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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택 Nov 18. 2020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산책의 시간 / 믿음 010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면 해(害)를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그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다. 그는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목자 되신 주님이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그를 편안하게 지켜주셨다.




  다윗이 직면하였던 ‘골짜기’는 부정적인 이미지만 담고 있지 않다. 탁 트인 광활한 평지는 강렬한 태양으로 광야가 되기 쉽지만, 골짜기에는 대부분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가 조성되어 있다. 따라서 골짜기는 풍성한 먹거리와 충분한 휴식을 제공해 준다. 골짜기가 양들이 머물기 좋은 곳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골짜기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데 있다. 푸른 풀밭과 물가는 양들에게만 좋은 곳이 아니다. 늑대나 사자 같은 짐승들도 그곳이 쉴 만한 곳이다. 뿐만 아니라, 배고플 때 양들을 습격하여 잡아먹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그러니 양들에게는 그 골짜기가 사망의 음침한 그림자가 항상 드리워진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도 양들이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면서 마치 엄마 품에 안긴 아이처럼 평화롭게 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목자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목자는 ‘막대기’로 굶주린 짐승들로부터 양의 생명을 지킨다. 막대기뿐만 아니라 물매를 사용하여 사자나 곰 같은 짐승들을 잡기도 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도구도 물매였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하였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바로 ‘그 골짜기’와 같다.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가 있는가 하면, 포악한 짐승처럼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존재도 도사리고 있다. 사도 베드로는 그 존재를 ‘마귀’로 규정하면서,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는다고 경고하고 있다(벧전 5:8).


  그런 환경에서 우리를 좋은 곳으로 인도하고 안전하게 지켜줄 목자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를 찾을 수도 없고, 설령 그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는 마귀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이런 결과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을 외면함으로써 원하지 않는 결과를 맞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힘 없고 어리숙한 양과 같은 우리에게 생명과 풍성함을 선물하기 위해서이다. 주님은 이것을 지키시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주셨다. 주님은 또한 평안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이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주신 주님을 우리 인생의 참된 목자로 영접하지 않는다면, 이것처럼 어리석고 허망한 일이 있을까? 우리는 절대 이런 사람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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