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끝에 정들어요

초딩의 일기장 09

by 박준택


“아빠, 뭐하고 계세요?”

거실에서 신문을 깔아 놓고 웅크리고 앉아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아빠에게 서현이가 다가옵니다.
“응? 서현이 잘못하면, 때리려고 매를 만들고 있어요.”
“매요? 근데 조금 크지 않아요?”
“매는 커야 아프지. 너무 작으면 효과가 없잖아.”
“그래도 너무 큰 것 같은데......”

서현이의 얼굴에 근심 어린 그늘이 살짝 드리워집니다. 아빠가 연필 깎는 칼로 다듬고 있는 매가 자신이 보기에 길고 두툼해서 그것으로 맞으면 많이 아프겠다는 생각이 드나 봅니다.

“아빠, 마디 부분을 잘 깎아야 해요. 거기에 잘못 맞으면 피가 나거든요.”
“그래? 그럼 이 부분은 잘 다듬어야겠네.”
“근데, 아빠!”
“왜?”
“제가 잘못하면 진짜로 그걸로 저를 때리실 거예요?”
“그럼, 그러려고 만드는 건데.”




서현이는 얼마 전에 아빠한테 종아리를 세 대 맞았습니다. 지난번에 몇 차례 주의를 환기하였는데도 일기를 엉망으로 썼기 때문입니다. 쓰기 싫어서 대충 일기장의 삼 분의 일도 채우지 않은 데다가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맞춤법도 엉망입니다. 글씨체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게다가 외할머니께 무례하게 대들기까지 하였답니다.

처음에는 아내가 서현이를 세차게 나무랐지만, 서현이의 태도가 고쳐지지 않아 아빠가 매를 든 것입니다. 외할머니께서 매 때리는 것만큼은 만류하셨지만, 기어코 녀석의 팔을 잡고 끌다시피 해서 아들의 방으로 데리고 가서 문을 잠갔습니다.
“어서 그 의자 위로 올라가!”
“아빠,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안돼. 그동안 몇 차례 봐주었는데 오늘은 맞아야 해.”
아빠의 고함에 녀석은 겁이 잔뜩 들었습니다. 아들의 얼굴은 울며불며 눈물 콧물로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몇 대 때리실 거예요?”
“아까 말했잖아. 종아리 세 대 맞는다고.”
“얼마나 세게 때리실 거예요?”
“그것까지 알려줘야 하니? 그건 아빠가 알아서 할 거야.”
“말해 주세요. 그래야 마음의 준비를 하지요.”
매 맞는 녀석이 별걸 다 물어보고 있습니다.

“빨리 의자 위로 안 올라갈 거야?”
“가만있어 보세요. 심호흡 좀 하고요.”
“매 맞는 데 심호흡이 왜 필요해?”
심호흡이라는 말에 발끈한 아빠가 벼락같이 화를 내며 소리를 꽥 지릅니다.
“심호흡 안 하고 맞았다가 죽으면 어떡해요?”
나 원 참! 자기가 무슨 태형이라도 당하는 줄 아나 봅니다.

“빨리 안 올라갈 거야! 셋을 셀 동안 안 올라가면 한 대 더 늘어나?”
“알았어요. 올라가면 되잖아요.”
“눈 감고 앞을 봐!”
“싫어요. 매 때리는 걸 볼 거예요.”
“근데 이 녀석이 아빠 말을 끝까지 안 듣고!”

서현이는, 준비된 매가 없어서 급조한 국기 봉으로 종아리를 세차게 세 대 맞았습니다.
“울음 뚝 그쳐! 거실로 나가서 할머니나 엄마한테 안겨서 울고 그러면 또 맞을 줄 알아!”




아빠의 마음은 무겁습니다. 아들의 종아리를 아프게 때리고 나서 기뻐할 아빠가 어디 있겠어요? 평상시 제대로 교육하였다면 아들이 매 맞을 일이 뭐 있을까요. 녀석의 잘못된 행동에는 평소에 교육을 바르게 시키지 못한 아빠의 잘못도 묻어 있습니다.

아빠의 마음은 우울합니다. 어둠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는 아파트 주변을 맴돌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 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옆 동을 돌아가는데 그쪽 모서리에서 가지치기해 놓은 나뭇가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무심코 나뭇가지들을 만지다가 아들을 위해 매를 하나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기 봉 같은 것은 매라는 인식보다는 화가 나서 참지 못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휘두르는 물건 같기도 하고 정식으로 매를 집 안에 비치해 두면 아들이 좀 더 근신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중에서 튼실한 놈을 하나 골랐습니다.
‘이걸로 맞으면 꽤 아플 것 같은데......’
녀석의 아파할 모습이 제 종아리를 때리며 전달되어 옵니다.




아빠는 여전히 어두운 마음을 안고 집안으로 들어옵니다. 아들의 반응이 걱정되어 곁눈질로 아들이 있는 방을 슬쩍 들여다봅니다. 아들은 매의 효과로 딴짓을 하지 않고 자기 방에서 열심히 일기를 다시 쓰고 있네요.

매를 든 후에 아들이 아빠 눈치를 살피거나 아빠를 멀리할까 봐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먼저 가서 “많이 아팠니? 저런 종아리에 매 자국이 났구나.” 하는 것이 매의 효과를 반감시킬 것 같아 아들 위로하는 것을 뒤로 미룹니다.

“아빠, 일기 다 썼어요. 보실래요?”
“서현아, 엄마 아빠 할머니 모두 똑똑히 들을 수 있게 크게 한번 읽어 봐라.”
아내가 중간에 끼어들어 아들과 저의 서먹서먹해질 수 있는 공간을 메워 주네요. 아들은 자신이 쓴 일기를 큰 목소리로 자랑스럽게 읽어 내려갑니다. 제법 비유법도 써 가면서 멋들어지게 썼네요.
“서현아, 아주 잘 썼다. 이렇게 잘 쓸 수 있는데. 우리 아들 정말 훌륭하네.”
아빠의 칭찬에 서현이는 활짝 웃으면서 아빠 품에 안깁니다. ‘매 끝에 정든다’라는 속담이 있지요. 매로 인해 꿍하게 있거나 반감을 갖지 않고 아빠의 목을 껴안으며 자신의 살갗을 비비고 들어오는 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빠와 아들은 매로 인해 이전보다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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