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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택 Nov 12. 2020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

산책의 시간 / 예수 그리스도 007


  우리 인간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


  인류 역사상 하나님을 볼 수 있었던 사건이 한 차례 있었다. 2천 년 전의 일이다. 바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계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한 번은 예수님의 제자인 빌립이 그분께 이런 요청을 하였다. “주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족하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를 질책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겠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그런 분을 유대인들은 십자가가 못 박아 버렸다.




  그렇다면 지금은 하나님을 볼 수 없을까?


  물론 직접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볼 수는 있다. 사도 바울은 창세부터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분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알려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롬 1:20). 따라서 그 어떤 사람도 그분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다. 지금은 하나님이 자신을 직접 계시하신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더더욱 핑계할 수 없다.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한 바울은, 그분이 지금 진노하시고 그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난다고 경고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렇게 진노하시는 것일까?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 때문이다(롬 1:18).


  여기에서 ‘경건하지 않음’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음’ 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예배를 통해 교제하기 원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불의’는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것도 명백한 죄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러한 죄에 대하여 진노, 즉 심판을 내리실 수밖에 없다. 심지어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와 같은 죄를 범하는 자에게 죽음과 심판을 정하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그러한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하면서 좀처럼 그 죄에서 돌이키기를 거부한다(롬 1:28-32).




  경고의 목적은 심판에 있지 않다. 그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사도 바울은 그 해결책으로 복음을 제시하였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고, 또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에(롬 1:16-17), 복음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는 모든 죄인에게 유일한 해결책이 된다. 복음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고전 15:3-4). 그분은 우리가 죄를 범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셨고, 또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셨다(롬 4:25). 그래서 복음에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 대는 것을 그만두고 그분을 향하여 발길을 돌이켜야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성경은 다음과 같이 약속하고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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