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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택 Nov 16. 2020

부족함 없는 인생

산책의 시간 / 믿음 009


  시편 23편에서 자신을 양에 비유한 다윗은, ‘내가 부족함이 없다’라는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다. ‘부족함’은 양이 지닌 약하고 악한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윗의 고백은 그것이 이미 해결되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전제 속에는 이미 차고 넘치도록 채워져서 더이상 채울 것이 없다는 고백이 들어 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오늘을 사는 우리도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일상은 늘 부족함을 호소하고 있다. 돈을 이 정도 벌었으니 되었다고 만족해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기업들은 국가 경제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통해 우리나라를 부국으로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윤 추구를 향한 기업의 발걸음에는 만족이 없다. 대기업의 총수들은 지금도 막대한 재산 위에 또 다른 재산을 쌓고 있다. 재산 축적의 동기가 이웃을 돕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선하고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한다. 그렇지만 언론에서 보도된 탈세 등의 여러 불법을 고려해 볼 때, 재산 축적의 동기는 그것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역으로 이것들이 보여주는 것은 그 목적이 더 크고 더 많은 탐심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을 상기시켜 준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잠 30:15-16). 재산을 축적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대의 모습, 즉 ‘부족함’만을 양산하고 있다.




  우리도 규모 면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 부족함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집의 크기와 그 안을 채운 물건들에서 부족을 느끼고, 소유한 자동차의 상태와 브랜드에서 부족을 느낀다. 또 일상생활에서 씀씀이의 부족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 그로 인하여 여러 악한 행동에 대한 유혹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난할 수 없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 우리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다윗의 고백은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림과 동시에 해법도 제공하고 있다. 다윗은 비록 왕이었지만, 그도 유한한 세상 속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그런 다윗이 제시한 해법은 무엇일까? 자신의 부족함을 들여다보는 대신 온전히 충만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세상을 향한 상대적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시각으로 자신의 부족을 메웠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신 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는 다윗의 고백과 함께, 나를 믿고 오는 자에게 영원히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은, 부족함의 메커니즘에 지배당한 우리에게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힌트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 힌트에 다윗의 소망 가득한 고백이 바로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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