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의 교점 # 27

by 청화

다음날에는 비 소식이 없었다. 하루 종일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예보를 귀담아 들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창문을 열고 날씨를 확인했는데, 정말로 구름 한 점이 없었다. 오랜만에 쾌청한 하늘이었다. 나는 반팔 티에 남방 하나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매일 같이 들고 다니던 우산은 일부러 두고 집을 나왔다. 짐이 하나 없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편해서 발걸음마저 가벼웠다. 언덕을 내려와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달렸다. 목적지에 도착할 쯤에 지하철은 한강 다리 위를 내달렸다. 좋은 날이었다. 나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져 서울 도심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멀리 보이는 산, 남산 타워, 높은 건물들,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그 위의 다리들.


지하철은 역에 도착했고, 낯선 마음으로 출구로 나갔다. 파란 하늘 아래 수진이 서 있었다. 그녀는 날씨만큼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는 자연스럽게 어린이대공원으로 들어갔다. 나는 수진에게 물었다.


“그동안 뭐하면서 지냈어?”


“집에 있었어. 책도 읽고, 친구들도 보고. 너는?”


“나도 비슷해.”


“맞다. 나는 어제 과학 다큐멘터리를 하나 봤어.”


“전공자답네.”


“드라마보다는 그런 다큐멘터리가 더 재미있지 않아?”


“무슨 내용이었는데?”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럼. 내가 찾아보지는 않지만 그런 얘기 재밌잖아. 누가 정리해주면 더 재미있고.”


수진은 싱긋 웃어 보였다. “자연에는 네 가지 힘이 있대.”


“네 가지 힘? 물, 불, 풀, 전기?”


내가 민망할 정도로 수진은 크게 웃었고, 나는 머쓱해서 따라 웃고 말았다.


“이건 물리 이야기라고 했잖아. 뭐냐면, 중력, 약력, 강력 그리고……. 하나 뭐였더라, 아. 전자기력. 이 네 가지 힘으로 우주는 움직인대. 근데 재미있는 건,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네 생각이 난 이유이기도 한데, 이 네 가지 힘을 하나의 통일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거야. 네 가지 힘을 하나로 설명하는 궁극의 공식을 만들려고 한다는 거지. 그러면 자연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공식이 완성되는 거야. 근사하지 않아?”


“그게 잘 연구되고는 있고?”


“다들 노력하는 거지. 과학자들이 시도하고 있어. 더 신기한 거 알려줄까?”


“또 뭔데?”


“중력 있잖아. 중력을 매개하는 물질은 중력자라고 부르는데, 그게 뭔지 모른대. 단지 매개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유추할 뿐, 실험적으로 알아내지는 못한대. 그 사이를 아직 연결할 수 없는 거야. 어떤 힘이 전달되려면 분명 매개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거든, 그니까 중력을 매개하는 것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식으로, 어떻게 존재하는지는 모른다는 거지.”


“수학 얘기 같다.”


“어떤 부분이?”


“존재한다는 말이나,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 알아내야 한다는 말. 교수님이 자주 하는 말인데, 나는 더 설명할 수가 없어. 사실 나도 잘 몰라서.”


“괜찮아.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얘기 재미있지 않아?”


우리는 원숭이를 보러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원숭이, 침팬지, 오랑우탄이 살고 있었다. 우리는 유리창으로 가로막힌 우리 안을 살폈다. 모두 어딘가 초조하고 힘에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로 앉아 털을 고르기도 했고,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기도 했다. 우리가 구경하러 들어왔지만, 정작 그들이 우리를 구경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수진은 아기 긴꼬리원숭이를 보며 좋아했다. 아기는 엄마 원숭이 등에 업혀 있었다. 원숭이가 나무다리와 밧줄 위를 누비고 다녀도 아기 원숭이는 절대로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나는 그들을 눈으로 좇았다. 수진도 한참이나 아기 원숭이를 지켜보다가 말했다.


“아기들은 어떤 동물이나 다 귀여워. 그치?”


