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의 교점 # 81

by 청화

놀이동산을 돌아다니느라 몸이 아주 고되었는지, 일요일 오전 늦게 눈을 떴다. 거실로 나갔더니 카레 냄새가 진동을 했다. 어머니가 커다란 솥에 카레를 하고 있었다. 다 먹으려면 족히 일주일은 걸릴 양이었다. 어머니는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확인하고는 다시 요리를 하며 말했다.


“한동안 반찬 걱정은 없겠어.”


“반찬 걱정을 왜 해요. 반찬 없어도 괜찮아요.”


“엄마도 알아.” 어머니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요즘 너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서. 얼굴은 핼쑥해져가지고. 밖에서 잘 좀 먹고 다녀.” 요즘은 밖에서 식사를 할 일이 없었지만, 알겠다고 대답했다. 물을 마시고 방에 바로 들어가려는데 어머니가 말했다. “거의 다 했어. 밥 먹고 들어가.”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치과에서 알려준 주의사항을 상기했다. 카레를 먹으면 치아 교정기에 걸려 있는 고무줄이 변색된다고 일러준 것이 기억났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어머니가 말했다. “숟가락 놓고, 반찬 꺼내. 김치만 있으면 되겠다.” 나는 어머니의 말대로 식사 준비를 하고 식탁에 앉았다. 어머니는 금세 큰 그릇에다가 흰쌀밥을 한 숟갈 크게 퍼 담고 카레도 가득 담았다. 그릇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먼저 먹어. 엄마는 정리하고 먹으려니까.”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카레밥. 어머니는 치아 교정 사실을 몰랐다. 나는 숟가락으로 밥을 살살 비벼 반 숟갈을 떴다. 나는 카레밥 한 술을 입에 넣지 못하고 가스레인지 위에 있는 솥을 눈에 담았다. 곤란했다. 카레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가는 어머니의 악착같은 추궁과 잔소리가 뻔했다. 벌써부터 높은 언성이 들리는 듯했다. 딱 한 번이었다. 한 번 카레를 먹는다고 고무줄이 크게 변색될 것 같지도 않았다. 조심스레 카레를 입에 넣었다. 나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도 치아가 크게 아프지 않은 상태였다. 한 술이 어려웠지, 그 다음은 쉬웠다. 카레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빠르게 먹고 바로 양치를 할 계획이었다. 내가 식사를 하는 중에 어머니도 카레를 떠서 자리에 앉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입속이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밥을 입에 넣었다. 카레가 몇 숟갈 남지 않았을 때,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카레를 씹다가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입안에서 울렸다. 불안하고 근원을 알고 싶지 않은 소리였다. 혀를 조심스레 움직여 치아를 살폈다. 음식물이 혀의 촉감을 방해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왜 그래?”


나는 입술을 앙다물고 입속에 남은 음식물을 짓이겨 반쯤 삼켰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어머니는 나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딱딱한 거라도 씹었어?”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어머니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고기에 붙은 뼈가 있었나보다.” 어머니 앞에서 대놓고 입을 벌려 이빨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나는 얼른 휴지를 뜯어 입안에 조금 남은 음식물을 뱉어냈다. 어머니가 다그치듯 말했다. “그런 건 씹어 삼키면 돼. 씹으면 다 부서져.”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곧장 화장실로 갔다. 물로 입을 헹구고 거울로 입속을 들여다보았다. 오른쪽 아래 어금니의 브래킷이 떨어져 있었다. 브래킷에 걸려 있던 투명한 고무줄들은 모두 샛노란색이었다. 나는 부리나케 양치를 했다. 고무줄은 투명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식탁으로 돌아와 어머니 몰래 밥을 버리고 물을 마셨다. 방으로 들어와 다시 치아를 살폈다. 브래킷이 떨어져 와이어 끝에 걸려 있었다. 곤란했다. 오늘은 휴일이었다. 대충 와이어를 아래로 눌러 걸어놓았지만, 나도 모르게 혀로 건드렸다. 떨어진 와이어가 주의를 거듭 빼앗았다. 차라리 낮잠을 자기로 했다. 다시 이부자리를 펴고 불을 껐다. 내일을 기다리며 잠에 들었다.


잠결에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거실에서 요란한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아주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듯해서 시간을 확인했다. 고작 1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는 멍하니 누워 천정을 응시했다. 입안에서 은근한 카레 냄새가 났다. 걱정이 들었다. 늦은 점심도 카레를 먹어야했다.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몇날 며칠을 카레만 먹어야할지도 몰랐다. 그러다가는 브래킷에 걸린 고무줄들이 누렇게 물들 것이었다. 나는 얼른 세수를 했다. 옷을 입고 외출을 했다. 어머니는 바쁜 모양인지 내가 집을 나가는지도 몰랐다. 나는 언덕을 내려와 동네를 돌아다녔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나는 카페에 들어가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시켜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할 게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책이라도 들고 나올 걸 그랬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카페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점심때가 지나자 카페 안이 사람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들어오는 사람마다 자리를 찾기 위해 카페를 둘러보았고, 나는 그들과 매번 눈이 마주쳤다. 혼자서 2인석 자리를 차지한 것이 미안스러웠다. 커피를 마지막으로 한 모금 홀짝이고 카페를 나왔다. 가게를 나오자 갈 곳이 없었다. 그제야 수빈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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