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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택 Nov 18. 2020

목자들의 신앙

산책의 시간 / 의사 누가와 함께하는 03


  1. 예수님의 탄생을 목격한 목자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 있는 한 여관의 축사에서 태어나셨다. 그 내용이 누가복음 2장 1-7절에 소개되어 있다. 원로원의 추대로 로마의 황제가 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 칙령을 내렸다. 그가 내린 칙령은 호적을 등록하라는 것이었는데, 그가 이 칙령을 내린 목적은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지역의 구성원들을 파악하고, 또 안정적인 세수를 확보하려는 데 있었다. 예수님의 부친인 요셉은 다윗 족속이었으므로, 호적을 등록하기 위하여 자신의 본적지인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올라갔다. 150km나 되는 머나먼 여정에는 해산할 날이 다 찬 약혼자 마리아도 함께하였다. 베들레헴에는 요셉처럼 호적을 등록하기 위하여 올라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갑자기 밀어닥친 수많은 사람을 수용할 여관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요셉 일행은 그 여파로 그만 여관을 잡지 못하고 축사를 여관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들어간 축사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을 출산하였지만, 그 안에 마땅히 누일 곳이 없어 그분은 강보에 싸인 채 가축의 여물통인 구유 안에 누이게 되었다.




  8-20절에는, 목자들이 그렇게 태어나신 예수님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그들은 한밤중에 베들레헴 들판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매우 가까우므로 지금도 이스라엘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곳을 방문하곤 한다. 베들레헴 중심가에는 그분이 태어난 곳으로 추정된 곳에 ‘예수 탄생 교회’가 세워져 있고, 또 베들레헴 외곽에는 허술한 표지판을 세워 ‘목자들의 들판’으로 나름 지정해 두고 있다. 그 장소가 정확하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들판에서 목자들이 양을 지키고 있을 때, 주의 천사가 그들 곁에 서 있었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었다. 갑자기 벌어진 놀라운 상황 앞에서 그들은 크게 무서워하였다. 두려워 떨고 있던 그들을 향하여 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10-12절). 천사가 전한 놀라운 정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구원자 그리스도 주님이 베들레헴에 태어나셨다. (2)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게 될 것이다. (3) 그것이 너희에게 표적(증거)이 될 것이다.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수많은 하늘 군대가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4절).




  천사들이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간 후에, 목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15절). 그들은 재빨리 달려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갔다. 그리고 천사가 알려준 대로 정말로 뉘어 있는 아기를 볼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해주었는데, 그들의 말을 들은 모든 사람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리고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그대로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다. 목자들의 이와 같은 모습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 ‘신앙의 ABC’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2. 신앙 A: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먼저 그분의 말씀을 듣는 데에서 출발한다. 목자들의 신앙 여정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첫걸음인 ‘A’이다.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고 있던 목자들은 주님이 보내신 천사의 말을 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동네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태어나셨다는 말을 들었고, 또 그들이 가서 보게 될 아기, 즉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그 아기가 그들에게 표적(증거)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들의 귀에 들린 소식은 참으로 놀라운 소식이었다. 만약 그들에게 천사가 찾아와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다면, 그다음에 이어지는 그들의 행동, 즉 천사가 알려준 대로 탄생하신 예수님을 확인하러 숨이 가쁘도록 달려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 경험 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다음 단계인 ‘B’와 ‘C’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되는 신앙의 ‘A’,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듣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인 ‘A’가 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떤 태도로 들어야 할까? 천사가 전한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목자들은 어떤 태도로 서 있었을까?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한쪽 다리를 까딱거리면서 풀잎이라도 씹고 있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천사들의 노여움을 샀을 것이다. 비록 두려움으로 떨리기는 하였지만, 그 놀랍고 엄청난 소식을 듣기 위하여, 그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목자들의 모습처럼 바로 그런 태도로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태도를 베뢰아 지역 사람들과 다윗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시 119:131). 이렇게 베뢰아 사람들과 다윗, 그리고 목자들의 모습을 모두 합한 태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바로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신앙의 첫걸음이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원리는, 역으로 말씀을 먼저 들은 우리가 그 말씀을 듣지 못한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는 책임을 우리에게 부여해 준다. 사도 바울은 그런 우리가 ‘복음의 빚을 졌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4-15).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바로 그 빚을 청산하기 위하여 바울처럼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그 빚을 청산하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된다면, 주님이 분명 우리에게 그 빚에 대한 청구서를 제시하실 것이다. 에스겔에게 경고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라.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겔 3:17-18). 우리는 이렇게 곤란한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신앙의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도록 항상 힘써야 한다(딤후 4:2).



