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의 교점 # 83

by 청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하나 남은 과외도 취소하고 며칠 동안 누워 있었다. 언제 잠에 들고 언제 깬 것인지 스스로도 가늠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몽롱한 상태로 누워서 보냈다. 떨어진 와이어가 거치적거렸지만 치과에도 가지 않았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몸에 힘도 없었다. 그 몽롱한 상태로 있다 보면 수진의 얼굴이 문득 기억났다. 수빈의 얼굴 같기도 했다. 수빈의 얼굴을 한 수진의 미소일지도 몰랐고, 수진의 것일지도 몰랐다. 나의 뇌가 두 사람을 떠올리는 듯했다. 두 사람에게서 다시 차이점을 찾기도 했고, 공통점을 찾기도 했다. 그녀를 떠올릴수록 공통점은 많았고, 차이점은 줄었다. 아주 처음부터 만난 사람이 수진이 아니라 수빈이었던가? 기억 속을 방황했다. 기억마저 신뢰할 수가 없었다. 기억도 때에 맞춰 그녀의 모습을 왜곡시키는 듯했다. 기억을 아무리 뒤져 봤자 헛수고였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그녀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방에 누워 있는 나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끌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했다. 나는 진자운동을 하는 것처럼 그녀들 사이를 몇 번이고 왕복했다. 어디로도 나를 데려갈 수 없도록 스스로를 붙들어 맸다. 버틸수록 그녀들의 얼굴이 뒤틀렸다. 세상이 일그러졌다. 빠르게 스쳐 지났다. 그 무엇도 제대로 눈에 담을 수가 없었다. 의지와 무관하게 그녀들은 나의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서로를 섞었다. 그러다 지쳐 다시 잠에 들기를 반복했다. 눈을 계속 뜨고 있었던 것처럼 피로가 몰려왔다. 해가 뜨고, 다시 해가 졌다. 눈을 감고, 다시 떴다. 시간 감각이 사라진지는 오래였다.


어디선가 진동이 울렸다. 꿈속에서 들리는 것인지, 실제로 들리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천정을 쳐다보며 진동을 들었다. 잠에서 완전히 깬 후에도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리는 것 같았다. 나를 찾을 사람이 있던가. 아마 터무니없는 광고 전화일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진동은 그치지 않았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몸을 일으켜 책상 위에 휴대폰을 잡아챘다. 인영의 연락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몸을 뒤로 눕히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 오랜만에 듣는 나의 목소리가 어색했다. 목을 골랐다. “여보세요.”


은근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영수야, 나 인영이.”


“응. 인영아.”


“목소리 왜 그래? 왜 이렇게 힘이 없어?”


“그냥. 누워 있어서 그래.”


“자고 있었어? 미안해.”


“괜찮아. 근데 무슨 일로?”


“다음 주에 졸업식이야. 혹시 올 수 있을까 해서.”


“이제 졸업이구나.”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망설이다 입을 뗐다. “가야지 그럼. 근데 내가 가도 돼? 가족들 오실 거 아니야.”


“내가 오지 말라 했어. 지방에서 올라오려면 고생이잖아. 엄마한테 친구들 많이 와서 굳이 오지 말라 했어.”


“친구들?”


“응. 그래서 너한테 연락했어. 올 거지?”


“친구 또 누구 오는데?”


“아무도 안 와. 너밖에 올 사람 없어. 여자 동기들은 대부분 같이 졸업하고.”


“으음. 그렇다면 꼭 가야지.”


“진짜? 고마워. 이제 얼른 더 자. 연락 남겨 놓을게.”


커튼 뒤로 밝은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아니야. 이제 일어나야지.”


“그래. 또 연락할게.”


