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학교 근처 뷔페에 갔다. 역시 사람이 많았다. 인영이 예약한 덕분에 우리는 곧장 자리를 잡아 앉았다. 우리는 하얀 접시를 들고 먹을 것을 담았다. 나는 딱딱한 음식을 제외하고 음식을 골라 자리로 돌아왔다. 우리는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인영이 금방 접시를 비우더니 내 먹는 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왜 그렇게 봐?”
“아니, 그냥. 너도 다 먹으면 같이 갔다 오게.”
“먼저 갔다 와도 돼.”
“그냥 그러기 싫어서. 그렇다고 급하게 먹지는 마. 천천히 먹어.” 인영은 음료수를 마시고 말을 이었다. “고마워. 네가 오지 않았으면 나는 오늘 좀 외로웠을 거야.”
“그랬을까?”
“사실 아빠 생각이 많이 나. 고등학교 졸업식 때는 몸이 안 좋으셔서 같이 시간을 못 보냈지만, 중학교 졸업식에서는 같이 자장면을 먹었거든.” 나는 입에 음식을 넣지 않고 마저 씹어 삼켰다. 나는 인영과 눈을 마주쳤다. “미안. 밥 먹는데 이런 얘기나 하고.”
“괜찮아. 나는 상관없어. 네가 말하고 싶으면 다 말해도 돼. 오늘 네 졸업식이잖아. 네 마음대로 해도 괜찮아. 부모님도 너한테 그러셨을 거야.”
“그렇게 말하니까 너도 내 가족 같아.”
“사실 아까 학교에서 사진 찍으면서 생각났는데……. 괜찮으면 아버지 사진 보여줄래?”
“그래도 돼?”
인영은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쓸어 넘기더니 금세 내게 건네주었다. 가족사진이었다. 인영의 얼굴은 지금보다 앳되기는 했지만 비슷했다. 남동생은 인영보다 키가 훨씬 컸다. 부모는 인영의 앞에 나란히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언제 찍은 거야?”
“고등학교 때. 아빠가 몸이 안 좋아지기 전에 찍은 거야.”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병약한 기색은 없었다. 마른 체형이지만 건강해보였다. 인영은 어머니의 얼굴과 아주 비슷했지만, 두 눈만은 아버지의 눈을 빼닮았다. 진지하고 무게 있는 눈이었다.
인영이 물었다. “어때?”
“좋아 보여. 다들 행복한 것 같아.”
“그렇지? 그때는 대부분 행복했어.”
인영은 나에게 휴대폰을 돌려받으며 물었다.
“너는? 나도 가족사진 보여줘.”
나는 가족사진이 없다고 했다. 가족의 얼굴이 들어간 사진도 없다고 했다. 인영은 이유를 물었다. 나는 가족들이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했다. 인영은 아쉬워했지만, 나는 다행이었다. 설령 가족사진이 있다고 해도 인영에게 보여주지 않을 것이었다. 누구에게도 가족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취업은 어떻게 됐어?”
“잘 안 되고 있어. 그때 그 회사를 거절한 이후에 이름 들어보면 알만한 회사도 많이 지원했거든. 근데 면접 보러 오라는 데는 별로 없어. 서류에서 거의 다 탈락이야. 아무래도 뒤늦게 취업을 준비했으니까, 내가 많이 부족한가봐.”
“그런 건 아닐 거야. 수석으로 졸업한 인영이 너도 힘든 거 보면, 요즘 취업하기가 정말 어렵긴 한가 보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어. 근데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그럼? 또 다른 이유가 있어?”
“그냥 내 문제. 다들 취업이 힘들다 해도 될 사람은 다 돼. 처음엔 정신이 없어서 별 생각 없었는데, 옷 차려입고 면접 갔다 오는 길에는 정말 온갖 생각이 들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이 너무 힘들고 지치거든. 그래서 자책도 많이 하고 후회도 하고 그래. 나 자신한테 다시 묻기도 하고. 그때 내가 말했지? 나한테 중요하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다시 생각해야겠다고. 근데 그런 생각 자체가 사치야. 어쩌면 내가 늦게 고민하기 시작해서 정확히 말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주변의 사람들도 다 그런 것 같거든. 다들 숨은그림찾기를 하고 있어.”
“숨은그림찾기?”
“우리 어렸을 때 했던 거. 나는 아빠가 신문을 다 보고 나면 꼭 같이 숨은그림찾기를 했거든. 너도 기억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취업 준비는 마치 숨은그림찾기 같아. 찾아야 하는 그림이 없는 숨은그림찾기. 나는 회사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나 인재상에 맞춰서 나의 삶을 샅샅이 찾는 거야.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거지. 회사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나는 한 번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자소서를 안 쓸 수는 없잖아. 그래서 나는 몰래 조금 지어내. 자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거지. 사실 그들이 찾으라는 그림은 내게 없다는 걸 내가 잘 아니까.” 인영은 젓가락을 들고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그들이 젓가락을 찾으라고 한다고 해봐. 그러면 나는 속으로 젓가락, 젓가락, 젓가락, 되뇌면서 내 삶을 돌아보는 거야.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젓가락은 없는 거지. 그러면 나는 멀리 떨어진 막대기 두 개를 슬쩍 가지고 와. 그리고 젓가락이라고 우겨. 이거 이렇게 보여도 젓가락이에요, 하면서 자소서든 면접이든 꺼내 보이는 거야. 하지만 내가 가장 잘 알아. 이건 젓가락이 아니잖아.”
“인영이 네가 젓가락이라고 하면 젓가락인거지. 사실 아무도 모르지 않아? 네가 들고 있는 그게 막대기 두 개인지 젓가락인지.”
