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앞에 24시 카페로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 창가 옆에 널찍한 4인용 자리를 차지했다. 버티고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글이 아니라 글자를 읽었다. 글자는 문장의 부서진 파편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겉돌았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메울 수 없었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해가 지자 배가 고파왔고 부드러운 재료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배를 적당히 채우고 다시 책을 읽었다. 글자를 아무리 읽어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읽었던 단락으로 거듭 돌아왔다. 상관이 없었다. 차라리 책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카페는 한적했다. 카페 한가운데 두 사람이 마주 앉았고, 구석에서는 한 사람이 노트북의 화면을 피곤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자정이 되기 1시간 전이었다. 진동을 느끼지 못했는데, 어머니의 부재중 전화가 하나 남아 있었다. 나는 아예 휴대폰의 전원을 끄고 가방에 집어넣었다. 불쑥 정신이 아득해서 눕다시피 몸을 의자에 기댄 채로 망연히 카페 안을 응시했다. 벽에 걸린 사진이 눈에 띠었다. 수진이 언급한 사진이었다. 지구의 밤. 나는 가장 밝은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다가 지구의 둥그런 수평선을 훑어보았다. 저 너머는 밤이 아니라 낮일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지구의 사진이 수진과 함께 보았던 그 사진이 맞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비슷한 다른 사진일지도 몰랐다.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때 마주했던 그녀는 수진이었을까. 수빈이었을까. 그마저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녀와 그토록 많은 말을 주고받았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수진 같기도 했고, 수빈 같기도 했다. 내가 누구에게서 떠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졸음이 몰려왔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책은 배에 떨어져 있었다. 꺾여 있던 목을 바로 세우자 뻐근한 통증이 일었다. 고개를 돌리며 무겁고 거북스러운 몸을 풀었다. 여기저기가 쑤셨다. 몸이 아직도 잠든 듯이 호흡소리는 깊었다. 피곤한 것도 같았고, 명료한 것도 같았다. 입이 텁텁했다. 화장실에 가서 양치를 하고 대충 세수를 했다. 휴지로 물기를 닦아내고 자리로 돌아왔다. 유리창 너머 검푸른 옷을 덧입은 세상을 구경하는데 갑자기 안쪽 손목이 따끔거려 소매를 들췄다. 길게 상처가 나 있었다. 아마도 어머니가 낸 상처인 듯했다. 노르스름한 살 위에 벌건 상처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점차 하늘이 밝아왔고, 거리에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몸을 한껏 웅크리고 다녔다. 카페 바로 앞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렸고, 버스가 도착하면 몇 사람이 몸을 실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차량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인도 위로 사람들이 지나갔고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모두 역 입구로 줄지어 들어갔다. 거리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디론가 떠났고,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타났다. 행인 중에 몇 명은 길을 걷다가 카페로 들어왔다. 조용하던 카페 안으로 커피 내리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아침을 먹고 싶지 않아서 다시 책을 들었다. 그림을 보듯 책을 읽었다. 종이를 넘기고 그 쪽을 한꺼번에 눈에 담았다. 검은 글자가 보였고 흰 여백이 있었다. 그 중 한 문단이나, 한 문장 정도를 읽고 다시 종이를 넘겼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카페를 오갔다. 나는 늦은 점심을 먹고, 책을 보고, 간혹 새우잠을 자고, 창밖을 보고, 지나는 사람을 구경했다. 그렇게 다시 하루를 홀로 보냈다. 해는 다시 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어디선가 돌아왔다.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지하철 입구에서도 사람들이 계속 올라왔다. 어디론가 걸어갔다. 다시 사라졌다. 다시 밤이었다. 저녁때가 막 지나자 카페 안으로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를 열심히 했다. 그다지 중요한 일 같지는 않았다. 카페 안으로 소음이 들끓었지만 독서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대학생이시죠?”
벌서부터 한숨이 나왔다. 형광등 아래로 창백한 얼굴의 두 여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답을 하지 않은 사이에 두 여자는 자연스레 내 앞 자리에 앉았다.
“앉으라고 말한 적 없는데요?”
강마른 여자는 당황한 눈치였지만, 통통한 여자는 아랑곳 않고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학생 맞으시죠?”
“그게 중요해요?” 나는 그 여자를 노려보았다.
“대학생 아니세요?”
“제가 누군지 정말 모르세요?”
통통한 여자가 바로 답했다. “모르겠는데요.”
두 여자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강마른 여자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됐어요. 됐으니까. 이제 그만 하고 돌아가세요.”
“그러지 마시고 얘기 좀 해요. 혹시 교회 다니세요?”
나는 다 알고 있었다. 전철역 출구를 지날 때면 그들을 매번 마주했고, 여자의 말을 이미 수십 번 들었다. 그 여자가 내게 무슨 질문을 할지, 대화를 한다면 무슨 얘기를 할지 뻔했다. 대학생. 성경 말씀. 옳고 그름. 이미 한 번 더 들은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성가셨다.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눈을 꾹 감은 채로 답했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거든요. 이제 그만 가세요.”
