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예상했던 대로입니다.
토요일 아침 7시, 이슬이네 주말농장에 2주 만에 가게 되네요. 애초 주말에 한두 번은 모든 식구가 찾아가고, 주중에는 출근하기 전이나 새벽에 두세 번 정도 제가 밭을 살펴보려고 하였던 계획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지난주는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하기 위하여 목포에 다녀오느라 들르지 못하였습니다. 주중에라도 와서 농장을 돌아보아야 하는데, 휴가를 내지 않는 한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아침잠이 많고 게으르기로 유명한 제가, 새벽바람 맞으며 밭으로 나갈 가능성이 만무하지요. 그렇다고 아내가 대전에 있는 직장을 정리하고 서울 올라와서 농부를 전업으로 할 수도 없잖아요? 그렇다면 우리 농장을 포기해야 할까요? 그렇게 하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아빠, 저기 계신 분이 할머니 아니에요?”
2주 전에 개간한 밭에 물도 댈 겸, 아내가 사 온 고추와 토마토 모종 일곱 그루도 심을 겸, 저와 아내, 그리고 서현이 이렇게 셋이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어, 그런데 서현이 외할머니가 벌써 와 계시네요. 이미 밭에 물도 대놓으셨고요. 할머니는 저희가 가지고 간 고추와 토마토 모종도 대신 심어 주십니다. 서현이는 새로 심은 채소 위에 물 주는 일을 하고요. 외할머니는 서현이를 돌봐주는 유모이기도 하고, 우리 농장 일을 봐주는 소작농이기도 합니다.
밭을 간 이후 2주 동안 외할머니가 교회에 같이 나가시는 다른 할머니와 함께 매번 올라와서 물을 주고 여러 가지 채소들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처제와 중국에서 돌아온 깍두기같이 생긴 삼촌도 그 일을 거들었습니다. 서현이도 몇 번 할머니의 손을 잡고 따라와서 밭일을 거들었나 봅니다.
상추가 밭의 사 분의 일 정도 심어졌고, 그 나머지는 무와 아욱 씨앗 등이 뿌려져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무 싹이 여기저기 조금씩 눈을 내고 있습니다. 외할머니는 산비둘기들이 극성을 떨어 싹이 날지 많이 걱정하셨는데, 그래도 산비둘기들의 먹잇감에서 벗어난 것들이 새순을 낸 것입니다. 별로 기대도 안 하였는데, 손톱 크기 정도의 싹이 난 것이 여간 신기하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근데 아빠, 이것들이 다 자라면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먹어요?”
“그러게, 염소처럼 맨날 풀만 먹을 수도 없고.”
“아빠, 우리 이거 팔아요.”
그렇지만 저희 밭의 소산물은 판로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싹도 나기 전에 이미 다 팔린 거죠. 전문 용어로 '선매'(先賣)입니다.
주말농장을 오픈했다는 글을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놓자마자 제일 먼저 지은이네가 일 도와준다고 하면서 입맛을 다셔 놓았고, 사촌 처제인 재희네가 부럽다는 댓글을 올리면서 무언의 예약을 이미 해 놓았습니다. 자그마한 교회의 식구들은 아예 소산물 전체를 교회로 가져올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할머니도 할머니대로 주위의 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줄 계획을 머릿속에 이미 그려 놓았습니다.
이렇게 땀 흘려 얻게 될 소산물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사실이 제 가슴을 뿌듯하게 합니다. 이것이 농부의 마음일까요?
무엇보다 기분 좋은 것은, 아들 서현이가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게임에 빠지지 않고, 할머니와 저희의 손을 잡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밭에 와 보기 때문입니다. 작은 모종 삽을 든 채 손에 흙을 묻히고, 새로 나온 싹을 만지기도 하고, 산새 소리와 들꽃, 그리고 산바람에 섞여 자연과 자연스럽게 친해져 가는 작은 모습을 보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입니다. 아빠가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눈을 반짝이며 연필 잡은 손에 힘을 주는 모습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지만, 자연과 하나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른 감격입니다. 상추랑 고추랑 토마토를 따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녀석의 고사리 같은 손길을 볼 때면, 아빠의 가슴은 행복으로 얼마나 더 쿵쾅거릴까요?