“아는 것 같아.”
“어떻게?”
인영은 젓가락을 가지런히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들은 틀린그림찾기 선수야, 내가 들고 있는 게 젓가락이 아닌 걸 바로 알아보는 것 같아. 어쩌면 내 스스로가 젓가락이 아닌 걸 알고 있어서 티가 났을 수도 있고. 아무튼 그래.”
나는 어릴 적에 숨은그림찾기보다 틀린그림찾기를 더 좋아했다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인영에게 우울한 낯빛으로 말을 붙였다.
“스스로에게 아무리 물어도 소용없어. 아직도 내가 도대체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인영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인영의 뒤쪽에서 빨간 것이 어른거렸다. 나는 살짝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뒤쪽 탁자에 앉은 사람의 인상착의를 확인했다. 빨간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뒷모습이 재준의 인상이었다. 어쩌면 재준도 동기들을 축하하기 위해 졸업식에 왔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그가 탁자 한쪽으로 접시를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모습을 살폈다. 아쉽게도 재준이 아니었다. 인영은 나의 시선을 따라 뒤를 확인하고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그사이 우리가 말한 단어들을 차근히 곱씹었다.
“근데, 틀린그림찾기가 아니지 않아? 다른그림찾기가 맞는 말 같은데?”
“그런가?” 인영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틀리다’의 부정은 맞다, ‘다르다’의 부정은 같다. 처음부터 같지 않은 그림을 찾았던 거지, 맞지 않은 그림을 찾는 게 아니잖아.”
“그러네.” 인영은 명제를 증명할 때처럼 궁리하는 표정이었다.
“인영아, 너는 잘 해낼 거야. 그동안 그 힘든 수학도 잘 해왔잖아. 취업보다 수학이 더 힘든 일 아니야?”
“아니. 가장 힘든 일은 나를 속이는 거야. 지금 나는 나를 속이고 있어. 중요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일을 정말 원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기분이야. 결국 나도 역할극을 하는 중이야. 서류나 면접에서 자꾸 탈락하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 어쩌면 그들도 내가 연기하고 있는 걸 알아보는 것 같다고, 그들도 내가 회사에 들어와서 일하기 원하는 척 거짓말을 하고 있는 줄 알아보는 거야. 그런 건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으니까, 나도 그들의 말과 행동이 다른 걸 알아보듯이. 그래서 가끔은 내 정신을 마비시키고 싶어. 아무 생각도 못하게. 아무 괴리와 거짓도 느끼지 못하도록.” 인영의 표정은 몹시 침울했다.
“너 많이 지친 것 같아. 나는 군대라도 다녀왔지. 너는 지금까지 한 번도 쉰 적 없잖아. 잠깐이라도 쉬는 건 어때?”
“그럴지도 몰라. 그런데 나는 쉴 시간이 없어. 내 차례가 임박했거든. 가족을 지키려면 이제 내가 나서야 돼. 그동안 정말 몰랐어. 가정을 유지하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걸 말이야. 처음에는 아빠였고, 그 다음은 엄마, 이제 내 순서야.”
인영은 잠시 시선을 피하더니 음료수를 마시고 천천히 입을 뗐다. “나, 취업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부모님을 원망했어. 내가 한 번은 도서관 아래에서 자소서를 한창 쓰고 있었거든. 언뜻 보니까 바로 옆 사람도 취준생인 것 같더라고. 갑자기 그 사람이 전화를 걸었어.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뭐라고 하는지 다 들렸는데, 엄마한테 서류 통과했다고 말하는 거야. 속으로 엄청 부러웠어. 근데 그 엄마가 고생했다고 이십 만원을 보냈다는 거야. 딸은 주변에 자랑하는 것처럼 금액을 정확히 말하면서, 왜 이렇게 큰돈을 보냈냐고 물었어. 엄마가 무슨 말을 했겠지? 딸은 고맙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어. 우습게도, 그때 진심으로 부모님을 원망했어. 일찍 돌아가신 아빠도, 지금까지 버텨온 엄마도 다 원망했어. 내가 돈이 많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으면 이런 걸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그냥 내가 하고 싶던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못된 질문을 하기 시작한 거야. 결국엔 스스로에게 물었어. 내가 지금 도대체 뭘 하는 거지? 내가 도대체 뭘…….” 인영은 말을 마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곧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미안. 잠깐 화장실 좀.”
인영은 사라졌다. 나는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이 음식을 담으러 분주하게 움직였고, 자리에서 담아온 음식을 먹었다. 꽤나 어수선했다. 나는 그 가운데 앉아 심란했다. 내 앞에서 인영이 슬퍼하는 것만으로도 내 잘못이 있는 것 같았다. 인영은 잘못이 없었다. 그녀는 강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이제야 부모를 원망했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몫을 감당하려고 했다. 잘못이 아니었다. 인영은 스스로를 속인다고 했다. 사람들이 알아본다고 했다. 그럼에도 다시 지원하고 면접을 보고 탈락했다. 잘못이 아니었다. 오히려 잘못은 내가 하고 있었다. 다 내 잘못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고,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의 빚과 어머니 몰래 시작한 치아 교정을 생각했다. 나는 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인영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빨간색 모자를 쓴 사람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인영은 접시에 직육면체의 브라우니 하나를 담아 나타났다. 눈은 여전히 우울했지만, 입은 엷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어색하게 마주하며 식사를 했다. 나는 한 접시를 더 먹었고, 과일을 마지막으로 먹었다. 인영은 브라우니를 반쯤 먹고 남겼다. 맛이 달지 않고 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