“다름이 아니라 저희는 성경 말씀을 읽는……”
나는 눈을 부릅뜨고 말을 무질렀다. “저기, 오늘은 그냥 돌아가세요. 제가 힘들어서 그래요.”
“아니, 말씀 좀 들어……”
“제발 그만 좀 하라고요! 제 말이 말 같지가 않아요? 그만하라고 몇 번을 얘기해요? 예?”
카페는 삽시간의 조용해졌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두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도망치듯 가방을 싸고 카페를 나왔다. 길가로 나와 내가 앉아 있던 카페 2층 창가 자리를 올려다보았다. 두 여자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통통한 여자는 눈물을 훔쳤고, 강마른 여자는 곁에서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나는 다시 갈 곳이 없었다. 고민하다가 동네 찜질방으로 들었다. 곧장 옷을 벗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가만히 앉아 있자 잠이 쏟아졌다. 나는 몸을 씻고 휴게 공간에 자리를 잡아 누웠다. 아무도 잠을 방해하지 못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난 듯 했는데, 아직도 새벽이었다. 주변에는 사람이 적었다. 한쪽에는 두 남녀가 몸을 부둥켜안고 잠을 자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저씨 한 명이 대자로 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나는 뜬 눈으로 누워 있다가 목욕탕으로 돌아왔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뜨거운 물에 오랫동안 몸을 담갔다. 뜨거운 물이 흐르며 몸을 훑고 지났다. 성기가 간지러워 만지작거렸다. 수면 위로 인영의 얼굴이 떠올랐고, 온몸으로 수진의 감각이 솟았다. 나의 것이 물속에서 주체할 수 없이 커지고 말았다. 나의 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곤란했다. 그 와중에 오른쪽 손목의 상처가 따끔거렸고, 온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물속에서 일어나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어머니의 몸무게 탓인지 사타구니에도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나는 하반신을 얼른 물속에 숨기고 잠시 기다렸다.
몸을 씻고 찜질방을 나왔다. 몸속으로 한기가 스몄다. 나는 팔짱을 끼고 걷기 시작했다. 어둡고 조용한 동네를 돌아다녔다. 정처 없이 걷고 걸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하얀 화살표가 그려진 일방통행로 앞에 서 있었다. 그 길 위로 가로등에 비친 나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 언덕을 마주했다. 그 위로 가로등 불빛이 보였다. 인적 없는 길을 비추고 있었다. 전깃줄이 복잡하게 이어졌다. 나는 천천히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깊은 정적이 흘러 아무도 살지 않는 동네 같았다. 사람들이 재난을 피해 집을 버리고 떠난 듯 쓸쓸했다. 나는 거꾸로 그곳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언덕은 유독 높고 길었다. 끝이 날 것 같지가 않았다.
저 멀리 편의점의 내부 조명이 밝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내심 안도했다. 나는 목이 말라 편의점에 들어갔다. 한참을 고민했다. 바나나우유를 하나 사려다가 멈칫했다.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주 어릴 적에 일이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새벽에 아버지는 나를 깨웠다. 나는 가지 일어나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아버지는 내 몸을 일으켜서 따뜻하게 옷을 입혔다. 같이 동네 목욕탕으로 향했다. 새벽은 항상 추웠다. 내가 어깨를 웅크리고 있으면 아버지는 매번 말했다. 남자는 어디서나 어깨를 펴고 다녀야 한다고 했다. 추위에도 억지로 어깨를 펴야만 했다. 목욕탕으로 가는 길 내내 마주치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목욕탕에는 사람이 많았다. 작은 목욕탕에는 이미 예닐곱 명이 있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있었다. 나도 그 뜨거운 물에 발을 담갔지만, 도무지 몸을 넣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막상 물에 몸을 담그면 뜨거운 줄 모른다며 부추겼다. 하지만 어린 나는 들어갈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아저씨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찬물을 틀었다. 아저씨들은 나를 보며 흔쾌히 허락했다. 물이 넘치고 적당한 온도가 되면 나는 몸을 담갔다. 한참 때를 불리고 나왔다. 아버지는 나의 온몸에서 때를 밀어 주었다. 다 밀고 나면 피부는 벌겋게 올라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넓은 등을 밀었다. 내심 복수하듯 힘을 주어 밀었지만, 아버지는 시원하다고만 했다. 나는 이내 포기했다. 그렇게 몸을 씻고 나오면 하늘은 밝았다. 거짓말처럼 아침이 되어 있었다. 목욕탕 앞 슈퍼마켓에서 아버지는 토마토주스를 사줬다. 나는 바나나우유를 먹고 싶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꼭 토마토주스를 사줬다. 그게 몸에 좋고 맛도 좋다는 이유였다. 아버지는 토마토주스를 벌컥벌컥 맛있게도 마셨다. 나는 그 모습을 올려다보다가 마지못해 따라 마셨다. 맛이 너무 없어서 코를 막고 단숨에 들이켰다.
이제는 그 맛이 조금은 달라졌을지 궁금했다. 나는 바나나우유를 포기하고 토마토주스를 골랐다. 편의점 한 편에 앉아 주스를 들이켰다. 그때처럼 맛은 정말 없었다. 주스를 비우고 편의점을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입김이 오르다가 하늘 위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