍선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