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아,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 그걸 어디에다 두었는지.”
“여기에다 놓았다니까요!”
“근데 그게 왜 여기에 없니?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큰일 났습니다. 저녁 시간을 이용해서 서울로 출발해야 하는데 자동차 키가 없어졌으니 이걸 어떡해야 합니까. 서현이가 놓았다고 주장하는 텔레비전 장식장 주변을 다 뒤져봐도, 깔고 있던 이불을 먼지 털듯이 탈탈 털어 봐도, 할아버지 집 구석구석을 온통 들쑤셔 보아도 자동차 키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 나올 리 만무하지요.
뿔이 난 아내가 날 선 목소리로 기어코 한 방 날립니다.
“그러길래 아이한테 자동차 키를 맡기면 어떡해요. 이건 서현이 책임이라기보다 당신 책임이 더 커요.”
아들이 차 트렁크에 있는 축구공을 꺼내겠다고 하도 떼를 쓰기에 낮잠 자느라 귀찮아서 녀석에게 열쇠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만 계속 잠을 자느라고 열쇠를 챙기지 못하였는데, 그것이 결국 이런 난감한 사태로까지 이어져 버렸네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걱정이 되셔서 서현이가 옷을 벗어두었던 세탁기 속이며 세탁물이 널려져 있는 옥상을 오가며 자동차 키를 찾고 계십니다. 모처럼 친정을 찾아온 큰누나도 낮잠을 자다 말고 눈을 비비며 열쇠를 찾고 있습니다.
큰누나는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추석 명절이라 밤새 떡을 만들었기 때문에 잠도 못 잤습니다. 이제 겨우 친정에 와서 눈을 붙이려는데, 아들이 저질러 놓은 사고로 제대로 쉬지도 못합니다. 이불을 껴안은 채 졸린 눈으로 서현이를 따라 이곳저곳을 더듬고 다니네요. 자동차 안을 뒤져봐도 열쇠 비슷하게 생긴 게 눈 안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어서 당신 선배에게 전화해 봐요.”
선배를 통하여 자동차 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연락하면 무슨 방법이 나올 것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걸 어떡합니까? 그 선배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네요. 지금 저에게는 있어야 할 그 핸드폰이 없거든요.
추석 전날 서울에서 고향 목포로 내려가려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기 전에, 아들이 제 핸드폰을 가지고 놀다 사고 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핸드폰을 켜면 비밀번호를 입력하게 되어 있는데 아들이 무심결에 그 비밀번호를 바꿔 버렸고, 녀석은 자기가 바꾸어 놓은 비밀번호를 그만 까먹고 만 것입니다.
여기저기 번호를 누르면서 수차례 용을 쓰다가 결국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대리점에서 손을 보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으므로 할 수 없이 핸드폰을 서울에 놓고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동차 키 분실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는 선배의 전화번호를 알 길이 막히니 일이 꼬일 대로 꼬여 버렸네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아빠 앞에 있는 아들이 예쁘게 클로즈업될 리 없겠죠? 그래서 아내에게 받은 포화를 아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퍼붓습니다.
“네가 잘못한 게 얼마나 큰지 알기나 하니?”
“......”
눈에 쌍심지를 돋우며 입에 거품을 물고 주먹으로 시위하는 아빠 앞에서 아들은 머리를 처박은 채 한없이 움츠러들고 있습니다.
“공을 가지고 집 앞에서만 놀았지?”
“아니요, 조금 전에 완석이 형이랑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 가서 놀았는데요.”
혹시 녀석이 가지고 다니다 흘렸을지 몰라서 아들의 동선이 집 앞에만 그려지길 기대하고 물었는데, 집에서 한참 떨어진 학교까지 갔다고 하네요. 수색해야 할 범위가 무한정 넓어진 것이지요. 녀석의 동선을 따라 열쇠의 행방을 찾기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이 더 가늘어졌습니다.
“어휴, 못 살아! 아들 녀석은 자기 것도 아닌 아빠 핸드폰을 못 쓰게 만들어 놓고 자동차 키까지 잃어버렸지, 아빠는 자기가 들어 놓은 보험 회사의 선배 연락처 하나 기억하지 못하니 이걸 어떡해? 덜렁거리고 조심성 없기는 아들이나 아빠나 똑같아요, 똑같아. 얼른 자동차 회사에 연락해 봐요. 무슨 방도가 있을 거 아니에요.”
아내가 큰 소리로 제 가슴에 못을 박더니, 혹시 몰라 아들 손을 낚아채며 함께 학교 운동장까지 열쇠를 찾으러 나서네요.
“십이만 원인데요.”
“아저씨, 뭐가 그렇게 비싸요?”
“이거 비싼 거 아니에요. 전국적으로 정해진 금액이라니까요.”
“그래도 좀 싸게 해 주세요.”
어떻게 요리조리 전화해서 자동차 키를 제작해 주는 곳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학교 운동장까지 열쇠를 찾으러 갔던 아내도 이제는 찾는 것을 포기하고 비싸더라도 자동차 키를 새로 만들자고 하네요. 그런데 이삼만 원이면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는데, 십만 원이 넘어가니 적지 않게 당황이 됩니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서둘러 만들어야죠.
“근데 아저씨,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열쇠 만들기 전에 혹시 트렁크를 열어 볼 수는 없나요?”
아내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트렁크부터 열어보자고 하네요. 그 말에 전문 털이범처럼 조그마한 돋보기 같은 것을 눈에 붙이고 이상한 키를 쑤셔 넣고 몇 번 움직여 보던 그 아저씨, 놀랍게도 트렁크를 힘 하나 안 들이고 아주 쉽게 열어 버립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트렁크 안쪽의 축구공이 놓여 있었던 자리 바로 옆에 온 가족이 찾아 헤매던 자동차 키가 다소곳이 누워 있네요. 아들의 증언에 따르면, 분명히 텔레비전 장식장 위에 놓여 있어야 할 자동차 키가 왜 트렁크 안에 놓여 있을까요?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혼자 도술을 부려 이동할 리도 없는데.
아빠는 아들의 잘못된 증언으로 온 가족이 생난리를 친 것이 더 화가 났습니다.
“이런 녀석을 봤나, 여기에 놓아두고 뭐 텔레비전 장식장 위에 올려놨다고? 서현이 이 녀석 어디 있어!”
그런데 그 난리의 주범이 행방불명되어 버렸습니다. 겁이 나서 도망간 것일까요? 출장비 삼만 원을 건네준 후에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와 보니 아들이 작은방에서 자고 있네요. 아들은 어떻게 이리 딴 세상을 살고 있을까요? 모든 식구가 난리를 치고 다니는 상황에서도 녀석은 남산만큼 하얗게 드러난 배를 박박 긁으면서 코까지 골고 있습니다.
나 원 참, 녀석을 깨워 이단옆차기라도 날려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아빠는 아들의 자는 모습이 폭풍 후의 고요를 선물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할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