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의 교점 # 84

by 청화

대학가는 사람들이 득시글했다. 길 한쪽으로는 가판대가 이어졌고, 상인들이 꽃다발을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빈손으로 졸업식에 갈 수는 없어 가판대 앞을 기웃거렸다. 인영이 마음에 들어 할지 자신은 없었지만, 젊은 주인이 추천해주는 꽃다발을 하나 사서 학교로 들어갔다. 졸업식 날의 대학은 완전히 달라보였다. 내가 퇴근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면서 거닐던 교정이 아니었다. 대학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진 기사 몇이 교정을 거닐며 손님을 물색하고 있었고, 이미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학사복과 학사모를 입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부모와 함께였다.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얼굴을 모아 확인하고, 다시 부모로부터 멀어져 늠름한 자세를 취했다. 쌀쌀한 날씨 속에서 다소 상기된 얼굴로 졸업식을 즐기고 있었다.


인파를 뒤로 하고 대강당으로 들어갔다. 정작 졸업식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맨 앞에 학생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고, 그 뒤로는 소수의 사람이 드문드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고 부모들과 따로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졸업식에 꼭 필요한 사람만이 대강당에 있는 것 같았다. 학사 졸업생보다는 석사나 박사 졸업생들을 위한 자리였다. 식은 빠르게 진행됐다. 모르는 이름이 하나씩 호명되고 오른쪽에서 사람들이 등장했다. 총장에게서 졸업장을 건네받고 악수를 했다. 그리고 왼쪽으로 걸어 나왔다. 곧 인영의 이름이 불렸다. 강단 가운데로 인영이 나타났다. 총장과 악수한 후에 강단을 빠르게 내려왔다. 강당을 가로질러 오르는 인영을 눈으로 좇으며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우리는 강당 출구 앞에 비슷하게 도착했다. 인영은 나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환하게 웃었다.


꽃다발을 인영에게 건네며 말했다. “졸업 축하해.”


“꽃도 사왔어?” 인영은 꽃다발 속의 꽃을 하나씩 눈에 담는 듯 면밀히 바라보았다. “고마워.”


“고맙기는, 너 졸업식인데. 이제 끝난 거야? 사진이라도 찍어야지.”


“조금 이따가. 먼저 단대 학장님한테 가야 돼.”


“학장님은 왜?”


인영은 수줍어하는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단과대 수석 졸업이야.”


“수석? 과 수석이 아니라 단과대?”


“응. 그렇다는데?”


“축하해. 하긴 네가 공부를 좀 잘했어야지.”


인영은 엷게 미소를 짓고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줘. 금방 갔다 올게. 오래 안 걸릴 거야.”


“같이 가. 앞에서 기다릴게.”


우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길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수석 졸업생인 인영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묘한 우월감을 느꼈다.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모두 똑같은 4년이 아니었다. 모든 이의 대학생활을 알 수는 없지만, 인영의 것은 대충이라도 알고 있었다. 그는 상과 훈장을 받아 마땅했다. 인영의 얼굴이 새삼 다르게 보였다. 다소 긴장한 표정 속에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도 느껴졌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흥미가 없는 듯했다. 인영의 걸음은 날랬고 나는 사람들을 피하며 따라갔다. 건물 앞에 도착하자 인영은 나에게 금방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들어갔다.


건물 입구 한쪽에서 옷차림이 남루한 두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 연기가 수시로 올랐다. 그 앞으로 학사복을 입은 학생들이 지났고, 간혹 학사복 앞에 하얀색 천을 묶어 풍성하게 장식한 학생도 지나갔다. 담배를 입에 문 사람들은 무미건조한 눈으로 지나는 졸업생들을 보았다. 그들은 담배를 다 태웠는지 내 곁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돌아가자 건물 앞에 나는 혼자였다. 졸업생 무리들이 계속 지나갔다. 모두 즐거워 보였다. 그 미소를 보자 갑자기 그들이 걱정스럽고 불쌍하기까지 했다. 졸업은 대학생활이 끝이 났다는 뜻이었고, 새로 시작할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지나가는 졸업생들의 전공을 유추하며, 그들이 4년 동안 배우고 익힌 것과 얼마나 적합한 진로를 선택했을지 가늠했다. 대학 졸업 시기에 맞춰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도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어디서나 취업난을 말했다.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다고 했다. 기꺼이 우리를 받아주고 공부를 시켰던 과거와는 달랐다. 이제는 모두가 갈 곳이 없다고 했다.


졸업생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건물 주위를 배회했다. 다른 누군가를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2년 동안 명제를 증명하는 법을 배웠고 연습문제를 풀었다. 남은 2년도 똑같을 것이었다. 그동안 배운 것이 쓸모없는 것 같았다.


아주 오래 전에, 자연에 대한 교수의 말. 당연한 것을 물어야 한다고 했었다. 우리는 여러 증명의 방식을 익혔고, 한 점이 빠진 원과 직선에 대해서도 배웠다. 존재성과 유일성에 대한 증명법도 공부했다. 존재를 부정하여 모순을 유도했다. 서로 다른 두 존재로 가정하고 모순을 유도하여 실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공부했다. 지구 위에서의 기하학이었다. 평행선의 교점을 이해했다. 수도 없이 대입하고 치환하여 문제를 풀어냈고, 논리적인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다른 누군가의 힘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증명하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그 모든 시도와 지식들이 내게 무엇을 말해주는지 알 수 없었다. 이만큼 지났어도 나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줄은 몰랐다. 시험은 매번 어려웠고, 성적은 겨우 중간이었다. 내가 풀지 못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 바퀴 돌아 다시 건물 앞으로 돌아왔을 때, 인영은 막 건물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오래 기다렸지?”


“아니, 별로.”


인영은 손바닥보다 작은 검은색 상자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영수야, 이것 좀 맡아줘. 지금 주머니가 없어서.”


나는 상자를 코트 주머니에 넣고는 인영이 사진 찍을 만한 곳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많아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학교를 돌아다니며 장소를 물색했다. 인영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조심스레 그 앞에 섰다. 인영의 표정은 때마다 어색해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웃으라고 말했다. 인영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 그 표정이 더 이상했다. 나는 인영의 미소를 일으키기 위해 일부러 “졸업 축하해”라고 소리쳤다. 소용이 없었다. 나는 “수석 졸업했으면 좀 웃어야지”라거나 “어이, 수석 졸업”이라 일부러 외치면서 인영의 당황한 모습과 웃는 모습을 찍었다. 한결 나았다. 인영은 갑자기 지나가는 학생에게 사진을 부탁하더니, 나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우리는 몸을 붙이고 서서 카메라를 응시했다. 학생은 숫자를 셋까지 외치고 사진을 찍었다. 한 번 더 찍겠다며 쪼그려 앉기까지 했다. 역시 자연스럽게 웃는 일은 어려웠다. 학생은 휴대폰을 돌려주고 우리는 고맙다고 인사했다. 인영은 그 사진을 마음에 들어 했다.


대학 안으로 사람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인파 속에서 금세 진이 빠졌고, 대여한 학사복과 학사모를 반납하고 정문으로 향했다.


나는 말했다. “이제 어디 갈래?”


“밥 먹으러 가자. 오늘 뷔페에 갈 거야. 예약도 미리 했어.”


“벌써? 내가 밥 사야 되는데.”


“내 졸업식인데, 왜 네가 사? 내가 사야지.”


“그런가?”


“그게 아니라도 맨날 너한테 받기만 할 수는 없지.”

이전 14화평행선의 교점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