전화를 끊고 바로 일어났다. 배가 고파 물에 밥을 말아 먹었다. 와이어가 덜렁거렸다. 바로 양치를 하고 목욕을 했다. 떡 진 머리를 몇 번이나 감고, 세수를 했다. 얼굴의 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라 있어 면도를 했다. 한 번의 면도로는 털이 깔끔하게 밀리지 않았다. 나는 거듭 면도기를 움직이다가 면도날에 인중을 베이고 말았다. 피가 인중을 타고 입술을 적셨다. 핏방울이 세면대 위에 떨어졌다. 배수구로 흘렀다. 새빨간 흔적이 길게 남았다. 상처를 물로 닦아냈다. 피는 멎지 않았다. 나는 상처 부위를 꾹 눌러 지혈했다. 쓰라렸다. 거울에 비친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때도 그랬다. 내가 처음 면도하던 그때도 인중에 상처를 냈다. 아마 중학교 2학년쯤이었는데, 그때는 솜털 같은 수염이 났다. 나는 그 수염도 보기 싫어 면도를 감행했다. 서랍을 뒤져 굴러다니는 일회용 면도기 찾았다. 비누로 거품을 대충 내서 턱과 뺨 주위에 묻히고 면도를 했다. 요령도 없었고 면도기도 좋지 않아서 그만 살을 도려내고 말았다. 피가 났고, 나는 놀라서 얼른 면도를 그만두었다. 그때도 아버지는 집에 없어서 주위에 면도하는 방법을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가끔 방문하는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면도를 배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 이후로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혼자서도 면도를 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거듭 연습을 했고, 시행착오 끝에 혼자서 면도를 익혔다. 내가 면도를 꽤나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다시 상처가 나고 말았다. 아렸다. 나는 인중에서 손가락을 뗐다. 다행히도 피는 거의 멎었다. 면도를 대충 마무리한 후,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머리를 말렸다.


치과로 향했다. 간호사는 내 입속을 살펴보더니 금세 브래킷을 새로 붙였다. 치과의사는 내가 병원에 내원하기로 약속한 날이 이틀 후라면서 온 김에 와이어와 고무줄을 교체하겠다고 했다. 간호사는 나를 눕히고 입을 벌리게 했다. 고무줄과 와이어를 교체했다. 노란 고무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다음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출 했다. 나는 대출 내역을 확인했다. 액수가 상당했다. 1학년 2학기를 제외한 다른 학기에는 조금도 장학금을 받지 못한 탓이었고, 대출한 생활비도 무시할 수 없었다. 고작 대학생활은 2년이 흘렀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했고, 무엇을 이루었으며,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도 잡아낼 수 없었다. 앞으로 남은 2년이 막막했고, 졸업 후의 삶도 막연하게 걱정스러웠다. 이 년 후의 모습, 일 년 후, 한 달, 고작 하루 후의 모습도 어떨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재준은 중간에 사라졌고, 인영은 졸업이었다. 모두가 나름의 끝을 보고 있었다. 수진과 수빈도 마찬가지였다.


저녁때가 지나서 어머니가 집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퇴근 후에 매일같이 하는 일을 어김없이 행했다. 방에서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몸을 씻고, 머리를 말리고, TV를 틀고, 거실과 부엌을 확인했다. 갑자기 어머니가 큰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불렀다. 괜스레 심장이 뛰었다.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그 사이 어머니가 나를 다시 불렀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왔다. 내가 나타나자 어머니는 카레가 담긴 솥의 뚜껑을 열어보면서 잔소리를 시작했다. 카레가 줄지를 않는다며 집에서 밥은 먹고 있는지 물었다. 나는 카레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니는 카레가 다 쉬었다고 했다. 진작 먹었으면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닦달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나를 노려보다가 금세 노기를 풀고, 카레가 아니더라도 밥을 먹고 있으면 괜찮다고 말했다. 굶지는 말라 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어머니가 나를 다시 불렀다.


“이번에도 등록금 대출 했어?”


“네. 성적 장학금은 못 받았어요.”


“좀 열심히 하지.”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게요.”


“생활비 대출은?”


“신청했어요. 나오면 드릴게요. 근데 저번에 드린 과외비는 언제 주세요?”


어머니는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신경질을 냈다. “내가 그걸 왜 줘?”


“주신다면서요.”


어머니는 갑자기 싱크대 위를 말없이 정리했다. 나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지금까지 누적된 상환금액이 다시금 걱정됐다.


“빚이 너무 많아요.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대출해서요. 졸업할 때 되면 이거에 두 배는 될 텐데. 빚은 언제 갚아주실 거예요?”


어머니는 갑자기 돌아보았다. 정색하며 말했다. “그걸 나한테 왜 물어봐?”


“어머니가 쓰셨잖아요.”


“어쩔 수 없었어. 이율이 더 싸잖아.”


“그러니까 언제 갚아주실 건데요.”


어머니는 정색했다. “그걸 내가 왜 갚아? 네가 갚아야지.”