수진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웃으며 끄덕였다. 우리는 건물 안을 한 바퀴 돌며 우리와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른 동물을 모두 보고 나왔다. 우리는 다시 공원을 걸었다. 나무 곁을 걸었다.


수진이 말했다. “공원에 오면 좋기는 한대,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들어. 인위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원래는 나무들과 잔디가 이렇게 보기 좋게 자라지는 않을 거 아니야. 원래 그대로 두면 나무줄기도 여기저기 뻗치고, 풀들은 인도 위를 뒤덮을 거고. 누군가 계속 관리를 하고 사람들이 다니니까 이렇게 자라고 있지. 그래서 공원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는 사실 자연스럽지 않게 자리를 잡고 자라는 거야. 인간을 위해 억지로 마련된 자연이라고 해야 하나?”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까 본 원숭이들도 원래 여기서 사는 애들이 아니잖아. 진짜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여기로 데리고 왔지. 마치 그들을 위해 모든 게 준비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도 다 인간이 억지로 마련한 것에 불과해. 원숭이들은 여기가 더 만족스러울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게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어.” 나는 아기 원숭이의 새카만 눈을 기억했다.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연스러운 건 거의 없는 것 같아. 가끔 그걸 마주할 때마다 기분이 좀 그래.”


인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코끝에 차가운 느낌이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먼 하늘은 맑았지만, 공원 위로 먹구름이 껴 있었다. 이마와 머리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다가, 그 주기가 빨라졌다. 갑자기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삽시간에 빗방울이 굵어졌다. 우리는 공원 한복판에서 비를 피할 곳을 찾아 헤맸다. 주변에는 상점도 없고 마땅히 비를 피할 곳도 없었다. 우리는 겨우 천정이 있는 곳을 찾았는데, 기다란 벤치 세 개가 모여 있고 천정에는 얼기설기 초목이 자라 올라탄 장소였다. 그 사이로 군데군데 빗물이 계속 떨어졌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비가 내리는 공원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리 넓지 않은 잔디밭 앞이었다. 간혹 떨어지는 빗방울에 닿지 않으려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몸에 닿지 않기 위해 어색하고 긴장된 거리를 유지한 채로 텅 빈 공원 한 가운데에 단 둘이 남아 있었다. 빗소리와 숨소리가 이어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가슴이 떨리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하게 신경을 썼다. 나는 힐끔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머리카락은 조금 젖어 힘없이 흘러내렸고, 몸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하얀 손목을 보다가 남방을 벗었다. 그녀의 어깨에 걸치자 놀란 듯 고개를 나에게로 획 돌리더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잔디밭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무언가를 기다렸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분명 무언가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시선은 빗속에 고정한 채 그녀가 갑자기 입을 뗐다. “영수야, 우리가 갇힌 것 같아.”


“그런 셈이지.”


“사실은 갇힌 게 아닌데.” 나는 다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았다. 수진의 말을 기다렸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빗속으로 걸어 나갈 수 있잖아. 비는 우리에게 유해하지 않아. 우리에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해. 우리를 상처 입게 하지도 못하고, 비를 맞는다고 해서 무언가를 잃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우리는 왜 여기서 비를 피하고 있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만약 너는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할 거야?”


“우리 오늘이 두 번째 보는 거잖아. 너무 어려운 질문인 것 같은데.”


“내 말은, 지금 여기서 말이야. 내가 없는 것 말고 나머지는 다 똑같아. 비가 계속 내리고 너 혼자 공원 여기서 비를 피하려고 들어왔어. 계속 기다리는데, 비는 그칠 기미가 안 보이는 거야. 그럼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수진이 실제로는 없다고 생각하며 공원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좀 더 기다릴래.”


“왜?”


“비가 그칠지도 모르잖아.”


“계속 올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지.”


“그럼 그때는? 그래도 계속 기다릴 거야?”


“나는 계속 기다릴래. 사실 비 내리는 걸 보는 것도 꽤 좋아하거든.”


“그래?”


“응.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리는 비를 볼 거야. 수진이 너는?”


