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2미터, 세로 9미터에 칠만 원입니다.”
오늘은 국회의원을 뽑는 날입니다. 그래서 하루 쉽니다. 아침부터 온 집안에 게으름이 곰팡이처럼 피어납니다. 아침밥을 먹은 후 온 식구가 거실 바닥에 널브러지게 드러누웠습니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서현아, 우리 개웅산 올라갈까?”
뒹굴뒹굴하는 것에 지친 아빠가 아들에게 먼저 난국 타개책을 내놓습니다. 녀석도 게으름에 지쳤는지 팔짝 일어서며 눈빛을 반짝입니다.
아파트 뒤편에 있는 작고 낮은 산에는 진달래가 여기저기 피어 있네요. 바람이 약간 차갑기는 하지만, 내리쬐는 햇발만으로도 봄기운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제 손안에 있는 아들 녀석의 두툼한 손에서도 봄기운이 만발합니다. 땅을 뚫고 나오는 연녹색의 새싹처럼 녀석이 오동통 쑥쑥 커가는 것을 두툼해진 손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산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데, 전에 보지 못한 플래카드가 걸려 있습니다.
‘주말농장 7만 원에 분양합니다.’
교외로 멀리 나가야만 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던 주말농장을 개웅산 자락에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걸어 나오면 5분 거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농기구도 빌려준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혹하는 것은 분양 비용이 일 년 동안 칠만 원이라는 겁니다.
“서현아, 우리 주말농장 땅을 분양받아 볼까?”
“주말농장이 뭐예요? 땅 분양은 또 무슨 말인데요?”
“응, 그거는 있잖아......”
두 가지 질문을 숨도 안 쉬고 단박에 설명해 주자 녀석은 무조건 하자고 합니다. 녀석에게는 이게 무슨 신나는 놀이쯤으로 인식되나 봅니다.
아들과 함께 집으로 달려가서, 전날 불면증으로 정오가 되도록 자고 있던 아내를 깨워 분양 여부를 물었습니다.
“엄마한테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어차피 엄마가 다 지어줘야 할 것 같은데. 주말부부인 우리가 그거 관리할 시간이 있나? 일요일에도 교회에서 종일 살잖아.”
“토요일에 농장 일을 하면 돼.”
“그래도......”
서현이 외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의사를 여쭈었더니, 일단 한번 보러 가자고 하시네요. 그런데, 외할머니가 얼마나 성격이 급하신지 아십니까? 중간에 만나서 그곳으로 함께 가자고 약속해 놓고, 정작 당신은 약속 장소에 있지 않고 농장이 있는 곳에 가서 먼저 답사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여기는 저기보다 햇빛이 잘 들 것 같다, 땅이 너무 외진 것 같다, 순 돌밭 아니냐” 하시며 벌써 어느 곳이 농사짓기에 좋은 땅인지 조사까지 완료해 놓았네요.
“서현아, 수학 과외 다 마치면 할머니랑 같이 와! 엄마와 아빠는 먼저 가서 밭을 갈고 있을게.”
과외 선생님과 약속이 있는 아들은 공부가 끝나는 대로 할머니랑 같이 오기로 하고, 아내와 저는 밭을 갈러 분양받은 여섯 평 조금 안 되는 밭뙈기로 갔습니다. 밭을 분양해 주신 분이 아들의 배냇적 이름을 따서 ‘이슬이네 농장’이라는 팻말을 벌써 세워 놓았네요.
곡괭이와 쇠스랑을 빌려서 아내와 함께 밭을 개간합니다. 저는 곡괭이질로 땅을 파면서 돌을 골라내고, 아내는 제 뒤를 따라 쇠스랑으로 땅을 고릅니다. 산비둘기가 “구구구” 소리 내어 울고, 참새들은 “짹짹짹” 하면서 재잘거립니다. 소매를 채고 가는 봄바람은 힘든 곡괭이질을 돕습니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요.
