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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택 Nov 09. 2020

부활은 역사적 사실일까?

산책의 시간 / 예수 그리스도 005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고전 15:3-4).


  그는 그 복음을 헛되이 믿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그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하였다(고전 15:1-2;롬 1:16). 그런데 여기에서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거짓이나 허상이 아닌 실제, 즉 역사적 사실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약속할 수 없고, 더구나 하나님의 능력도 될 수 없다.




  다음과 같은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첫째, 제정 로마 시대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의 역사 기록물인 「연대기」 15권 44장 2절에서 빌라도 행정관에 의해 처형된 예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둘째,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는 독일의 저명한 자유주의 신학자 게르트 뤼데만도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고 시신도 매장되었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 두 사람뿐만 아니라 현대의 많은 사람, 심지어 수많은 불신자도, 그분의 십자가에 대해서는 대부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분의 부활에 대해서는 역사 속에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고 믿는 데 주저하고 있다. 그들은 그분의 죽음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왜 부활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 것일까? 현대 철학의 근간이 되는 자연 과학적인 사고, 즉 ‘이성’이라고 하는 잣대로 부활의 실제를 따지기 때문에 그렇다. 그 기준에 비추어볼 때, 부활은 그 판단의 영역 밖에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부활은 인정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생각처럼 부활은 역사적 사실(실제)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아니다. 부활은 엄연히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다. 그 사건이 이성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이성의 힘으로 이해할 수 없을 뿐이지,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치 인간의 마음과 양심을 자연 과학적인 이성이 증명하지 못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분의 부활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역사 속에 생생하게 박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부활에 관한 저명한 신학자 게리 하버마스에 따르면, 1975년부터 예수의 빈 무덤에 관하여 쓴 2,200여 개의 문헌을 조사한 결과 75%의 학자가 예수의 무덤이 빈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둘째, 철저한 무신론자였다가 유신론자가 된 앤터니 플루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예수의 부활 관련 증거는 다른 어떤 종교에서 주장하는 기적의 증거보다 월등하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르다.”

  셋째,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은 40일 동안 500명이 넘는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예수를 믿지 않거나 배척하였던 야고보나 바울도 들어 있다. 그래서 부활 사건은 역사적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넷째,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은 목숨 걸고 그 사실을 전하였다. 만약 예수의 부활이 거짓과 허구였다면 그들이 그것을 전하기 위하여 목숨까지 걸 수는 없다.




  특별히 세 번째 내용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5-8). 비록 부활을 자연 이성에 의하여 증명할 수는 없지만, 부활하신 그분을 목격한 사람이 500명이 넘는다면, 우리는 그 사건을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또 믿어야 한다.


  우주 속의 먼지와 같은 우리 인간의 이성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것이 증명할 수 없는 것은 물속에 잠겨 있는 95% 이상의 얼음덩어리보다 많다. 그런 인간이 자신의 이성으로 그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부활의 실제를 부정해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기기만이고 교만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그것을 버리고 겸손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고 영접하는 사람에게 구원을 약속하고 있다(요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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