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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택 Nov 17. 2020

소생의 길

산책의 시간 / 소망 001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소개하면서, 목자이신 여호와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므로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어진 구절에서는 나의 영혼을 소생시키신다고 노래하고 있다.


  국어사전은 ‘소생’을 ‘거의 죽어가다가 다시 살아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영혼을 소생시킨다’라는 말은, 소생의 반대편, 즉 ‘영혼이 거의 죽어가는 상태’가 전제되어 있다. 이 말을 다윗에게 그대로 적용하면 그가 이런 상태에 처하기도 하였다는 사실이 들어 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다윗은 많은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지만, 자신이 범한 극악무도한 죄로 인해 거의 죽어가는 경험을 몇 차례 맛보기도 하였다.




  우리의 삶이 탄탄대로를 걷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우리 인생은 그보다는 어려움이 더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고, 우리의 미래도 똑같은 모양으로 점철될 확률이 대단히 높다. 심지어 ‘거의 죽어가는 상태’, 즉 그로기 상태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런 상태에 직면하게 되면 주의할 점이 있다. 그 어려움이 오래 방치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려움에 직면한 것보다 더욱 나쁘고 위험한 것은, 그것을 즉시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권투 경기를 보면, KO패를 당하는 사람은 대부분 상대방의 잦은 펀치가 누적되어 무너진다. 큰 펀치는 그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가드를 바짝 올리지만, 약한 충격을 주는 잔 펀치는 방어에 신경을 덜 쓰다가 야금야금 무너진다. 거대한 댐이 무너지는 이유는, 작은 틈새나 구멍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산림이 왜 잿더미로 변하는가? 작은 불씨 하나를 소홀히 하였기 때문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사탄의 압도적인 공격에는 우리가 바짝 긴장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쉽게 극복할 수 있지만, 마귀의 자잘한 공격이나 우리의 사소한 죄악에는 주의를 덜 기울이기 때문에 쉽게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넘어지곤 한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생기는 죄의 문제는, 그 질량이 아무리 작더라도 결코 사소할 수 없다. 모두 심각하고 큰 문제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된 결정적 원인은 무엇일까? 사소해 보이는 사탄의 맨 처음 속삭임을 크게 보거나 주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해산의 고통과 땀 흘리면서 경작하는 수고가 주어졌고, 죽음이 들어왔고, 지상 낙원인 에덴에서도 쫓겨나야만 하였다. 앞서 언급한 그로기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현재 우리의 삶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래서 소생이 필요한 인생이 되어 버렸다.




  다윗이 노래하고 있는 소생의 방법은 간단하고 쉽다.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으면 된다. 그러면 그분이 우리 영혼을 소생시켜 주신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자신을 선한 목자로 소개하시면서,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다. 죄를 범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고(요 1:12), 그 결과 영원한 생명과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따라서, 죽음에서 소생의 길로 들어서는 길이 지금 우리 앞에 활짝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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