  3. 신앙 B: 주님을 구체적으로 찾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그분을 구체적으로 찾고 만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두 번째 과정인 ‘B’이다. 목자들은 천사로부터 그리스도 주님이 베들레헴에 태어나셨는데, 그 표적으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천사의 말을 확인하기 위하여 빨리 가서 그분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천사가 말한 그 아이를 찾았고 또 만났다. 만약 목자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도 그분을 찾으러 달려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분을 찾을 수도 없었고 만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이 행하신 그 놀랍고 위대한 일도 경험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에 더하여 그들은 ‘불신’과 ‘불순종’이라는 죄까지 범하였을 것이다. 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라는 천사의 말 속에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그 사실을 확인하라’라는 명령이 간접적으로 들어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들이 찾아가지 않았다면, 그 의도 속에는 그들이 천사를 통하여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거나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은 돌이나 나무로 만든, 죽어 있는 우상이 아니다. 그분은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하신 일들은 모두 구체적이다. 그래서 그분이 행하신 일에는 바로 그분이 행하셨다는 표적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우리는 그 표적을 통하여, 또 그것이 증거가 되어, 그분의 실재와 함께 행하신 손길을 구체적으로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 현장으로 달려가서 그분이 그곳에 계신 것과 바로 그곳에서 그분이 이미 이루어 놓으신 일들을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고, 함께하는 기도 가운데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약속하신 대로 이루시는 그분의 손길을 확인할 수 있다. 찬송가 542장에 보면 후렴구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가 그분을 믿는 이유는, 성경과 역사,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받은 증거(표적)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란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그분을, 그리고 그분의 표적들을 특히 우리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찾고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찾아 나설 주님은, 그래서 만나게 될 주님은, 그저 그런 분이 아니시다. 만나면 좋고 만나지 못해도 그만인 존재가 아니시다. 수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그분을 보려고 하였지만, 결코 볼 수 없었던, 거룩하고 존귀하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눅 10:23-24). 그분을 구체적으로 찾고 만나는 일은, 그 자체로 크나큰 ‘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그분을 찾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찾아야 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 42:1-2). 이제 갓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찾기 위하여 빨리 달려갔던 목자들의 숨 가빴던 호흡 속에 바로 이러한 마음이 들어 있지 않았을까.



  4. 신앙 C: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드리기


  그렇다면 신앙의 마지막 단계인 ‘C’는 무엇일까? 바로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다(20절). 목자들처럼 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




  주님을 만나 구체적으로 그분의 손길을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만남의 끝에서 잘못된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을 성경에서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주님을 만난 뒤에 두 번 다시 주님께 찾아오지 않았고, 그 일로 그분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다. 주님은 그런 그들을 믿음 없는 것으로 간주하셨다. 그에 반해 그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온 사람은 그분께 감사를 드렸고, 예수님은 그의 그런 모습에서 믿음을 발견하셨고, 그로 인하여 그는 구원을 받았다. 누가복음 17장에 그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1-19절).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중요하다. 또 말씀에 순종하여 구체적으로 찾고 만나는 것도 참으로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경험의 뒤안길에서 그 모든 것을 경험케 하신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믿음과 구원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우리의 구원 또한 온전히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신앙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비로소 온전하게 완성될 수 있다. 그 완성이 바로 우리의 삶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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