“나는…….” 수진은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도 기다릴래. 여기서 계속.”


“비가 계속 내려도?”


“비가 계속 내려도 나는 여기서 기다릴 거야. 계속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내 앞으로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을 만나는 거야. 나는 그 사람 우산 속으로 뛰어 들어갈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질 거야.”


“쉽지 않네.”


“어려울 것 없어. 우리가 어렵게 생각해서 어려운 거야. 나는 아주 쉬운 문제라고 믿어. 사랑에 빠지는 거.”


“미안. 쉬운 문제도 괜히 의심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게 내 습관 같은 거야.”


“미안할 것 없어. 나도 그런 걸.”


비는 더욱 굵어지고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완전히 빗속에 갇혀서 빗소리만을 들었다. 바로 공원 옆은 대로였고, 대학도 있었고, 시끌벅적한 길거리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것처럼 외따로이 서 있었다.


그녀가 손을 문득 내밀었다. “손 잡아줘.”


나는 놀라 그녀를 살폈다. 담담한 얼굴이었다. 나는 심장 소리를 빗소리에 숨긴 채, 그녀의 손을 잡았다. 생각보다 따뜻하고 단단했다. 첫 만남에서 내 손등을 어루만지던 수진의 손길이 떠오르면서 가녀린 비를 맞는 것처럼 몸 여기저기가 간지러웠다.


갑자기 수진의 손에 힘이 불끈 들었다. “셋, 하면 뛸 거야. 하나.”


“응?” 나의 되물음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 숫자를 셌다.


“두울.”


“잠깐만!”


“셋!”


그녀는 나의 손을 잡고 빗속으로 달려 나갔다. 빗방울이 머리와 얼굴 위로 떨어졌다. 시야가 흐렸다. 그녀의 손을 놓칠 뻔했지만, 수진은 나의 손을 꼭 잡아 쥐었다. 빠지지 않도록 아주 강하게 손을 붙들었다. 우리는 그대로 빗속을 달렸다. 그녀는 멈출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어디까지 뛰어야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차츰 호흡이 가빠졌다. 바닥에 물이 튀어 올랐고, 옷은 젖어갔다. 온몸에 빗방울이 떨어져 부서졌다.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단지, 그녀를 따라 빗속을 달릴 뿐이었다. 나무 밑을 달렸고, 상점 옆을 지나쳤다. 놀이터를 지나면서는 마치 수진과 내가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아주 어릴 적으로 잠시 되돌아가 그 시절을 경험하는 것만 같았다. 이상하게 목이 간지러웠다. 수진을 쫓으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빗물이 흐르는 얼굴을 훔치며 입 주변을 거듭 가렸다가 이내 체념했다. 더욱 속도를 내어 뛰며 수진을 살폈다. 그도 나처럼 웃고 있었다. 우리는 가끔씩 눈을 마주칠 뿐,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정신없이 공원을 질러 달려 나갔다. 저 멀리 정문이 보였다.


수진은 공원을 벗어나자마자 걸음을 늦추었다. 비는 여전히 쏟아졌지만 우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수진은 그제야 나의 손을 놓아주었다. 나는 수진의 어깨에 걸친 남방을 양손으로 들어 올려 머리 위로 비를 막았다. 나는 숨을 고르고 겨우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디, 가려고?”


“우리 집.” 수진은 호흡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같이 가자. 그렇게 쫄딱 젖어서 지금 어디를 가겠어. 여기서 꽤 가까워. 비 맞은 김에 그냥 걸어가도 괜찮아?”


“상관없어.”


“고마워.” 수진은 눈을 올려 남방을 보았다. “그러니까 혼자 무슨 벌서고 있는 것처럼 그러고 있지 않아도 돼. 비를 막아도 소용없잖아. 이미 다 젖었는걸.”


우리는 다시 손을 잡고 걸었다. 간혹 우산을 쓰고 지나는 행인들이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별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편의점을 지나도 우산을 살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로 옆을 한참 걷다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수진은 고층 오피스텔 입구로 나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