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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택 Nov 06. 2020

새끼 나귀를 타신 분

산책의 시간 / 예수 그리스도 003


  마가복음 11장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나온다.

  바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이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다. 그때 그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은 소리 질러 ‘호산나’를 외치며 대대적으로 찬송하였다. ‘호산나’는 ‘구하옵나니, 이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이다(시 118:25). 따라서 그 환호성 속에는 바로 그분이 메시아(그리스도)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었다. 누가복음에서는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라고 찬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눅 19:38).


  그런데 바로 그런 분이 나귀, 그것도 어린아이나 탈 수 있는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으니, 어딘가 여간 어색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왕처럼 말을 타고 화려하게 등장하시지 않고 새끼 나귀를 타고 누추하게 입성하셨던 것일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5백여 년 전에 예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였다. 선지자 스가랴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예수님의 모습을 이렇게 예언하였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따라서 예수님은 자기 생각이나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셨던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울 왕이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을 때, 사무엘은 그에게 이렇게 책망하였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3).


  그러므로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으셨다면, 점을 치고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은 죄를 범함으로써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희생양이 되실 수 없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되는 일까지 생기게 된다. 차라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예언)에 순종하신 것이 그토록 중요하였던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분이 겸손하신 분이셨기 때문이다. 스가랴는 그분이 ‘겸손하셔서’ 새끼 나귀를 타신다고 예언하고 있다. 만약 그분이 겸손하지 않으셨다면, 겸손이 지향하고 있는 섬김의 길을 걸어가시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 땅에 오신 궁극의 목적인 십자가의 잔도 마시지 못하였을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겸손순종의 도를 제시하고 있다. 그분이 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고, 만왕의 왕이셨음에도 그렇게 하셨다면, 그분의 종인 우리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더구나 겸손하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열매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사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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