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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택 Nov 27. 2020

왜 하필 ‘사랑’일까?

산책의 시간 / 사랑 002


  한번은 바리새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여쭈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큽니까?”

  그 여쭘에는 그분을 시험하기 위한 목적이 들어 있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너 자신같이 사랑하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마 22:37-40)


  여기에서 ‘강령’은 ‘본뜻’(새번역), ‘골자’(공동번역)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최소한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들의 골자(본뜻)는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사랑일까?

  왜 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요일 4:8,16). 그분은 사랑이신 자신의 형상(이미지)대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정체성은 그 사랑 안에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요일 4:12).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이 임하게 된다.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예수님은 그것을 전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마 4:17;막 1:15). 그래서 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 되는 것이다.




  한편 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는 사실은, 역으로 그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빈껍데기만 남는다는 말이 된다. 사도 바울은 이 점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방언과 천사의 말,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 예언하는 능력,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내주는 구제와 헌신 등은 우리 같은 범인들이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조차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그 어떤 유익도 되지 않는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그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기적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사랑을 피상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솔로몬은 전도서 12장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이런 것들을 실천하고 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본분을 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본분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그 두 모습 가운데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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