직장에서 책상머리에 앉아 업무만 보던 저에게 곡괭이질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십 분도 채 되지 않아 끊어질 듯한 통증이 허리를 압박해 들어옵니다. 한 시간 정도 되어서는 사지가 후들거리고요. ‘퇴직하면 한가롭게 농사나 지어야지’ 하던 마음이 쏙 들어갑니다. 멀리서 농사짓는 분들을 보면 그토록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였는데, 이건 완전 막노동입니다. 곡괭이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다 풀려 곡괭이가 손에서 자꾸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약간 흐리던 하늘에서 이슬비 같은 봄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빗방울이 좀 더 굵어지기 전에 빨리 서둘러야겠습니다. 이십 분도 안 되어 빗방울이 조금씩 더 굵어지기 시작합니다. 오늘 같이 분양받은 바로 옆 ‘돌돌이네 농장’ 아저씨가 와서 곡괭이질을 돕습니다. 그분이 일해 주는 양보다, 함께해 주는 마음에 힘이 납니다.
한 시간 반 정도 했을까요? 여섯 평 되는 밭뙈기의 곡괭이질과 쇠스랑 작업이 얼추 끝났습니다. 비도 제법 굵어져서 오늘 밭일은 그만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빠 뭐야, 벌써 농장 일을 끝내고 내려오면 어떡해?”
“왜? 오늘 할 일 다 했어.”
“빨리 다시 가서 일해. 나도 곡괭이질을 하고 싶단 말이야.”
과외를 마치고 할머니와 함께 밭으로 오던 아들 녀석이 밭일을 마치고 오던 우리를 보자 난리를 칩니다. 제 가슴을 팍팍 치더니 끝내는 눈에서 폭포수 같은 눈물이 쏟아집니다. 곡괭이질을 하지 못한 것이 억울하고, 가족이 함께하는 밭일에 동참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억울한가 봅니다. 하긴, 녀석에게 그것이 참 재미있을 것 같은 놀이였을 터인데, 그걸 못하니 억울할 수밖에요.
“서현아, 오늘은 비가 와서 일을 더 할 수 없어.”
“그래도 가! 비 맞으면서 하면 되지 뭐!”
막무가내입니다. 이렇게 난처한 일이 있을까요.
“서현아, 일이 다 끝난 거 아니야. 밭을 한 번 더 갈아야 하고, 고추며 상추며 토마토도 심어야 하니까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그러니 오늘은 그만 돌아가자, 응?”
“싫어! 빨리 다시 가!”
계속 울면서 떼를 쓰는 녀석을 껴안고 이리 어르고 저리 달래다, 결국에는 딱지를 사 주겠다는 감언이설로 녀석을 달랩니다. 녀석이 안 넘어가고 배기나요, 평소 갖고 싶어 하던 딱지를 사 주겠다는데.
“약속 지켜 아빠. 딱지이~?”
빽 하고 소리를 지르며 그제야 발걸음을 돌립니다.
“아이고, 팔다리야! 허리가 부러지네, 부러져!”
아빠와 엄마는 집에 들어와서 씻지도 못하고 거실에 큰 대자로 뻗어버렸습니다. 손과 팔과 어깨가 다 먹먹합니다. 허리는 근육이 파열되었는지 여하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겠습니다.
아빠는 체력밖에 가진 것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결혼 전에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하루 두 게임씩 총 네 게임을 축구에 몸을 던지고도 왜 더 차지 않느냐고 고집부리던 아빠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 죽어가는 낙지처럼 허연 거품을 물고 축 늘어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왠지 모를 행복에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아내와 밭일을 함께 하였다는 사실이, 아빠 엄마와 밭일을 함께하지 못하였다고 억울해하던 아들의 모습이 제 입꼬리를 올라가게 합니다. 또 다음 주말에 아내와 아들과 제가 함께할 밭일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그리고 우리가 심어 맺게 될 갖가지 열매에 대한 기대가 입꼬리를 한껏 올려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