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의 교점 # 89

by 청화

현관문을 열었다. 신발장이 열려 있었고, 우산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성한 게 없었다. 여러 가지 색깔의 우산이 부서져 있었다. 나는 발등으로 우산을 밀어내고 집으로 들었다. 새벽인데도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현관 앞처럼 집은 박살난 상태였다. 눈에 보이는 모든 가구와 가전들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어머니가 아끼는 화초와 화분이 깨져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고, 흙들이 지저분하게 흩뿌려 있었다. 작은 나무 십자가가 바닥에 내팽개쳐 있었고, 깨진 거울 조각도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TV는 거미줄처럼 금이 나 있었다. 선반은 무너졌고, 그릇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거실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머니는 거실 한 가운데에서 느릿한 속도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인기척이 들리자 어머니는 얼굴을 들어 나를 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피멍이 보였다. 어머니는 나와 눈을 마주쳤지만, 나를 보지 못한 것처럼 공허하게 시선을 떨어뜨렸다. 잔해 속에서 무엇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물체를 집어 반대쪽 잔해 속에 던져 옮겼다. 어머니의 의도가 전혀 읽히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발을 디디고 들어가 안방을 슬쩍 살폈다. 거실과 마찬가지였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어머니의 살림살이는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 쓰러져 있었고, 부서져 있었다. 서랍 안에 있던 물건들이 엎질러져 한데 섞여 있었다. 돌아와 나의 방 앞에 섰다. 문을 열었다. 책상. 책꽂이. 작은 옷장. 거울. 어둠 속의 방은 그대로였다. 전혀 다른 곳에 발을 들인 듯했다. 부리나케 거실로 돌아왔다. 눈앞에 광경처럼 속이 복잡하게 올랐다. 어머니는 계속 몸을 움직였고, 손으로 무언가를 집었다. 손가락에는 반지가 없었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는 맑은 공기를 찾듯 집을 뛰쳐나와 빌라 앞 계단에 쪼그려 앉았다. 산산조각이 난 집안의 광경이 머리 여기저기를 쑤시듯 맴돌았다. 찬바람을 쐬었는데도 현기증이 가시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정신을 잃고 쓰러질 듯했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서 멀리 벗어나기를 바랐다. 몸을 일으켜 억지로 걸었다. 무거웠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가방의 무게마저 성가셨다. 가방을 벗어 전봇대 아래로 힘껏 던졌다. 쌓여 있던 쓰레기봉투 위로 가방이 떨어졌다.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미끄러져 뒹굴더니 쓰레기봉투 앞으로 떨어졌다. 나는 편의점을 지나 사람 한 명 지나지 않는 언덕을 걸어 내려왔다. 일방통행로에도 인적이 없었다. 나의 오랜 질문과 이름을 되뇌며 역 주변을 서성이다가 지하철 첫차를 탔다. 혼자였다.


전철은 선로 위를 달렸다. 흔들렸고 정지했다. 누군가가 타고 내렸다. 전철은 평행할리 없는 선로 위를 잘도 달렸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직접 그 끝에 도착한 후에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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