“안 그래도, 등록금은 제가 갚을 생각이에요. 그래도 생활비는 갚아 주셔야죠. 어머니한테 다 드린 건데.”

갑자기 어머니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나 좋으라고 썼어? 그거 다 집안 살림에다가 쓴 거야. 너는 엄마가 허투루 돈 쓰는 거 본 적 있어?”


“허투루 썼다고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썼는지는 상관없어요. 언제 주실 거냐고요.”


“내가 그걸 왜 줘. 네가 나중에 일해서 갚아야지.”


“네? 제가 전부 다요?”


“그래. 그거 다 네 빚이야. 엄마는 그 돈 갚아줄 여력이 안 되니까.”


“갚아준다면서요.”


“말이 그렇다는 거고. 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네 돈인 거지.” 나는 그의 문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불쑥 언성을 높였다. “너는 아들이 돼가지고 그런 거 하나하나 따지고 있어! 내가 아무 말 안 해도, 응? 네가 알아서 빚 갚을 생각해야지. 어떻게 엄마한테 그걸 다 갚으라고 말하니 너는? 영수야, 부끄러운 줄 알아! 부끄러운 줄 알라고!”


뻔뻔스러웠다. 속이 탔다. 겨우 참고 있던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차갑게 답했다.


“그럼, 이번에 생활비는 취소할게요.”


어머니는 윽박지르듯 말했다. “안 돼! 네 아빠 입원비도 있고, 이번에 들어간 돈이 많아. 네가 그 돈 안 주면 우리 이 집에서 나가야 돼. 예전처럼 그러고 싶어? 우리 다시 길바닥에 나앉는 거야.”


“그거 조금 안 드렸다고 집에서 쫓겨나기라도 한다는 거예요?”


어머니는 잔에 물을 따라 마시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우리 길바닥에 나앉아야 돼. 그러니까 생활비 대출 꼬박꼬박해서 엄마 줘. 다른 돈 나올 구멍 있으면 뭐든지 찾아서 신청하고.”


답답했다. 목울대에 단단한 응어리가 잡혔지만, 약을 먹듯 삼켜냈다. 내가 처한 상황이 이토록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는지 차마 몰랐다. 어머니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판단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말이 협박처럼 느껴졌다. 억울하고 화가 났다. 화를 내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나의 적인지 동지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었다. 그를 보면 속이 복잡하게 끓어올랐다. 더 이상 돈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요. 생활비 나오면 드릴게요.”


“당연히 그래야지. 이제 엄마한테 빚 얘기 꺼내지 마! 알았어? 네 빚을 왜 엄마한테 갚으라고 난리야!”


나는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방은 추웠다. 나는 창문을 닫고 이불로 몸을 감싸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치아에서 고무줄의 장력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치아를 살짝만 건드려도 아파왔다. 나는 거듭 혀로 치아를 밀고 이빨을 잘근잘근 부딪었다. 통증이 규칙적으로 올랐다. 나는 방바닥을 응시한 채, 차이를 딱딱 부딪기 시작했다. 소리와 함께 감각이 일었다. 아팠다. 나는 고개를 움직여 머리통을 벽에 가볍게 찧었다. 머리와 방이 동시에 울렸다. 나는 반복해서 머리를 벽에 갖다 대었다. 부딪는 순간마다 경미한 통증이 일었다. 진동을 느꼈다. 몸과 방은 따뜻해질 줄을 몰랐다. 나는 두툼한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무슨 생각으로 대학에 갔는지 물었다. 영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대학에서 무얼 배웠는지 물었다. 증명을 배웠다. 하등 쓸모가 없었다. 영수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곳에서 힘들어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 이렇게 사는 걸까. 정말 다 이렇게 살아가는 걸까. 아닌 것 같았다. 수많은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며칠 새 많은 잠을 잤으면서도 또 잠이 왔다. 몸을 웅크리고 잠에 들었다. 새벽에 몸을 뒤척이며 일어나 이부자리를 제대로 펴고 누웠다. 속이 쓰려와 잠이 오지 않았다. 차라리 몸을 지치게 만들어 잠에 들고 싶었지만 수진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탓에 몸 어디에도 손을 대지 못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가만히 누워서 창가를 지켜보았다. 커튼 뒤에서 새어나오는 푸른빛을 보고 나서야 나는 겨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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